화염병, 쇠파이프, 그리고 원천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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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 쇠파이프, 그리고 원천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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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대회 폭력사태는 민주노총이 '과잉대응'한 결과다

 
   
  ^^^▲ 지난 9일의 전국노동자대회 폭력사태
ⓒ 뉴스타운 자료사진^^^
 
 

지난 9일 발생한 민주노총의 화염병 시위를 두고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언론들도 소위 '여론'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연일 "과격 폭력시위는 안된다"고 모처럼 입을 맞추고 있다.

반면,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된 민주노총은 이날 시위는 "경찰의 과잉진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12일 2차 총파업을 강행하는 등 투쟁의 고삐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이같은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9일 현장을 처음부터 목격한 기자는 민주노총이 말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민주노총은 시청 앞 광장에서의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경찰에 제출한 집회 신고서에는 '대회 후 광화문까지 행진하겠다'는 구절이 없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광화문에서 열리는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이 만약 진짜 촛불시위에 참가하려는 순수한 의도였다면, 개별적으로 집회장소를 빠져 나와 광화문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동원된 폭력시위로 변질되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이날 화염병 시위가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위에 동원된 수많은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은 급조됐다는 말인가. 대회가 끝나고 광화문으로의 행진이 막힌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시위용품이 제작 됐을리는 만무하다.

경찰은 이번 시위와 관련, 연행한 노동자 가운데 50여 명을 구속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오히려 민주노총이 경찰에 '과잉대응'한 결과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불법과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 권위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던 과거 정부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4·19가 그러했고, 6월 항쟁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 때의 폭력은 정상적인, 다시 말해 헌법이 정하는 민주주의적 방법과 절차에 의하고서는 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국정에 반영될 수 없었던 시대에 소외받던 국민들이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은가. 민주노총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던 서울시청 앞 광장은 과거 정권에서는 집회조차 꿈꿀 수 없었던 성역이었다. 아니, 과거 정권에서는 정당한 집회조차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곤 했다.

이랬던 시청 앞 광장은 지난해 월드컵과 여중생 추모집회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섰고, 이제는 대규모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단골 장소로 탈바꿈했다. 세상이 변한만큼 시위대의 사고방식도 당연히 변해야하지 않았을까.

최근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집회와 시위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한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평화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불법·폭력시위도 크게 한 몫 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현재의 집회나 시위는 시위에 참가하는 대상이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다. 아무리 정당한 요구를 내세우고 평화적으로 거리를 행진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한낱 '교통이 막히고,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짜증에 불과할 뿐이다.

이같은 결과는 집회·시위가 주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만 이용되는 투쟁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과 같은 폭력시위는 가뜩이나 짜증나는 국민들의 인내심을 일거에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외교기관 주변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외국공간 앞에서 집회나 시위를 자유롭게 벌일 수 있게 됐다. 이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한 헌법정신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경찰은 민주노총의 화염병시위를 계기로 폭력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를 허가해주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신청한 12일의 여의도 집회를 원천봉쇄했고, 이날 집회는 결국 민중연대 주최의 형식을 빌어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참가자는 같지만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집회 허가가 결정난, 우스운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경찰의 이번 결정은 잘못됐다. 경찰은 국민들의 집회와 시위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거 폭력시위를 벌인 경력이 있다고 해서 집회 자체를 봉쇄한다는 것은 집시법에도 저촉된다. 물론 폭력시위를 했다고 다음에 또 폭력시위를 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과거 폭력 경험이 있다고 해서 다음에 또 폭력을 행사하란 법도 없다. 집회 이후 발생하는 폭력시위는 그때 가서 엄중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경찰의 이러한 결정이 또다른 폭력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각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정 갈등을 '폭약을 실은 채 마주 달리는 열차'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노·정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을 동원한 폭력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회의 원천봉쇄는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마침 오늘(13일)은 아름다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한 지 33년이 되는 날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그리고 경찰의 원천봉쇄. 우리 사회가 암울했던 지난 7·8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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