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가 없는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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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상림 첫 장편소설 <아주 무거운 가방> 펴내

 
   
  ^^^▲ 이상림 <아주 무거운 가방>
ⓒ 문학동네^^^
 
 

"요즘 연애하니?"
"무슨 소리지?"
"주차하려고 단지를 돌다가 어떤 차 안에서 키스하고 있는 너를 봤어"
"아 그랬어?"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첫 선을 뵌 이상림(37)이 오랜만에 첫 장편소설 <아주 무거운 가방>(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근데 오랜만이라니? 등단 10년 만에 첫 장편소설을 낸 것을 두고 어찌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혹시 신출내기 이상림이 등단 초기에 맹렬한 작품활동을 하기라도 했던가? 아니. 근데 왠 오랜만?

이상림은 등단 이후 사실상 펜을 놓고 있었다. 물론 등단 초기에는 문예지에 <달아나는 말>, <봄날은 간다>, <원>이라는 꼭 세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단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첫 장편소설이긴 하지만 오랜만이라는 말을 붙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30대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과 불륜이다. 30대의 사랑과 불륜? 그래. 언뜻 들으면 이 소설은 지극히 통속적인 내용이라는 느낌부터 먼저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아주 무거운 가방>이다. 왜?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도 끝내 30대들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인공은 미아와 미호, 성운과 환기다. 미아의 언니 미호는 결혼을 한 뒤에도 정신병증으로 헤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삼풍백화점 참사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또 미호의 남편은 미아의 고교동창생과 돈을 주고 받는 그런 성관계에 푹 빠져 있다.

미아의 남편은 환기다. 성운은 유년기에 어머니로 인해 패인 상처를 달래려는 듯 미아와 끝없는 불륜을 저지른다. 미아 또한 환기와의 결혼생활에 대한 피로감을 성운과의 성관계를 통해 풀어내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불륜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러한 관계를 마치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이어갈 뿐이다.

"다정하지 않으면?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니 정부 같은 기분이 되는 건 싫어"
"다정하게 하는 게 정부 같은 거니?"
"섹스할 땐 너무 길게 말하지 마"

또한 30대 유부녀와 유부남인 이들은 모두 10대의 말투를 쓴다. 행동 또한 10대처럼 자유분방하다. 게다가 미아의 남편 환기는 자신의 아내 미아의 그러한 불륜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제 갈 길을 찾아 나선다.

"지지부진한 삶 속에서도 어느 순간 찾아오는 숨막히는 '생의 절정', 그것들로 이루어진 '낯선 동네'의 어지러우면서도 섬뜩한 지형도. 불안 속에서 자기 생의 출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지형도는 때로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 같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그렇다. 이 소설은 언뜻 읽으면 그저 흔한 통속소설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 속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너무나 메마르다. 그래서 그들의 불륜은 불륜이기 이전에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출구로서의 불륜이다. 작가 또한 불륜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에 대해서 애써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둠으로써 우리 사회의 성풍속도를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을 통속소설과 다르게 만드는,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주인공들에게 준 상처에 대응하는 작가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30대들의'허망'과 '결핍'의 정서를 관찰하는 시선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절절한데, 강남 문화로 대표되는 도회적 정서를 어색함 없이 전유하는 짧고 단정한 문체가 건조한 듯하면서도 아리다. 아마도'견딤'에 관한 이야기로는 극상림(極相林)에 속하지 않을까." (이순원, 소설가)

'견딤' 그래.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아주 무거운 가방>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깨에 매고 가는 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내가 울러매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설령 그 가방에 담긴 책들이 내게 또 하나의 무거운 생의 짐을 지워주는 가르침들로 가득차 있다 하더라도.

이상림의 <아주 무거운 가방>은 탈출구가 없는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우리 시대 30대 남녀의 불안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30대로 접어든 남녀의 어쩌지 못하는 욕망, 그 욕망을 해소하고자 저지르는 불륜의 행각. 그래. 어쩌면 그 불륜의 행각조차도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는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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