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구식이 일본 열차 폭파 무르익다 [시대극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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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 구식이 일본 열차 폭파 무르익다 [시대극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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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반도삼총사' 와 금 밀반출 33열차 수송계획 탐지

(전회마지막부분)


임용: 그 쪽발이가 무슨 일을 꾸미는 긴가요.
이 때 재선이도 들어왔다. 심상찮은 얘기가 오가는 것을 보고 뒤편의 의자를 당겨 조용히 앉았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시중경제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우리민족은 정상적인 노력으로 돈을 모으기에 어려워 눈을 돌릴 곳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 우리 조선 사회에 일제 식민지 정책에서 파생된 후유증으로, 투기 열풍이 일었는데 20년대에는 미두장 투기열풍이 그리고 30년대에는 금광 열풍이 휘몰아쳤다--. 


[시대극5]


'굼틀이는 구식의 일본 열차폭발 모의'

구식: (채란이 앞으로 다가가서) 채란아, 어머니께 편지를 써 줄 테니 찾아가서 보이고 금붙이를 받아 똘만이 놈에게 한 돈에 18원으로 계산하여 팔아라. 내일 쯤 분명이 너를 찾아 올성싶다.
채란: 그래서요.
구식: 그 돈은 당분간 니가 보관하고 있거라. 재선이도 왔구나.
재선: 예, 행님.

구식: 너거들은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일제는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대륙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조선을 그들의 병참기지로 삼으려고 했단 말이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과 같이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지, 1932년에 도꾜에서 이봉창 선생이 히로히토 천황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일이 있고, 상해 홍구 공원에서는 윤봉길 선생이 천황의 생일 기념식장에서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져 상해 파견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9사단장 우애다, 거류민단장 가와바타를 즉사시켰다.

이 쾌거로 우리 조선국민의 사기가 차츰 일기 시작 했는 기라. 이런 와중에 대구의 악질 메가다는 총독부의 한 실력자와 대구의 실세 둘이와 함께 큰돈을 벌기위해 많은 량의 금괴를 외국으로 빼돌리려고 하는 모사를 꾸미고 있었다 그 말이다.

정말 대담한 놈들이지. 채란이가 말한 며칠 전의 춘앵각 모임은 그 계획이 이미 실천단계에 들어갔고, 바로 구체적 행동 계획을 확인 하는 자리였음이 분명하다 그 말이다.

채란: 오빠는 그 왜놈들의 음모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네예.
임용: 당연하지, 행님이 누군데---.

구식: 내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마, 아프리카의 좁은 늪에서 함께 사는 악어와 하마를 보면, 악어는 하마의 공간을 절대 침범하지 않고, 하마는 역시 악어의 공간을 넘보지 않으며, 악어새를 보면, 힘을 가진 악어는 악어새를 보호해주고 악어새는 악어 피부에 붙어 있는 진드기를 쪼아 먹는다.

이같이 힘 있는 자는 그들 끼리 서로 협동하고, 힘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봉사하며 보호를 받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목적이 있기에 공존. 공생하며 살아간다 말이야.

재선: 제가 중간에 한 말씀 먼저들이겠습니다. 행님,
구식: 급한 얘기라면 해보아
재선: 내가 대한방적에 심어둔 노조원 끄나풀로부터 알아 낸 정보에 의하면, 최근에 생산한 옷감 수 만 필을 국방색으로 염색하여 대구는 물론 부산 등지의 봉제공장에 보내어 군복을 주문하였는데 그 제품이 완성되어 침산동에 있는 대한방적 창고에 전량 입고되었다 합니다.

구식: (이 말을 듣고 구식은 잠시 생각하더니) 재선아, 전화로 역장을 바꿔다오.
재선: (한 쪽 벽에 붙은 전화기 쪽으로 다가가서 전화를 건다) 역장실 부탁합니다. 역장님이세요. 전화를 바꾸겠습니다.

구식이는 국희를 만나기 전부터 어머니와 친교가 있는 대구역장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삼촌, 삼촌 하고 불렀고, 같이 만나 동촌에 놀러가기도 하고, 역장이 우리 집에 와서 나라를 걱정 하는 예기도 들었다. 또 역장은 국희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구식: (전화통으로 다가가서) 삼촌 저 구식입니다--- 예, 예--- 별일 없습니다만---, 그 놈들이 땡비(야생의 조그마한 떼 벌)처럼 어찌나 집요하게 달라붙든지---, 조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입니다. 그리고 참 (소리를 낮추어 힘 있는 목소리로) 삼촌! 일본군이 혹시 만주로 가는 열차를 잡아 둔 것이 있는지요. 예, 언제라고요---, 내일 모래요, 화주는 총독부라고요. 33열차로 화물칸 6고뻬-- . 수송화물은 요. 예---군복이라고요, 그것 말고는 없었나요, 예, 무기가 한 꼬뻬--, 저녁 11시 출발이라고요, 고맙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재선: 그 일과 춘앵각 모의가 혹시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서 먼저 예기를 드린 것입니다.
구식: 니가 바로 짚었다.

-- 일본은 1937 제2차 상해사변을 통해 관동군을 투입 중국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일본군은 전쟁을 신속히 끝맺으려 했으나 국공합작(國共合作)을 이룬 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디쳐 그해 12월에야 겨우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엄청난 학살을 자행 했다--.
재선이가 보고한 것은 관동군 겨울용 군복을 만주로 실어 내려는 군수작전 정보이다.

구식: 기어코 메가다 그 놈들이---, 그래 한몫 잡자는 것이지--, 내일 모레--, 무기 한고빼--,

혼자 중얼대는 구식이의 입을 모두 쳐다본다. 구식의 표정에 어떤 결의가 보인다. 구식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반도 지도를 살피더니, 다시 재선, 임용, 채란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이 때 국희와 소희도 들어온다. 모두가 심각한 분위기여서 눈인사로 대신했다.

구식: 내가 아까 말했지만 지금 조선총독부 부총감 기무라, 일본헌병대 다깨미야 중좌, 경찰간부 오노 총경 등 세 사람은 내지(일본)에서 한 명문 고등학교의 선후배 동문 관계이다.

조선의 일본인들은 이 세 사람을 ‘반도삼총사’라고 부르지. 이들은 대구에 기반을 둔 메가다가 교묘하게 일본의 정책과 조선의 시장물정을 꿰뚫고 돈 벌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가다가 조선인의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응징하려했으나 그의 부친인 대한제국의 경제고문이었던 메가다의 영향력이 미나미 총독에게까지 작용되어 있어 손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 이를 눈치 챈 메가다는 3총사에게 뇌물을 주며 친분을 쌓았고, 그들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려고 어떤 계획을 꾸민 것이다. 즉 악어와 하마,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만들었다 그 말이지.

대구 메가다는 그들 3총사와 짝짜꿍이 되어, 1930년대 초부터 조선에 일고 있는 금광 열풍의 틈새에 풍기는 돈 냄새를 맡았고 이를 이용하여 일확천금을 거머쥘 계획을 세웠지, 경제동물의 표본인 메가다는 이미 재미를 본 미두장 투기열기가 가라앉자 연이어 불어 닥친 금광 열풍의 호기를 그대로 썩힐 수 없다고 생각한 거야.

일동: 그렇군요.
구식: 나는 그들이 관동군에 보급될 군복을 수송 할 때, 금괴를 만주를 통해 해외로 빼돌리려하는 눈치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단 말이야.

모두가 구식이를 경외의 눈길로 쳐다보며. 감격하고 있다.

임용: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구식: 우선 내말부터 끝내자.

--- 일찍이 명치유신으로 개명한 일본은 청일, 노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받아 내었다, 그 돈으로 중공업을 부흥시키고 더구나 일차대전으로 전례 없던 호황을 누렸던 것이다. 그런 일본이 1930년 미국 뉴욕으로부터 시작된 세계대공황이 불어 닥쳐 근 십여 년 간 만성적 경제 불황에 시달렸다. 이런 경제 불황을 타게 하기 위해 당시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은 마침내 1930년 1월 21일에 여태껏 버티어 오던 금 수출 정지 정책을 금 수출허용 정책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구식: 용이와 재선이에게 당부한다. 너희들은 조선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잘 아는 것이 항일운동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특히 돈에 대한 욕심은 이기심으로 대장부의 금기로 여겨왔지만 돈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금부터 깨닫기 바란다.

우리 조선이 돈만 많았어도 일본에 먹히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또 일본이 저렇게 중국과 동남아를 집어삼키려고 발악하는 것도 알고 보면 다 돈 욕심 때문이다. 그야말로 돈은 물자요, 돈은 힘이며, 돈은 바로 국력이다. 왜냐하면, 이 돈이 바로 요술방망이기 때문이라 그 말이다.

구식이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쉰다.

채란: 오빠 저 칠판에 ‘금본위화폐제도’ 라고 크게 써놓았는데 무슨 말인지 좀 가르쳐 주세요.
구식: 잘 물었다. 금본위제도란 간단히 말하면, 화폐(통화)의 십원, 백원 하는 명목가치를 금의 량과 똑 같이 취급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면, 금본위제는 누구나 금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 ‘자유주조’ 누구나 돈과 금을 바꿀 수 있는 ‘자유태환’ 그리고 국가 간 마음대로 금을 팔고 살 수 있는 ‘금자유수출입’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화폐제도를 금본위제도라 하는 것이다.

채란: 알 것도 같은데 아리송하네요.
임용: 좀 쉽게 말해줄 수 없는 기요.
구식: 어디보자, 가령 금 2돈이 10원과 같다고 할 때, 금 2돈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돈으로 만들어 달라하면, 금 2돈을 10원짜리 금화로 만들어 주든지 아니면, 지폐를 원하면 10원의 지폐를 받을 수 있다.

이같이 지폐의 명목가치가 금의 가치와 같다고 하여 그 돈을 ‘정화’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금본위제라 할 수 없다. 이런 금을 해외에 마음대로 수출할 수 있고, 반대로 해외에서 마음대로 들여 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에서는 그 나라의 돈을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겠냐.

임용: 행님은 도대체 권투하랴, 유도하랴, 독립운동 하랴 언제 이런 역사는 물론이요 시장판때기까지 다 꿰뚫고 있는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구식: 왜놈에게 쫓기다 보니 이곳에 숨어서 반년 이상 책과 씨름하고 국희가 모아다 준 각종 자료들을 함께 배우고 익힌 덕분이다.(채란은 삐친 표정이다)

채란: 오빠, 어머니께서는 우리나라가 1907년에 일본에 진 빚 천삼백 만원을 우리 2천만 국민이 3개월 간 담배를 끊어 모은 돈으로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 무려 2백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어 놓았다는 전설 같은 예기를 다른 언니들로부터 들었습니다만, 내가 오빠의 편지를 갖고 어머니를 찾아가면 금 백50돈을 줄 것이라 하셨는데 과연 어머니가 그 많은 금을 갖고 계실 런지 걱정이 되네요.

구식: 채란아, 어머니가 한복 주문을 받아 근 20년 동안 돈을 많이 벌었었지,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금 폐물을 장만 할 수 있었겠느냐. 내가 미두장 투기로 큰돈을 벌어 금괴를 모아 어머니께 맡겨둔 것이 있느니라. (모두가 놀란다)
임용: 행님, 금괴라 하였는데 도대체 금괴 한 개가 얼마나 되는데요.
구식: 보통 금괴 하나는 1Kg이다, 돈중으로 따지면, 266돈중 조금 넘는다.

재선: 행님 ‘미두장투기’로 돈을 벌었다고 하셨는데 미두장이 도대체 무언기요.
구식: 미두장 투기에 관하여는 다음에 상세히 설명 하겠지만, 우선 현물이 없는 쌀 구입권을 놓고 사고팔고 하는 선물 시장이라는 것만 말해두지.

메가다 겐진은 이 미두장에서 미두꾼들에게 고리의 ‘수형할인’장사(어음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던 것이다.

재선: 행님, 행님이 그런 투기장에서 큰돈을 모았다는 것인가요.
구식: 그래, 그때 나에게도 운이 따랐지, 여름 방학 때이지 싶다. 그해는 유달리 더웠고, 비가 제때 내려 누구나 벼농사가 대풍년이 틀림없다고 믿었지, 그러니 미두장에서는 쌀값이 떨어질 수밖에, 그러나 나는 틀림없이 추수하기 전에 태풍이 몰아치게 되면, 벼 논바닥을 확 쓸어 대흉년이 들 것에 초점을 맞추어 어머니께 얻은 돈 1,000원을 미두장 결제 소에 증거금으로 예치하여 10배인 10,000원의 거래 권리를 얻었던 거야.

즉 1활의 증거금만 내면, 현물을 파고 살 수 있는 권리를 10배로 해주었거든, 그 당시가 4-5 년 전이니 겨우 중학교 2-3 학년 때로 내 덩치는 조숙하여 지금과 다름없었지, 대풍년의 환상에 젖은 미두장 투기꾼은 손해 보기 전에 쌀 매입권을 마구 내다 팔게 되니 쌀값은 아침저녁으로 폭락하여 그야말로 쌀이 똥값이 될 때, 나는 3개월 기한인 선한(先限)으로 쌀 천섬을 사두었단 말이야.

정말 지금 생각해도 간 큰 도박이었지, 나는 3개월을 꾹 참고 기다렸더니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예상한대로 늦여름 태풍이 반도에 휘몰아쳐 두 곡창지대인 호남과 김해평야의 벼논을 확 쓸어갔단 그 말이거든--, 미두장의 쌀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두세 배 이상 뛰었었지.

게다가 일제가 만주 중국 등 식민지 개척을 위해 군량미를 암암리에 비축하고 있어서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석 달 전에 한 섬에 10원으로 산 것이 세 곱 반을 뛰어 35원이 되었다, 그 말이야.

한가마 당 25원의 이문이 생기니 1,000석이면 돈이 얼마인가. 몽땅 팔았다더니 본전 1,000원을 빼고 순 이익만 25,000원이 되었지, 겨우 3 개월 만에 25배의 장사를 한 셈이야. 나는 번 돈을 몽탕 털어 1 키로에 2,000원을 주고 금괴 17개 정도를 사두었던 것이야. 그동안 비밀리에 상해 등지에 있는 독립운동 기관 등에 10여개를 보내고 나머지는 어머니께서 보관하고 있단 말이야.

모두: (구식이의 말을 듣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구식: 너희들에게도 한 사람당 금괴 반 정도를 나누어 주려고 작정하고 있다.
임용: 행님 정말인 기요.
구식: 내가 거짓말 하는 것 보았느냐. 그런데 미두장 열풍이 서서히 꺼지더니 금광 열풍이 불어 닥친 거야. 도랑치고 가제 잡는 행운의 연속이었지.

임용: 좌우간 행님은 봉이 김선달 뺨칩니다 그려.
구식: (기분 좋은 웃음) 앞서 말했지만 당시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이 금 해제조치를 취했으나 2년이 흘러도 일본과 조선의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자 결국 일본은 이누가이 쓰요시 정권이 들어서 1931년 12월 13일에 금 수출 금지조치를 다시 단행하여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관리통화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야.

재선: 관리통화제인 재금조치가 결국 금 투기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 군요.
구식: 그렇지, 금 본위제도가 폐지되면 우선 태환권이 불태환권으로 바뀌니 금이 부족해도 돈을 더 찍어 시중에 풀어 경제가 돌게하고--, 한편에선 인플레션을 막기 위해 금을 비축하는데 총력을 집중하였지, 일종의 극약처방이지--.
예외 없이 다른 나라들도 자기나라의 금 보유량을 늘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재선: 그래서요,

구식: 자국의 금 보유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겠나. 당연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금 유출을 막고,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금을 정부로 집중시켜야 하고, 그리고 땅 속에 묻혀있는 금을 많이 캐내어야 하지 않겠어,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지.

이런 처지에 맞물려있는 우리 조선도 마침내 금 수출 금지와 매매단속, 금 생산 장려 정책이 펼쳐지고 그리고 정부의 금 사들이기가 시작되었지, 그야말로 조선은 일시에 금 투기 열풍에 휘말려 버렸지.
재선. 금 투기 열풍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났나요.

구식: 우선 조선의 산야는 금광맥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되었고, 정부는 금광업자에게 장려금도 주었지, 또 시중에서는 금의 밀매가 성행한 거야.

작년의 물가 정보지에 의하면, 일본. 조선은행 등이 국민들로부터 사들이는 금 한 돈쭝의 값은 14원인데, 미국이 25원, 영국이 26원62전으로 사들였단 말이야. 그러니 채란이 말을 들으면, 방물장수가 한 돈에 15원 50전으로 산다 했거든.

방물장수가 은행보다 1원50전을 더 주고 산다는 말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더 비싼 값으로 금을 팔 길이 있다는 뜻이고, 아니면 곧 금시세가 폭등할 것을 예상하고 금을 매집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분명하지 않는가.
재선: 그렇군요. 아마 일본정책에 반역하면서 외국으로 금을 밀수출 하려는 모리배가 있는 모양입니다.

구식: 그런 통 큰 모리배는 조선 천지에서 대구에 있는 메가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경성에서는 총독부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불가능하지 않겠어.
재선: 그래서 형님은 용이를 시켜 방물장수의 뒤를 켔구만요.
구식: 당연하지, 벌써 배가 촐촐하구나 저녁을 먹고 이곳에 다시 모이자.

모두 퇴장한다. 무대가 어두워지며, 천사들이 등장하여 합창을 하고 무녀들이 춤을 추고 들어간다.

 

다음 [시대극6]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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