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거짓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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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 거짓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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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네 번째 장편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사랑을...>의 표지
ⓒ 푸른숲^^^
 
 

"통속적이군… 인혜는 두 팔을 벌려 흔쾌히 눈 앞의 통속을 껴안는 기분이 되었다. 인혜는 통속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온 몸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의 중심을 관통하는 바로 그 통속. 정선 아라리가 매혹적이었던 것도 그것이 통속의 본질을 활짝 펼쳐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인용한 글은 소설 속 주인공 인혜가 서울 근교 유원지에 있는 식당과 러브호텔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을 쳐다보면서 떠올리는 생각들이다. 그리고 주인공 인혜는 "지나친 엄숙주의, 유교적 허위의식. 그런 것을 벗고 싶었다"고 생각하면서 "비가 오면 속살까지 비에 젖고, 햇빛이 좋으면 뼛속까지 볕에 그을리고 싶었다"라며 자신의 내면을 깡그리 까발긴다.

통속. 통속이란 낱말에는 대체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사전에는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또는 '전문적이 아니고 일반 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그래. 그래서 인혜는 사람들이 "통속이라는 말에 천박하고 유치하고 범박한 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그래서 인혜는 "세상을 뚫고 지나가는 방법은 통속밖에 없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작가 또한 이 소설을 "그럴줄 알았어"로 끝을 맺은 것도, 바로 통속의 본질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랜동안 객관화되고 보편화된 진실의 실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1998년, 두 권 짜리 장편소설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를 펴낸 김형경(43)이 역시 두 권 짜리 장편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2>(푸른 숲)를 펴냈다. 이 소설은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삶과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두 권 모두 8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돌멩이나 들꽃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모든 시작은 아름답다', '내가 사물에 참여하는 방식', '천의 얼굴을 가진 노래' 등이며, 제2권은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 '그날 밤 일어난 사건들의 관계', '거짓말에 대한 진실', '그래도 사랑이 남아 있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주춧돌은 30대 후반에 접어든 두 여성, 인혜와 세진의 과거사이다. 인혜는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한 뒤, 뒤늦게나마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광고회사 간부이다. 이에 비해 세진은 20대 초반에 겪은 성폭행의 충격으로 늘 정신적 장애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여성 건축가이다.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두 여성, 그러니까 중.고 대학시절까지 절친하게 친했던 두 여성이 3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여사>(오늘의 여성을 생각하는 사람들)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차분히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두 여성은 <오여사>라는 모임에서 그들이 바라보는 사랑과 결혼관, 그리고 실패담에 대한 구체적고도 폭 넓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에서 두 여성은 20대 초반까지는 둘 다 거의 엇비슷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이 두 여성이 살아온 삶은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두 주인공 인혜와 세진이 서로의 과거사를 차분하고도 솔직하게 되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혜는 성 불능에다 걸핏하면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과의 첫 결혼에서 갈등을 겪다가 마침내 이혼을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인혜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만난다. 하지만 이 남성들은 모두 인혜의 정신적인 사랑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남성들이 아니다.

인혜 또한 그들에게서 그런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다. 애당초 인혜의 육체적 만족을 위해서 만나는 그런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인혜는 그 남성들 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끝까지 믿고 있는 기혼남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혜는 오로지 육체적 사랑에만 탐닉하는 냉소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 세진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가정적, 사회적 억압 탓으로 지금까지도 지독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다. 세진은 가정사정으로 인해 생후 18개월 만에 외할머니댁에 맡겨진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성폭행을 당한다. 세진을 끝없이 짓누르며 정신분열증으로 몰아넣은 원흉이 바로 이 두 가지 억압이다.

이 소설의 핵은 세진이가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으며 점차 자신의 실체와 여성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정신과 의사는 세진에게 정신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문제점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책은 사랑으로 상처 입은 사람에게 새로운 화해의 길을 기적같이 제시하는 면담록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주영, 소설가)

이번에 펴낸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의 미덕은 남성과 여성을 특정한 잣대로 분리시키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인식 속에서 가부장적 사고가 뿌리 깊게 박힌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억압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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