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너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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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너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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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24>이강산 '너를 부른다'

거듭거듭 꽃 피었다 지고
눈 내렸으니
잊지 않고 다시 너를 부른다

내 품안에 종신형을 살고 있는 너희들
희망이여, 너를 부른다
술에 취해 상경하는 야간 열차의 불빛
휘청거리는 저것인가, 희망은
우리가 곧잘 쓰고 버리듯
그리움이나 슬픔 따윈 학습하지 않는가
추억은 무엇을 대물림하는가
당신 삶이 종지부를 찍도록
왜 이 골목 저 거리에 떼를 지어 기웃거리나
늙지 않고 왜 날마다 새로워지는가
불혹이 되도록 아무 인기척이 없구나, 사랑은
어느 여행길에서 하룻밤 묵는가
성탄절 근처 봉두난발의 저 불빛들은
사랑의 비유인가, 직설인가
대화동 온돌의 집에서 보았어
아홉 살 뇌성마비 강소아는 뒤틀린 손을 놀리고 있었지
그 손놀림인가, 희망은

 

 
   
  ^^^▲ 해바라기
ⓒ 우리꽃 자생화^^^
 
 

희망. 말만 들어도 어느새 가슴이 마구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희망. 단어만 떠올려도 어디선가 하얀 돛을 단 배가 내 마음 속으로 힘차게 달려올 것만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이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만약 희망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은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살아있는 삶이라고 할 수가 없겠지요.

"거듭거듭 꽃 피었다 지고/눈 내렸으니/잊지 않고 다시 너를 부른다" 희망이여. 그렇습니다. 시인은 절망의 끝을 지나 이제 희망을 부르고 있습니다. 절망의 끝을 지나보지 않은 자가 어찌 감히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슬픔, 추억, 사랑, 기다림, 슬픔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어찌 감히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입니다. 하지만 절망이 없다면 희망도 존재할 수가 없겠지요. 또한 그와 반대로 희망이 없다면 절망도 없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내 품안에 종신형을 살고 있는 너희들"이 희망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여" 하고 희망을 기슴 벅차도록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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