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흥사지서 전성기 백제 금은동 사리기 등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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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창왕대 조성기 밝혀주는 명문확인 등 백제금동대향로 이래 최대 발굴

^^^▲ 전성기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금ㆍ은ㆍ동 사리기^^^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가 올 해 실시한 부여 왕흥사지 제8차 발굴조사 결과 전성기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금ㆍ은ㆍ동 사리기 발견 및 백제 창왕대(577년) 조성기를 밝혀주는 명문을 확인하는 등 백제 금동대향로 이래 최대의 발굴성과를 거두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4일, 왕흥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자문위원회 및 현장학습의 날 행사에서 밝힌 이번 조사의 중요한 성과로는 ▲최초로 백제시대 목탑지에서 사리기가 봉안된 사리장엄구 확인 ▲사리함에서 왕흥사 창건(577년)과 관련된 명문기록 확인 ▲사리기의 봉안수법과 목탑 심초부 조성에 대한 새로운 기법 확인 ▲사리구를 포함 백제시대 귀금속 및 장신구 등 다량의 진단구 출토 등 당시 공예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리함(높이10.3㎝)은 장방형 심초석(100×110㎝) 남쪽 끝단에 16×12×16㎝의 크기로 마련된 사리공 내부에 단면 사다리꼴의 화강암 뚜껑에 덮여 봉안 되어 있었다. 사리함 재질은 청동으로 원통형 동체에 보주형 손잡이가 부착된 볼록한 뚜껑을 덮었으며, 함 내부에는 다시 은제사리병(외병)을 봉안하였고 이 은제 사리병 안에는 다시 금제사리병(내병)이 봉안돼 있었는데. 실제 사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 백제 창왕대(577년) 조성기를 밝혀주는 명문^^^
명문은 사리함 동체부에 5자6행의 음각체로 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본래 사리 두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王昌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 神化爲三)라고 적혀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그동안 삼국사기의 기록에 600년(법왕2년)에 축조되고 634년(무왕35년)에 낙성되었던 왕흥사의 실제 축조연대가 577년(위덕왕24년)이라는 것과 위덕왕이 597년(위덕왕44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阿佐)태자 이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었다.

명문 및 사리구의 구성내용을 통해서 절의 축조가 같은 위덕왕 대에 만들어진 능산리사지(567년) 보다 10년 뒤에 조성되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짐으로써 백제사 편년과 동시기 고고학적 자료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백제 위덕왕대의 정치ㆍ사회ㆍ문화적 흐름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단서를 확보하게 됐다.

^^^▲ 곡옥, 오색 옥구슬, 금실, 동전 등 다양한 진단구^^^
진단구는 심초석 남쪽변을 중심으로 다량 출토되었는데 목걸이 및 팔찌, 비녀, 금제귀고리 등 장신구로 사용했던 구슬류와 옥류, 금제품, 금동제품, 은제품, 관모장식 등을 비롯 철도자, 운모로 만든 연꽃,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550~577년)에서 사용되었던 상평오수전 등 다량의 유물이 확인되어 백제시대 장신구연구 및 귀금속 제작, 대외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백제는 성왕대부터 중국에서 사리신앙의 영향을 받아 위덕왕대에는 일본에 사리와 함께 승려와 장인(匠人)을 파견하는 등 불교문화의 일본전파에 주된 역할을 하였는데, 이번 사리구와 진단구는 이러한 백제불교문화의 우수성과 국제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목탑지^^^
사리함이 봉안되었던 목탑지는 중층기단을 하고 있으며 하층기단을 기준으로 남북ㆍ동서길이 14m의 정방형 규모로 중심부에 장방형 심초석(100×110㎝)이 안치되어 있는데, 심초석을 안치하기 전에 기단토를 먼저 조성한 후 되파기를 하여 그 중앙에 심초석을 안치하였고 심초석을 안치 한 후 다시 심주를 얹기 위한 80×80㎝의 황색 점토 및 사질토로 판축된 토심적심으로 보이는 정방형시설을 마련하였는데 유실로 인하여 그 상부에 심주를 위한 별도의 초석을 사용하였는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탑지와 관련해서 기단 특히 심초부의 조성수법은 그 동안 알려졌던 심초에 심주를 바로 올리는 수법과는 다른 방법으로 백제시대 목탑 축조방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왕흥사지 발굴조사지 전경^^^
이번 조사에서는 또 목탑지를 관통하는 절의 중심축선 상에 동서석축에 잇대어 남북방향으로 돌을 쌓아 축조한 왕의 행차와 관련된 어도(御道)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금강 쪽으로 연결되며 현재 확인된 규모는 남북길이 62m, 동서너비 13m로서 동서석축과 잇대어진 부분부터 남쪽으로 20m가량은 경사지게 내려가고 그 남편부터는 거의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어 어도(御道)로써 사찰로의 진입을 편리하게 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또한 이 시설과 연결되는 동서석축의 약12m 구간에는 석축이 축조되지 않았는데 이는 이 공간에 접안시설에서 경내로 들어가기 위한 문지나 계단지 등을 시설하여 이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의 조사에서 석축은 경사구간에서 최대 10단(남북석축의 동측 부분)까지 확인되고 있으며 평탄한 구간에서는 4단 정도까지 확인되었다.

한편, 동서석축은 총 95m내외의 길이로 높이 380㎝ 16단정도 남아있으며 계곡부에 사찰을 축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대지조성을 위한 축대로서의 기능과 강물유입을 막기 위한 제방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단구 이외의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동서석축 전면부의 회색사질점토층과 황적갈색사질점토층에서 수습되었는데, 와전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와전류는 백제시대 평기와가 대부분이나 통일신라시대 평기와 및 고려시대 평기와도 출토되고 있으며, 특히 고려시대 기와는 목탑지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또한 연화문수막새, 연목와 등이 다수 확인되고 있고, 특히 석축 전면부에서는 소조 광배로 보이는 토제품 2점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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