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흥 작가, 소설집 “꿈꾸는 미모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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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작가, 소설집 “꿈꾸는 미모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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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부박의 시대에 대한 성찰

 

작가 김기흥 선생이 소설집 [꿈꾸는 미모사]를 출간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꿈꾸는 미모사]를 비롯해서 [굿바이, 내 사랑 짱구] [어제 불던 바람] [그 추었던 1998년 여름, 그 해] [벙어리 뻐꾸기] [풍화] [그 날 이후] [젖은 날개로] [직선과 곡선] [그 해, 여름의 쓰르라미] [환상의 늪] [신열]12편의 소설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주로 지난 세기 압축적 산업화 과정을 살아내던 음울하고 부박한 소시민들의 풍경이 새겨져 있다.

표제작인 [꿈꾸는 미모사]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무력한 인물의 식물적 반응을 그리고 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몸의 면적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모사처럼 평생을 오그린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정지되어 있고, 환경과 조건이 바뀌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과거라는 울타리 안에 은신하고 있다. 선친의 유일한 유품인 벼루를 존재 유지의 은신처로 삼아 과거 속에 침잠하는 것이다. 벼루는 조선시대 간신배들을 준열히 탄핵하다 귀양살이를 한 선조가 남긴가보로서, 화자의 아버지는 이를 조상이 겪은 박해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동일시하는 등가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육이오 전란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상이용사다. 상처를 지닌 인물인 것이다.

다리를 전다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아버지는 도망가는 여자를 멀뚱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직장 상사의 책임전가로 모든 잘못을 뒤집어쓴 채 다니던 은행을 물러나야 했다. 이후, 아버지는 미모사처럼 몸을 닫고 살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내가 살아야 할 시간이 훨씬 질기고 외로울 거라는 생각아버지처럼 길고 긴 시간을 허비한 다음에야 내가 키우고 있는 미모사 잎 퍼지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젊은 화자를 막막한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물론 시간이 흘러, 현실사회 안에서 전과前過가 훈장이 되는 변화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아버지의 삶은 대물림될 게 뻔하다. 상상해 보자면, 한때 정의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자부自負가 그에게 은신의 울타리로 작동되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 젊은 날의 의기가 화자에게 아버지의 또 다른 벼루가 되고 말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風化]에서의 현우도 자기만의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의 상처받은 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 현우는 꿈꾸는 미모사에서의 아버지와 화자인 나가 복합되어 있는 또 다른 역사의 미모사다. 학생 시절 민주화를 위해 시위를 주도하다 퇴학을 당하고, 공장에 불법 취업해 노동 운동을 하다 노조 결성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사람,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아내놓고 보니 시골의 과수원집에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일을 하는 과수원지기가 되어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역사의 현장을 지키다 그 역사의 뒷전에서 풍화되어 가고 있는 현우라는 인물이다. 그를 찾아간 친구의 말에 현우의 상처의 삶이 요약되어 있다.

현우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참담한 절망은 이해할 수 있다. 같이 노동운동을 하던 친구의 고자질로 현우 니가 끌려가서 당했을 고문의 고통이 어떠했을까도 짐작할 수 있다. 니다리가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 돌아와야 할 게 아니냐. 아직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아니냐. 사회에 네 몫으로 남겨진 일을 하면서 당당히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세상은 아직 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우는 그에게 부과된 유폐를 해제할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세상이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가 사랑했던 역사의 현장으로부터 단절시켰을까. 무엇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의 통로를 폐쇄시켰을까. 그가 사랑한 세계와 역사로부터 방치된 채 풍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오늘의 역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젖은 날개로]의 허 사장은 어떤가. 허 사장은 당국이 색출하려고 애쓰는 개발시대의 소위 악덕 부동산 업자다. 부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인물로, 개발 지역의 상가 분양권이나 아파트 입주권을 노리는 투기 세력을 이용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허 사장의 이러한 집착과 탐욕에는 뿌리가 있다. 허 사장이 유년이던 보릿고개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이웃 지주의 쌀가마를 훔쳐 숨겼다가 들통이 나서 멍석말림을 당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허 사장은 어린 때의 일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다.

온몸이 퉁퉁 붓고 치자 물을 들인 것처럼 누런 색깔의 얼굴을 한 할머니는 오랫동안 누워만 지냈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쌀밥에다 고깃국을 훌훌 들이키면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설 병이라고 했다.”

못 먹어 죽은할머니와 멍석말림을 당한 아버지의 치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데, 부에 대한 속물적 집착을 조건반사적인 욕망이라는 말 대신 달리 설명할 말이 또 있을까. 조건반사란 결국 상처를 감추거나 덫 내지 않으려는 무의식의 행동이다. 허 사장 또한 상처의 인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허 사장에게 붙은 양코라는 별명도 상처의 다른 이름이다. ‘양코는 허 사장 버지가 명석말림을 당한 직후 허 사장 친구 놈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허 사장 아버지의 별명이 양코여서 자연스럽게 그의 별명도 양코였다. 도둑놈 자식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별명이었다. 별명의 대물림은 상처의 대물림이고 삶의 대물림이다. 허 사장은 나름의 부를 일구었고 아버지를 가해한 집안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지만, 끝내는 아버지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제 불던 바람][그 추웠던 1998년 여름, 그 해]IMF 관리 체제에서 겪는 기업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으며 [벙어리 뻐꾸기]에서도 직장인의 고뇌와 갈등을 세부 스토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작품과 소재적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어제 불던 바람]에서는 대기업에서 사보 만드는 일을 하다가 IMF 때문에 쫓겨나 뒤늦게 송 씨, 박 씨 속에 합류한건설 현장의 막노동자이다.

[그 추웠던 1998년 여름,그해]또한 IMF 체제 하의 은행에서 정리해고를 당해 실업자의 대열에 들어선 구직자이다.

[벙어리뻐꾸기]의 대기업의 계열회사 영업부장이지만 회사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따라 사직 강요나 다름없는 해외영업팀 발령을 받고 사표를 던진 실직자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잘 살아왔다는 말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자신을 맞추어가며 현실에 안주해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뜻밖에 일상의 균형을 위협하거나 훼손하는 외부의 압력에 맞닥뜨리게 된다. 개인의 힘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기에, 이들은 상황 대신 자기 인생의 시계를 새로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의 시계라는 게 손목시계의 시간을 조정하듯이 그렇게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인가. 거대한 현실의 압력 앞에 무력한 개인은 발걸음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부박한 인생살이다. 어느 누군들 이 부박한 삶의 현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교육 현장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그 해, 여름의 쓰르라미에서도 그날 이후에서도 부박한 소시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 현장이든 교육 현장이든 조직에는 그것을 작동하는 흐름이 있다. 소시민들은 그 흐름을 바꿔보려고 싸움을 걸기도 하고 신념의 벼리를 세우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좌절하고 어떤 사람은 긍지를 지킨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침묵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소시민의 부박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부박함이란 크고 작은 상처가 남긴 흉터의 얼룩으로 표현된다.

[幻想의 늪]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는 아찔한 현기증과 결부되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초래한 어머니의 불륜과 그에 대한 주인공의 적의는 번번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는 꿈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적의가 마침내는 자신의 여자에게까지 전이되어 여자와 몸을 밀착시켰다고 하는 순간, 나는 심한 현기증느끼며 여자의 목을 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작품을 통해서 작가 김기흥 선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들은 한층 더 악화되고. 계층 이동의 희망이 거부된 실직자들이 넘쳐나고, 모두가 생존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생존의 임계점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존재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 김기흥 선생의 소설 속 인물은 지난 세기의 삶의 조건과 오늘의 삶의 조건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 현기증 속에는 어머니와 백곰의 환영이 어른거렸기때문이다. 살의殺意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지만 예의 그 현기증젖은 날개로에서도 격앙된 감정을 대신하는 증세로 나타난다; “허 사장은 몽둥이로 뒤통수를 난타당한 듯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양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주인공에게 양코라는 별명은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의 치부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자극이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윤성희 선생의 이 작품집을 극찬하고 있어 이 작품집이 더욱 더 빛이 나고 돋보인다.

작가 김기흥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고희를 넘어 첫 소설집을 발간한다며 참으로 부끄럽고 쑥스럽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고 말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작가 김기흥 선생은 대전에서 4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탄동초등학교. 한밭중학교. 보문고등하교. 원광대학교/배제대학교를 졸업했다. 대전의 머들령문학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고등학교시절 원광대학교 주최로 열린 고교생 문예작품 현상공모에 당선하여 원광대학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고 1970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하여 소위 문단에 데뷔했다.

더구나 파월용사이기도 한 김 작가는 공립고등학교 국어교사로 38년 재직 후 정년퇴임 했으며, 현재 대전에 거주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하고 있으며, 또 다른 명작을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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