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광주사태시 무장한 폭도들 | ||
열일곱살 철없는 고등학생까지 무장 시위 차량에 탑승한 사연을 알게 되자 또 하나의 조직이 배후에서 이들을 조정하는 것 같다.
부대를 지키는 당번병에게 데려온 16명의 폭도들을 보호 하라고 당부한 후 전화국 옥상을 향해 뛰었다. 옥상에 들어서자 대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계엄군이 수십명의 시민군을 학살 했다" 며 이들이 시민군으로 특공대를 조직하고 일전을 불사 하겠다는 협박전화가 수차례 걸려 왔다고 당황해 한다.
나는 부대에서 면담했던 고등학생의 전후 사정을 알려주고 이는 시민군이 꾸민 또 하나의 유언비어 로 단정.그를 안심 시켰다. 비상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계엄군이요 방금 나주 경찰서장이 관사에 피신중 몰려간 부녀자들 손에 살해 되었다"는 익명의 주민 제보를 받았다.
대대장이 그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표정이 굳어 진다. 조금전 돌진 하던 무장버스의 발포 이후 삽시간에 퍼진 유언비어에 모두가 당황했다. 특공대가 금천면 삼거리 0모씨 과수원 야산에서 탈취한 총기로 사격연습을 한다는 제보가 잇따라 들어온다.
또 다시 헬기 정찰을 요청하는 무전 교신을 시도 했으나 통신이 두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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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그 불행한 사건이 일어난 후 벌써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폭도들의 난동인 광주사태는 이제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되었고, 그날 죽어갔던 광주 시민들은 폭도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부터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되찾기도 하였다. 또 그때 국가 변란을 획책했다 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가기도 했던 사람들은 이제 이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고, 반대로 이들을 탄압하던 당시 신군부 세력들은 그들의 죄상과 함께 재임 기간중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하여, 사람들은 이제 그 참혹했던 역사의 비극은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