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윤하 선생 인터뷰 6편 ‘강화 마리산 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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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하 선생 인터뷰 6편 ‘강화 마리산 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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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 위치한 아트코리아방송 미디어센터에서는 2018년 7월 21일 오후 소윤하 선생의 인터뷰 6편 ‘강화 마리산 혈침’편 토크쇼가 진행됐다.

일제 침략시기에 우리나라의 명산 곳곳에 우리나라의 생기를 차단하기 위해 심장에 꽂았다는 혈침(쇠말뚝)에 대한 이야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에 관한 건’편에 대한 소윤하(민족정기선양위원회)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문총련 박동위원장이 아트코리아방송 리포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사진=김한정 기자) ⓒ뉴스타운

제보내용 : 제보자 신 상윤 씨는 현재 박힌 곳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節穴이므로 일본 사람들이 박은 것은 틀림없으나 이것을 뽑지 말고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 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제 1차 확인탐사

2004년 1월 1일 오전 10시에 사당동에서 일행이 합류하여 황 득 씨가 운전하여 출발했다. 김포시를 경유하면서 백 정혜 김포보건소장과 동승하여 마리산 국민관광지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11시50분.

관리사무소에 들려 우리가 찾아온 까닭을 설명하니 장명훈사장과 이기원이사장이 친절하게 대하면서 "마리산에 일본사람들이 혈침을 박았다는 말은 많이 들어 왔었지만 지금까지 그 쇠말뚝을 발견은 못 했습니다."고 했다. 그리고 엉뚱한 일본 황실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해 봄에 일본 황실 황족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참성단 안에 있는 우물을 청소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의심스러워서 승낙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그 사람 명함이 있습니다.하고 장 명훈 사장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梨本宮(舊 皇族 家 六代目祭祀 繼承 梨本隆夫'라 쓰여 있었다.

일행은 모두 놀란 표정이다. 우리는 참성단 안에 샘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었다. 그런데 일본 황족이 어떻게 참성단 안에 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또 그 우물청소를 왜 자신들이 하겠다고 왔었단 말인가 하고 충격과 함께 큰 의문을 가졌다.

장 명훈 관리사무소 사장에게 그 명함을 복사하여 달라고 해서 챙기고 오늘의 목적인 쇠말뚝을 찾아 마리산을 올랐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오늘은 2004년 1월 1일이라서 참성단에서 하늘에 참배하고 일출을 보기위해 올랐었던 사람들이 봇물처럼 쏟아 져 내려 왔다. 모두 어젯밤과 새벽에 올라갔었던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에는 7~8세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즐거운 표정으로 깡충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르듯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참성단에서 하나님께 참배하고 한 해를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볼 때 우리민족이 이제 본래의 모습을 찾아 가는 것 같아서 가슴이 울렁이고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젊은이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얼굴이 상기되어 힘차 보였다.

차량 두 대가 교차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다. 그러나 어깨와 어깨가 부디 쳤다. 올라갔었던 사람들이 희망을 한 아름씩 안고 힘차게 내려오는 그들을 마음속으로 축복하며 그들의 앞을 피하여 갓길로 올랐다.

넓은 길은 감리교회 앞 샘터까지다. 샘터를 지나서부터는 돌로 만든 층계가가 시작된다. 이 층계는 참성단까지 이어지고 973층계라고 한다.

층계를 오를 무렵부터는 내려오는 사람들이 한 줄이 됐다. 올랐던 사람들이 거의 다 내려 온 모양이다. 우리 뒤를 이어 오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신 상윤 씨로부터 들었었던 위치를 감으로 잡아 주변을 살피면서 올랐다.

몇 번이고 가파른 층계를 반복하여 오르다가 800층계를 넘어서 왼 편에 펑퍼짐한 바위에 쇠말뚝 한 개가 박힌 것이 발견 됐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그러나 신 상윤 씨로부터 받은 사진과 비교하니 위치는 틀림없는데 높이가 다르다. 바위에 박힌 쇠말뚝은 약 15cm정도 올라 와 있다. 사진 속의 쇠말뚝은 5~60cm는 됨직한데 현재 바위에 박힌 것은 너무 짧다. 누군가가 뽑으려고 하다가 뽑지 못하고 쇠톱으로 자른 것 같았다. 사진에 나타난 빈 구멍도 있다. 이 빈 구멍이 일곱 개다. 사진에는 다섯 개의 구멍이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 위치에서 보니 그렇게 나타 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사진 속의 쇠말뚝이 틀림없는데 문제는 사진 속의 쇠말뚝보다는 많이 짧아 졌다는 것이다. 사진에는 2003년 10월 27일이 찍혀있다.

사진과 쇠말뚝이 박힌 위치는 동일했지만 길이가 많이 짧아 졌다. 굵기는 직경 3cm. 재질은 무쇠다. 일행은 여러 가지로 추정하는 말들이 나왔다. 누군가가 쇠톱으로 잘랐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잘린 부분이 톱으로 잘랐다고 보기에도 의문이 남았다.

자국이 톱으로 자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톱으로 안 잘랐다면 길었던 쇠말뚝이 저절로 밑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쇠말뚝이 저절로 바위 속 깊이 파고들고 있단 말인가?

그 사이에 50cm정도가 파고들었었다면 이것은 일제가 박은 쇠말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쇠말뚝이 저절로 바위를 뚫고 파고 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뽑으려다가 안 뽑히니 톱으로 자른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딴은 엉터리 결론이지만 달리 어떤 추리도 상상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쇠말뚝이 저절로 바위를 뚫으면서 파고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일행은 이 쇠말뚝 주변에 뚫어 놓은 일곱 개의 빈 구멍에 흥미를 갖고 각기 해석했다.

결론은 칠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의견일치가 됐다.

따라서 이 쇠말뚝은 일제가 박은 혈침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왜냐하면 이 쇠말뚝을 박은 자들은 자연을 이용한 주술로써 이 땅을 농락한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백성들은 자연을 섬긴다. 하늘에 별을 섬기고 산을 섬기고 산의 바위를 섬기고 심지어는 바다나 강 개울의 용이나 호랑이까지도 섬긴다. 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파괴하려고 일제는 자신들이 섬기는 천조대신과 그 밑에 잡신을 섬기라고 강력히 주문했었다.

신사를 차려놓고 신사참배를 강요했었던 저들이 아니던가?

신사참배를 시켰는데 불응하다가 모진 고통을 당했었던 어른들의 옛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일행은 준비 해 간 주. 과. 포를 진설하고 간단한 예를 마치고 이것은 일제가 설치한 혈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 공감하고 후일 다시 정밀 탐사를 할 것을 다짐하고 참성단에 올라 하늘에 예배하고 하산 했다.

이것이 제 1차 마리산 혈침 탐사였었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제 2차 확인 탐사

현지 탐사 경위

2004년 1월 7일 오전 10시 40분 신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강화 화도 행 버스를 타고 출발, 화도면 종점에 도착하니 12시 15분이었다.

마리산 입구 주차장 옆에 있는 길목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관리사무실로 올라갔다. 때마침 20년 넘게 관리사무실에 근무했다는 이 상섭 씨를 만났다.

이씨는 1차 탐사 왔었을 때 장사장이 오래 근무하던 사람이라고 말 했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씨에게 가지고 갔었던 사진을 보이면서 이 쇠말뚝을 아느냐고 물었다. 사진을 본 이 씨는 엉뚱한 대답이다.

"이것은 1978년도에 계단공사를 할 때 케이블카를 설치했었는데 경운기 등 엔진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박아서 쓰던 것으로 아는데요."한다.

"그 때 이것을 박는 것을 직접 보셨습니까?"

"아니요. 직접 박는 것은 못 봤습니다만 그 때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계단 돌을 달아 올렸거든요. 그 때 쇠말뚝을 박아서 장비를 고정시키는 데 쓰고 일부는 뽑고 나머지 안 뽑힌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전에 박혀 있었던 것을 사용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지요."

"당시 작업을 했었던 분을 만날 수는 없을까요?"

"없을 껄 요. 지금 원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아무튼 같이 가보시지요. 현장을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으면 저로서는 고마울 뿐입니다."

이 씨와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쇠말뚝이 박힌 북쪽 바위 언저리에 홈이 파여 있었다.

이 씨는 그것을 케이블카 선이 지난 자국이라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나 잠시 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케이블카 선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케이블카의 선이 그곳에 닿아서 바위에 홈이 파이려면 쇠말뚝이 없어야 한다. 뒤쪽에서 케이블선이 지나려면 그 쇠말뚝을 통과해야 된다. 얕은 쇠말뚝이나 높은 쇠말뚝이나 간에 케이블 선이 지나려면 쇠말뚝이 없어야 바위에 케이블 선이 문질러져서 홈이 생길 수 있다. 나의 설명을 들은 이 씨도 동의했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고의적으로 홈을 팠다고 보인다. 홈의 표피가 매끄럽다. 이것은 케이블선이 지나가면서 문질러져서 만들어 진 홈이라고 보면 옳다. 그러나 이 쇠말뚝이 박혀있는 이상 케이블선이 통과하기란 불가능한 위치다. 쇠말뚝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쇠말뚝이 안 박혔다면 케이블 선이 지나다니면서 만들어진 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씨 말대로 그곳에 경운기 엔진을 고정시키고 케이블 카 선이 바위에 닿을 수 없다.

이 홈은 케이블 카 선이 지나다니면서 만들어 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정교하게 판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 목적은 현재로써는 설명 할 수 없다.

이 씨는 이 말뚝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는 높이 솟아 있었는데 군청에서 이 쇠말뚝을 뽑으라고 해서 뽑으려고 애를 썼었지만 뽑을 수가 없어서 해머로 아래로 박으니 쑥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모양이라고 한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신 상윤 씨는 이곳이 節穴이라서 일본 사람들이 박은 혈침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이나 케이블카의 선에 의해서 파인 것 같은 홈 등을 종합 해 볼 때 주술적인 용도에 의해서 박혔을 가능성은 있지만 객관성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와 이 씨는 의문을 안은 체 참성단으로 올라갔다.

참성단에 오르자 이 씨가 말했다.

"이곳에 무궁화를 심어서 제법 잘 컸었는데 얼마 전에 누군가가 톱으로 자르고 소금을 뿌려놨었어요."하고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살펴보니 참성단을 오르는 층계 왼 편에 아직도 캐낸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음속이 답답해 졌다. 어떤 사람이 이 성스러운 곳에 심었었던 무궁화를 잘라 내고 소금을 뿌렸단 말인가?

"그런데 일본 황족이 이곳에 있는 샘을 청소하겠다고 왔었다면서요? 그 샘이 어떤 것입니까?"

"아! 그 샘이요? 그 샘은 바로 저곳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나무뚜껑으로 막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본 황족이라는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찾아와서 우물 청소를 하겠다고 했었지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요."

'그러면 금년에도 오겠네요?'

'그건 모르겠어요. 매년 왔었어도 못 했으니 포기 했는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겨울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참성단에서 내려왔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1월 8일

어제 밤은 단단학회에서 잤다. 이곳에서 정 해원 씨와 이 인로 씨를 만났다.

이 인로 씨가 일제혈침제거에 관심을 보였었기에 동행하여 단군 등 길과 참성단을 거쳐 함허동천으로 넘어가는 능선을 살펴보기로 하고 아침일직부터 샅샅이 살펴보았다. 현재 발견 된 쇠말뚝이 일제가 박은 것이라고 단정 지을 단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마리산 전체를 살펴보기로 작정했다. 마리산 뿐만 아니라 강화도의 모든 산에 일제가 박았을지 모를 모든 말뚝을 찾아내어 모두 제거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다.

1월이라서 날씨는 매우 차가웠다.

참성단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양지바른 곳에서 개산제를 올리던 무명산악회원들을 만났다. 산신제를 올렸던 제수를 논아 주면서 대화 가운데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 산부인과바위에 쇠말뚝이 한 개가 박혀있는데 틀림없이 일본 사람들이 박은 혈침이니 뽑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씨와 나는 온종일토록 마리산의 능선들을 살폈다. 그러나 쇠말뚝은 발견하지 못했다. 해질 무렵에 단단학회로 돌아와서 주인 신 매녀 여사에게 하룻밤을 지내게 해 준데 대하여 고맙다고 사례한 후 단단학회를 떠났다.

관리사무소에 도착하여 이 상섭 씨를 만났더니 오늘 쇠말뚝 한 개를 새로 발견했다고 한다. 위치는 문제의 쇠말뚝이 박힌 그 곳에서 위로 약 10여 미터 더 올라가서 왼 쪽 암벽의 뿌리에 박혀있다고 한다. 관리 사무소 직원들은 관광객들이 버린 휴지를 줍는 작업도 중요한 작업 중에 하나인데 휴지를 줍다가 절벽의 아래에 박힌 쇠말뚝을 보았다는 것이다.

'새로 발견 된 쇠말뚝은 내일 날이 밝으면 확인하기로 하고 오늘 저녁에는 강화도에 대한 역사를 잘 아는 친구가 있으니 가서 만나보자.'고 제의한다.

그의 제의에 동의하고 이 씨의 차에 동승했다.

도착한 곳은 강화대교 옆에 있는 강화휴게소다.

이 휴게소의 주인인 안 형섭 씨를 만났다. 안 씨가 강화도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 안 씨도 수 년 전에 마리산 관리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일본 황족이라면서 참성단 우물을 청소하겠다고 했었지만 불허했었다고 한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마니숭조회 박종간 여사의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차를 보낼 테니 이리로 오세요.'한다.

옛날에 황우연씨와 함께 마니숭조회를 만들어 단군과 단군의 부인을 모시고 신행하는 신앙단체 대표로서 호는 坤母라 한다.

잠시 후 곤모가 보낸 차를 타고 마니숭조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마리산에서 발견된 쇠말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참성단 우물이야기가 또 나왔다.

"몇 년 전에 일본 승려가 찾아와서 마리산 참성단 우물을 청소하게 해 주면 단군성전을 지어 주겠다고 해서 그 사람 말이 진짜인지 알기 위해서 그러면 나를 일본으로 초청해 보라고 했더니 얼마 후 진짜 초청이 와서 일본을 다녀왔어요. 그 때 일본에서 내 신력을 떠보려고 일본 신또 꾼을 불러와서 시험을 봤는데 그 때 그 신도 꾼이 곧 죽게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당신은 곧 죽는다.'라고 했었는데 그 다음 날 죽었다고 합디다. 그리고 그 일본 승려가 참성단에 우물을 청소해서 우물이 다시 나게 만들면 우리나라도 잘되고 일본도 잘 된다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청소해서 물이 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우물 속에 못 된 짓을 했었던 것을 확인 하려고 했었던 같이 느꼈어요. 그리고 이 방자여사 양아들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승만 대통령 양아들이라고도 하는데 믿을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그 사람 앞에 조계사 다니는 신도가 있는데 이 사람들도 별로 건전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어요. 나중에 보니 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우고 야단들입디다."

이상도 한 일이다. 왜 참성단 우물을 청소해야 한다고 일본 사람들이 나서서 야단들일까? 필유곡절이리라 이를 어떻게 확인 할 수 있을까?

이 숭조회가 있는 산이 穴口山이다. 이 혈구산에도 日帝 장난의 쇠말뚝이 박힐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보기로 생각하면서 꿈속으로 들어갔다.

 

1월 9일

아침에 서둘러서 마리산 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이 상섭 씨가 어제 새로 발견했다는 쇠말뚝을 보기 위해서다.

이 쇠말뚝이 혈침으로 확인이 되면 먼저 발견 된 것도 혈침이 된다.

새로 발견된 것이 먼저 것과 십여 미터 거리라고 하니 서로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이 씨와 그의 동료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여 쇠말뚝이 박힌 곳으로 올라갔다.

새로 발견 된 곳은 먼저 발견 된 쇠말뚝 박힌 곳에서 참성단 방향으로 십 여 미터 더 올라 갔다. 그곳은 높게 솟은 바위 봉오리가 있다. 이 봉오리의 동쪽 암벽 뿌리지점에 박혀있다고 한다. 암벽 위에서는 내려 갈수도 보이지도 않았다.

먼저 발견 된 쇠말뚝이 있는 곳에서 한 다섯 발 정도 바위위로 올라 왼편 나무 가지 밑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서 다시 오른 쪽 암벽 아래로 나무 밑으로 살살 기어서 올라가니 암벽의 밑뿌리에 쇠말뚝이 박혀있었다. 암벽의 밑 뿌리지점에 수평으로 질러 박았다.

굵기는 직경 3cm정도이고 암벽에서 노출 된 부분은 약 50cm정도다.

끝 부분에는 약 15cm 정도 되는 쇠똥가리를 용접으로 부쳤다. 용접으로 붙인 곳이 정교하다. 용접한 흔적이 거의 없다. 매끈하고 정교하다.

붙어있는 쇠똥가리가 한 쪽은 가늘고 한 쪽은 약간 굵다. 정교하게 만든 쇠똥가리다. 마치 T자와 흡사하다. 우리는 박혀있는 위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했을 용도부터 따져봤다. 이리저리 생각 해 봤지만 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쇠말뚝이 바위의 뿌리, 즉 땅에 바짝 붙여서 박혔기 때문에 우선 밑에서 뭔가를 달아 멘 용도로는 아니고 또 바위 꼭대기에서 뭔가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사용했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따져 봐도 맞지 않는다. 바위의 꼭대기는 튀어나와서 현재의 정황으로는 뭘 안치시켜 사용했을 가능성이 전연 없다.

아무튼 상하좌우 모든 위치에서 일반적인 용도로는 상상이 안 된다.

그야말로 쓸데없이 박아 놓은 쇠말뚝이다.

단 한 가지 용도가 있다면 혈침일 뿐이다.

이 씨나 동행한 동료직원이나 용도가 없다는 데는 공감했다.

"이 걸 한 번 뽑아 봅시다. 뽑아서 때려서 소리를 들어 보면 일본사람들이 박은 혈침인지 아닌지를 가늠 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뽑아요? 맨 손으로?'

'맨 손이 아닙니다. 망치와 정은 내가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입니다.'

배낭에서 망치와 정을 꺼내서 쇠말뚝을 두드려보니 약간 움직이는 감이 있었다. T자 모양으로 생겼기에 붙어있는 쇠똥가리를 망치로 치니 쇠말뚝이 약간씩 돌아가는 듯했다. 반복해서 계속 때리니 말뚝이 움직이더니 끝내는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 손으로 잡고 쭉 댕기니 힘없이 쑥 빠졌다.

참 쉽게 뽑았다. 시간은 약 20분 정도 걸렸을까 말까다.

지금까지 뽑은 것 가운데 가장 힘 안들이고 빨리 뽑은 쇠말뚝이다.

'참 쉽게 뽑히네요. 허허허'

옆에서 지켜보던 두 사람이 감탄했다.

뽑아보니 길이는 약 80cm정도다. 무게가 묵직했다. 끈으로 묶어서 망치로 때려보니 쇠 소리가 마치 종소리와 같다. 여느 다른 곳에서 뽑았었던 혈침과 동일한 쇠 소리가 난다. 소리가 맑다. 여운이 길다. 일반적으로 보통 쇠는 이와 같이 소리가 맑지도, 여운이 길지도 않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쇠말뚝이 박혔던 구멍이 특이하다.

너무나 쉽게 뽑혔기 때문에 원상태를 두고 사진을 찍기 위하여 다시 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니 아예 쑥~들어갔다. 쇠말뚝이 꼭지만 두고 다 들어간다.

원래 발견당시는 약 50cm이상이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 구멍에 쇠말뚝을 다시 끼우니 쇠말뚝 길이대로 다 들어간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 쇠말뚝을 박을 때 구멍은 이 쇠말뚝 길이대로 뚫고 박기는 약 30cm정도만 박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왜 그랬을까?

아니면 이 쇠말뚝을 정상적으로 길이대로 박았었는데 뒤에 저절로 쇠말뚝이 빠져나왔다는 말인가? 처음 발견된 것도 이상하다.

이 상섭씨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높이 솟아 나와 있었기 때문에 보기가 흉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화군청에서 뽑으라고 해서 뽑으려고 애를 쓰다가 못 뽑고 해머로 박으니 쑥 들어가더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쇠말뚝을 누가 왜 박았으며 또 왜 이렇게 구멍은 깊게 뚫어 놓고 박기는 얕게 박았는지 강한 의문이 생긴다.

'이런 말뚝은 참성단 바로 아래에서도 봤습니다.'

'어디쯤에서 봤습니까? 지금 찾을 수 있습니까?'

'찾아 봐야죠. 오늘...'

'그건 어떻게 보셨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란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것이 큰일이거든요. 그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 낭떠러지 밑으로 헤매야 하니까 쓰레기 청소를 하다가 본 기억이 납니다. 저 위로 한 두어 개는 본 것 같아요."

이 상섭 씨의 말에 따라서 참성단으로 오르는 층계의 동쪽 벼랑을 훑으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오늘은 발견을 못했다.

▲ 소윤하 선생 인터뷰 5편 '천전리 각석 동벽위, 일제 설치 혈침제거' ⓒ뉴스타운

결 론

참성단은 우리민족의 얼과 넋이 뭉쳐져 있는 곳이다.

단군왕검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 겨레의 정신이 모인 곳이다.

불멸의 성소다.

다른 일반의 산과는 특별히 다른 산이다.

이 산에 일제가 박은 쇠말뚝으로 의심이 되는 것을 그냥 방치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빠른 시일 안에 이 상섭 씨가 말 한 참성단 부근의 쇠말뚝을 모두 찾아 제거하고 원상복구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문제의 참성단 안에 있는 우물도 우리 손으로 청소를 하고 물길을 복원할 수 있으면 복원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2004년 1월 11일 단단학회에서

민족정기선양위원회 위원장 소 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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