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속에 물이 차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지하수가 드는 경우이다. 지하수는 그 온도가 차기 때문에 시신이 썩지 않는다. 그 좋은 예가 세종대왕의 경우이다.
세종대왕이 왕좌에 있을 때 왕비인 소헌왕후가 죽었다. 그러자 효자였던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묘인 헌릉 곁에 묘 자리를 잡았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은 조선조 3대 태종과 그 비 원경왕후 민씨가 묻혀 있는 곳이다.
세종이 이곳에 묘 자리를 잡자 음양가(陰陽家)들은 불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세종이 말하기를 “다섯 곳에 복지(福地)를 얻는 것이 선영 곁에 장사(葬事)하는 것만 하겠는가, 화복(禍福)의 설은 근심할 것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마땅히 같이 장사하되 무덤은 같이하고 실(室)은 다르게 만드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이 유지에 따라 세종이 승하하자 이곳에 능을 만들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지사들은 수(水)염, 즉 무덤에 물이 들었다며 크게 걱정했다. 세종대왕은 왕이 된 지 35년 만인 1450년 2월 17일에 죽었는데 매장한 지 19년 만인 1469년 2월 30일 파묘해 보니 과연 무덤 속에 물이 들어 염한 옷이 하나도 썩지 않은 게 아닌가. 지하에서 솟아올라오는 물은 온도가 낮아 차갑다. 이 찬물이 광중에 계속 차 있으면 시신은 썩지 않게 마련이다.
시신이 이렇게 육탈되지 않으면 후손에게 해롭다는 것이 풍수지리설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의 이론이다. 시신이 편안하지 않은데 후손인들 편안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 상식적인 추론이다.
참고로 세종 이후, 즉 장사 지낸 뒤부터 이장 할 때까지 19년간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재위 2년(1450년 2월~1452년 5월) 만에 승하했고, 그 뒤 단종은 3년, 세조는 약간 길어서 13년, 예종은 1년만에 승하했다. 19년 동안 네 명의 임금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장한 뒤에 임금에 오른 성종은 25년간 재위에 있었다.
꼭 수염 탓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도 종기가 나서 죽은 문종에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3년 만에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뒤 상왕이 되었다가 다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어 자결하니 춘추 17세이다. 세조 또한 병으로 52세에 죽었다.
결코 복 받은 내력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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