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소리 민속촌 농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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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향하는 우리의 소리 민속촌 농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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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투쟁의 철학에서 잉태된 것

농악은 그 소리가 삼십 리 밖까지 들린다고 한다.

농악 소리가 나면 습관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문간에 나가 보게 된다. 갓 시집 온 새색시도 농악 소리가 나면 설레고, 자식에게 매질을 하던 엄한 아버지도 매를 놓고 농악판으로 뛰쳐나간다고 한다.

다이내믹한 농악의 합주는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거리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신명(神明)나게 만든다. 그러므로 농악 소리만 들리면 피로한 심신이 풀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농악판에 끼어들게 된다.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신명나게 춤추는 농악판은 마을의 축제판이기도 하다.

꽹과리나 북, 장구 등을 잡고 농악을 치면 평소에는 농사일에 지쳐 있던 농민들의 얼굴에 어디서 그러한 힘이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갑자기 생기가 돌고, 의젓하고 당당한 농군(農軍)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은 체질적으로 농악을 좋아한다.
한국인은 정초에는 액을 몰아내고 복을 맞이하는 동제(洞祭)나 지신(地神)밟기 등을 하여 한 해의 운수를 빌고 한 해를 시작한다.

농번기가 되면 일터에서 두레를 하면서 농악을 쳐 피로를 푼다.
백중날에는 농사장원(農事壯元)을 뽑고 농악으로 하루를 즐기며, 추석에는 농악이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치는 가운데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한다.

농악의 기원은 노동설(勞動說)과 제의설(祭儀說) 등 두 가지로 집약된다.
노동설은 농악이 농경의례(農耕儀禮) 즉 생산과 풍요의식(豊饒儀式)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고, 제의설은 농악이 제천의식인 소도(蘇塗, 삼한시대 천신을 제사지내던 성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따라서 농악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 투쟁의 철학에서 잉태된 것으로서, 그 형식은 각종 제의(祭儀)와 전투행위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옛 농경조직은 합력결사체(合力結社體)인 두레 노동제와 노동교환 형식인 품앗이제도로 되어 있었다.

두레 생활의 특징은 공동노동(共同勞動), 공동가무(共同歌舞), 공동회식(共同會食)이었으므로, 농악의 형태도 집단적 예능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두레의 농경방식은 노동, 노래, 춤 등을 삼위일체로 행하게 되어있었으므로 노동요나 집단적인 춤이 자연발생적으로 파생되었다.

공동체적 문화전통은 오늘날의 농악에도 잔존해 있다.
공동제의(共同祭儀)로서의 동제굿(洞祭굿)을 비롯하여, 공동노동을 하면서 행하는 지심매기굿, 영(令)풀베기굿, 보매기굿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친목을 위해 하는 줄굿, 칠월칠석굿, 합(合)굿, 기(旗)맞이굿, 기(旗)싸움굿, 추석굿과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농악의 예능적 특징은 오케스트라 연주의 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농악의 악기는 무게가 별로 안 나가고 크기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몸에 지닌 채 자유롭게 뛰면서 연주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연주와 무용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농악의 예능적 특징을 구분해 본다면, 신을 위해 농악을 치는 경우에는 종교(宗敎)적 예능이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행하는 것은 군법예능(軍法藝能)이라 할 수 있으며, 피로나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 행하는 경우는 재생(再生)의 예능이라고 할 수 있다.

농악의 밑바탕에는 주당풀이라든가 동제굿, 돌돌이처럼 무속성(巫俗性)이 짙게 깔려 있다. 농악의 복식에 있어서 고깔과 띠가 있고, 춤에 있어서는 나비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파악된다. 특히 군사놀이와 관계 깊은 각종 진(陣)풀이는 임진왜란과 갑오동학농민혁명 때 농군들에 의해 연희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농악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예능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양식이다. 그리고 농악에는 신명(神明)이 있다. 농악의 악기는 원래에는 신을 부르는 악기였고 잡귀를 몰아내는 악기였기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주술 음악적(呪術 音樂的) 기능을 가졌다.

춤을 통해 소외된 존재의 고독과 고통을 풀어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신명은 나온다. 신명 없는 일은 고통의 노동일 수 밖에 없으므로 농민들은 활기 있는 노동생활을 위하여 농악을 통하여 신명을 얻어내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농악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결집하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재생(再生)과 생존(生存)의 예능이라 할 수 있다.[정읍농악전수회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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