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눈물 - 7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악어의 눈물 - 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진은 차임벨 버튼을 눌렀다.

새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일부러 그렇게 맞춘 것도 아닌데, 일분도 틀리지 않게 저녁 일곱시에 소영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이다. 느낌이 좋았다.

“어서오세요, 선생님!”

문이 활짝 열리며 소영의 환한 얼굴이 나타났다. 원피스 실내복을 입고, 화장을 정성껏 마친 상태였다. 태진은 안으로 들어서며 등 뒤에 감추었던 흑장미 다발과 선물 꾸러미를 안겼다.

“어머, 예쁘기도 해라!”
“맘에 들어?”
“그럼요. 누구 선물인데.”
“다행이군.”
“고마워요!”

소영은 꽃다발과 선물을 내려놓고 태진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술을 탐했다. 격렬한 키스가 오래도록 계속됐다.
소영이 흑장미를 다발째 꽃병에 꽂으며 물었다.

“배고프죠?”
“응, 조금.”
“이쪽에 앉으세요. 찌게 가져올게요.”

소영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발걸음도 경쾌하게 주방으로 갔다.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서일까. 거실은 불이 꺼진 상태에서 황동 촛대에 다섯 자루 촛불이 밝혀져 있고, 가스 레인지 위에서는 집에 들어올 때부터 나던 맛 있는 냄새가 나 식욕을 돋웠다. 식탁 위의 음식들은 꽃무늬가 수놓인 깔끔한 식탁보에 덮여있었다. 그리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이어서 그럴까, 자신의 집에서는 맡을 수 없는 여자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식탁보 좀 걷어주세요.”

소영은 주방 장갑을 끼고 찌개 냄비를 들고왔다.

태진은 식탁보를 걷어냈다. 세상에! 한눈에 보아도 소영이 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 짐작이 갔다. 진수성찬이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들이 찌개 냄비와 밥그릇 놓을 자리만 제외하고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꼭하게 들어차 있었다. 찌개 냄비를 가운데 놓고 뚜껑을 열자, 하얀 김과 함께 커다란 꽃게 두 마리와 미더덕과 조개들이 보였다.

태진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정성을 들인 식탁을 마주하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자신만을 위해서 누군가가 손수 이렇게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소영이 서투른 솜씨로나마 자신만을 생각하며 이 음식들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꾸만 솟구치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솜씨가 없어서 맛이 있을지는 몰라도 많이 드셔야 해요.”

소영이 식탁 위의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태진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태진은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을 식탁에 떨구고 말았다.

“선생님, 우세요?”

소영이 그런 태진을 보고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아, 아냐. 눈에 뭐가 들어갔나봐.”

태진은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를 찍었다.

찌개 국물을 뜨던 태진은, 소영의 왼손 둘째 손가락 끝 부분에 감겨 있는 일회용 반창고에 시선이 멈췄다. 반창고 거즈엔 피가 스며 있었다. 태진은 숟가락을 놓고, 자꾸만 감추려는 소영의 손을 잡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왜 그래? 많이 다쳤어? 약은 발랐고?”
“별거 아니에요. 칼에 조금 베었어요.”
“칼에?”
“꽃게를 다듬다가 그만…… 칼질이 서툴러서요. 곧 낫겠죠.”
“…!”

태진은 할 말을 잃었다.

손가락을 벤 순간 얼마나 아팠을까. 칼에 벤 손을 움켜쥐고 쩔쩔매는 소영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는 손까지 베어가며 자신만을 위해 음식을 장만한 것이다. 목이 메는 생일 파티였다.

“어서 드세요.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어요.”
“응, 그래. 소영이도 같이 먹자고.”
“아 참, 내 정신 좀 봐. 빠진 게 있네.”

소영은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으며 일어섰다.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샴페인병과 두 개의 잔이었다.

“선생님이 터뜨리세요.”

소영이 샴페인 병을 내밀었다.
태진은 샴페인 병을 몇 번 흔들고 마개를 밀었다. ‘뻥’ 소리와 함께 거품이 넘쳤다.

“생일 축하해.”

소영의 잔에 샴페인을 따라주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태진의 잔은 소영이 채웠다.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가벼운 키스를 나누었다. 소영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화려한 생일 파티를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는 그녀가 불러주기만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향기나는 꽃에는 벌과 나비가 꾀는 법이니까.

태진은 문득, 소영이 탤런트 시험 실기 테스트를 할 때, 자신 앞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손바닥만한 팬티만 남긴 채 옷을 훌훌 벗고 자신의 몸매와 춤 솜씨를 유감없이 과시하며, 열정적으로 춤을 추던 그녀의 모습이. 이제 그녀는 몸매와 얼굴은 그때보다 한결 원숙하게 무르익어 바라보는 사람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안개비를 맞으며 한껏 요염함을 뽐내는 한 떨기 유월의 흑장미 같았다.

태진은 소영의 정성을 생각해서 식탁에 놓인 반찬에 골고루 젓가락을 댔다.

“어쩜 이렇게 음식들이 맛있지?”
“선생님이 절 예쁘게 봐주셔서 그런가보죠. 제가 언제 음
식을 만들어봤나요.”
“아냐. 정말로 내 입에 딱 맞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솔직히 소영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긴 했어도 음식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연기 생활만으로도 정신 없이 바쁜 그녀가 언제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웠을 것이며, 설령 배웠다 하더라도 무슨 여가가 있어 자주 했을 것인가. 아니, 모두 시킨 음식일 거라고 생각해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영의 음식 솜씨는 기대 이상이었다.

“은근히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소영이는 커다란 접시에 꽃게를 건져내 가위로 몸통과 다리를 잘라 일일이 살을 빼주었다. 태진은 그 꽃게살을 먹으며 자꾸만 목이 메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뭐란 말인가. 속된 말로 소영이가 자신을 모른 척해도 별 수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없이 배반하고 또 만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다. 인기라는 물거품 같은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뼈를 깎는 인내를 감수해야만 하는 곳이 이 화류계 바닥이었다. 인기를 얻으면 하루 아침에 부와 명예를 얻지만, 제아무리 노력하고 고생을 해도 인기를 얻지 못하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또한 이 바닥의 생존 법칙이었다. 태진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영이도 먹어.”

태진은 혼자 먹는 것이 미안했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전 배가 불러요.”
“그래도 그렇지. 자, 이것만이라도 먹어.”

태진은 소영이가 발라놓은 꽃게살 접시를 앞으로 밀었다.

“알았어요. 그럼 선생님이 제 입에 넣어주세요.”

소영이 새끼 참새처럼 입을 벌렸다. 태진은 접시에 있는 꽃게살을 손가락으로 집어 소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참으로 행복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저녁 식탁이었다. 소영이 이것 저것 권하는 바람에, 태진은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까지 포식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영이가 타온 커피를 놓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오디오에서는 잔잔한 영화 주제곡들이 흘렀다. 꽃병에 다발째 꽂은 흑장미에서 풍겨오는 향기가 달콤했다. 소영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실내가 옷을 벗고 있어도 될 만큼 따뜻했고, 조용하고 아늑한 밤이었다. 태진은 소영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우리 이렇게 둘이만 있어 본 게 오랜만이에요.”
“그래.”

태진은 소영의 긴 머리카락에 입술을 댔다.

“…… 제가 보고 싶었어요?”

태진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시도 소영이를 잊은 적이 없었다. 눈을 뜬 시간 이후 어디에 있건 늘 소영이를 생각했었다. 이번에 김상수 PD를 납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소영이를 위해서였다. 소영이는 이제 상상 속의 연인이 아니라 현실 속의 연인이었다. 영원히 깨끗하게 간직하고 보살펴주어야 할 연인이었다. 소영이를 내 사랑이라고 생각한 이후 지금까지 변함 없는 자신의 순결한 여자였다. 그녀는 그 누구의 눈길조차 허락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사랑이어야 했다.

“안아주세요.”

소영이 품에 안겼다.
태진은 그녀를 꼭 안았다. 그녀에게서 늘 맡아지던 장미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번져왔다.

“더 꼭요.”

소영은 태진의 무릎 위에 올라앉으며 목을 두 팔로 감쌌다.

태진은 소영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뽀얀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뜨거웠다. 소영의 몸이 어느 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태진의 입술은 목덜미에서 귓불로 옮아갔다.

소영은 진저리를 치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랑해요…….”

촛불에 비친 소영의 눈빛은 애절했다.

“오늘 밤 안 보내줄 거예요.”

소영의 눈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선생님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 거라고요.”

소영의 입술이 기습적으로 태진의 입술을 덮쳤다. 그렇다. 일방적인 키스여서 덮쳤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키스였다. 두 사람은 무너지고 있었다. 소영의 혀끝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달콤한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 덩어리로 굳어버린 조각품처럼 그렇게 최대한 밀착되어 있었다.

“아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소영의 목소리는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니,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뜨겁게 달아오른 육체가 먼저 둥둥 떴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몸짓은 참으로 참아내기 힘든 유혹이었다.
태진은 그녀의 입술을 피하며 말했다.

“난, 난 말야. 아직…….”

소영의 손가락이 그의 입을 막았다.

“절 거부하는 이유라면 말하지 마세요. 이제 선생님은 제 포로예요. 제가 쳐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라고요. 아무리 도망치려고 발버둥쳐도, 그러면 그럴수록 저에게 더 단단히 포박당할 뿐이라고요.”

그렇다.

태진은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이런 순간을 충분히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제발 이런 순간이 오기를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는지도 몰랐다. 소영의 말처럼, 자신은 이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질기디 질긴 거미줄에 걸려든 한 마리 나비에 불과했다. 거미줄에 걸려든 나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미에게 잡혀 먹히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분을 거미에게 다 빨려 먹히고 빈 껍질로 남는 것. 그 이상의 선택이란 있을 수 없었다. 태진은 마지막 탈출의 몸짓마저 포기했다.

“우리 가요.”

소영은 침실을 향해 태진의 손을 잡아 끌었다.

침실도 이미 그녀의 정성스런 손길이 지나갔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적당히 어두운 핑크빛 조명. 정갈하고 단정하게 깔려 있는 침대의 얇은 시트. 분위기를 타게 해주는 흐느끼는 듯한 색소폰 선율. 방 안에 배어 있는 재스민 향수 내음. 알몸으로 있기에 적당한 실내 온도…….

소영은 태진을 방에 세우고 천천히 한 겹씩 껍질을 벗겨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그는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나올 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껍질을 벗겨가는 소영의 손길은 섬세하고 정성스럽고 부드러웠다. 오래 걸리지 않아 그는 벌거숭이가 되고 말았다.

“이제 선생님 차례예요.”

소영은 태진 앞에 서서 눈을 감았다.

잠시 망설이던 태진은, 그녀가 한 것처럼 천천히 소영의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부드러운 껍질들을 한 겹씩 벗겨갔다. 핑크빛 조명 아래 그녀의 알몸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만할 정도로 솟아오른 젖가슴, 금방 물에서 건져올린 붕어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린 완벽한 곡선, 여자의 가장 신비스러움이 숨겨져 있는 무성한 숲으로 덮인 둔덕, 그 둔덕 아래 숨어 있는 깊은 샘. 핑크빛 조명을 받은 그녀의 나신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미끈거리는, 붕어의 몸에서 느껴지는 점액질이 그대로 묻어날 것만 같았다.

태진은 꿈을 꾸듯 그녀의 나신을 보고 있었다.

“난 이 순간을 얼마나 꿈꾸어왔는지 몰라요.”
“…….”

소영의 눈빛은 몽상적이었다.

태진은 그녀의 눈빛에 취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영은 석상처럼 서 있는 태진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젖가슴 위에 얹어주었다. 그녀의 가슴에 얹힌 태진의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태진은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무섭게 뛰는 가슴과 빨라지는 호흡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자, 안아보세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근사한 여자가 선생님 거라고요. 선생님의 뜨거운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라고요.”

그녀는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역시 소영이다운 행동과 말이었다. 그녀의 거침없고 대담한 성격은 이러한 순간에도 빛을 발했다.
태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태진은 떨고 있었다. 소영의 눈을 똑바로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는 그토록 사랑해 온 여자를 앞에 두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불안한 것은 자신의 남자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볼품 없이 찌그러지던 남자가 걱정이었다. 적어도 소영이에게만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진희에게 꾸준히 기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실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아 자신이 없었다.
“됐어요, 선생님. 이제 꼭 안아주세요. 어서요!”

소영은 망설이고 있는 태진을 재촉했다.

태진은 눈을 감고, 소영의 어깨에 얹었던 손에 힘을 주어 앞으로 당겼다. 소영은 긴 장마 끝에 흙담이 한 순간 맥없이 무너지듯 와락 품에 안겨왔다. 그녀의 젖가슴의 감촉이 자신의 가슴을 통해 뭉클 전해져왔다. 눈앞이 아득했다. 그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절망스럽게도 그때까지 그의 남자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다음 순서는 저를 안고 침대로 가는 거예요.”

그녀는 마치 여자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조교처럼 자상하게 지시했다. 태진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소영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뉘고, 옆에 누웠다. 소영이 태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댔다. 따라서 시선이 마주쳤고, 그녀의 달콤하고도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다음 순서는 선생님이 마음대로 정하세요.”

그녀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태진은 그녀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다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말에 처음보다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지난 겨울.

소영은 말했었다. 자신은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처녀라고. 태진은 그때 그 말을 믿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믿었다. 남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자신만은 믿었다. 소영이는 강한 여자였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한 여자라는 걸 태진은 알고 있었다. 소영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걸 직감했다.

소영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듯이 누워있는 그녀의 나신은 소름 끼치도록 고혹적이었다. 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조심스럽게, 아주 귀한 보물을 다루듯 뺨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입술이 열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입술은 낯설지 않았다. 그녀의 혀가 입으로 들어와 태진의 혀와 부드럽게 엉켰다. 그녀의 향기로운 타액이 입 안 가득 흘러넘쳤다. 태진은 그 향기에 취해 타액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타액은 끊임없이 솟는 샘물처럼 갈증난 목을 축여주었다.

태진의 입술은 미끄러지듯, 그녀의 입술에서 벗어나 목을 향했다. 거기서 머물기를 얼마나 했을까. 불 붙은 입술은 점점 내려가 젖가슴의 유두 끝에 머물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톡 불거진 유두가 입 속으로 쏙 들어왔다. 두 손으로 팽팽하게 바람을 넣은 고무풍선처럼 탄력있는 젖가슴을 움켜쥐고 앞니로 유두를 지긋이 아프지 않을 만큼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아…!”

소영은 몸에 소름이 돋치며, 신음을 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태진의 머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뜨거웠다. 소영의 몸은 모닥불 속에서 끄집어낸 고구마처럼 뜨거웠다. 덩달아 태진의 몸도 빠른 속도로 달궈지기 시작했다. 깊은 겨울잠을 자는 짐승처럼 잔뜩 움추리고 있던 그의 남자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더니, 금세 우뚝 솟은 장승처럼 우람하게 부풀어 올랐다.

소영이 자세를 바꿨다.

태진을 침대에 뉘고 몸 위로 올라갔다. 그녀의 입술이 태진의 가슴에서 밑으로 내려가며 빠른 속도로 불을 지폈다. 그녀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마치 불길에라도 닿은 듯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밑으로 내려가던 그녀의 입술이 남자에까지 다달았다.

소영의 입술은 집요했다.

태진의 남자는 그녀의 포로가 되어 잔뜩 화만 낸 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몹시 갈증난, 물이 몇 방울씩 나오는 수도꼭지에 매달린 아이처럼, 남자를 탐하기 시작했다. 태진은 머릿속이 텅 비고, 그 속으로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사막의 열풍이 지나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엔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무쇠바퀴가 굴러가는 듯한 이명이 계속되기도 했다.

잠시 후, 태진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쓰러뜨렸다. 두 사람은 거목의 뿌리가 뒤엉키듯 손과 다리로 상대를 끌어안고, 핥고 깨물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서로를 탐했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필요치 않았다. 이 순간만은 몸짓 언어만이 통용되는 짐승의 세계였다.
드디어 한몸이 됐다.

소영의 충분히 젖어있는 여자 속으로 태진의 딱딱한 남자가 미끄러져 들어가던 어느 순간, 신음을 토해내며, 다리를 움츠리며, 태진의 어깨를 밀쳐내는 듯하던 소영이 이를 악물고 다시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태진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태진의 남자는 다시 소영의 끝도 모를 여자 속으로,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었다. 그의 남자가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

‘아아, 나는 해냈다!’

태진은 소영이를 통해 그토록 오랫동안 남자 구실을 못 하던 치욕의 굴레에서 단숨에 벗어났다. 불기둥 같은 자신의 남자로. 태진이 온몸으로 자맥질을 할 때마다, 소영의 신음이 온 방을 헤집으며 태진의 고막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소영은 어느새 태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격렬하게 몸부림치다가 어깨에 이빨자국이 나도록 물어 뜯기도 했다. 태진 역시 그녀처럼 한 마리 사나운 짐승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태진은 머리 속이 텅 비는 듯한, 끝도 모를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활화산이 폭발하듯, 자신의 남자를 통해 뜨거운 용암 덩어리가 소영이의 여자 깊숙한 곳을 향해 솟구쳐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상처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신음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때 맞추어 소영의 허리도 활처럼 휘며 그의 허리를 부러지도록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폭풍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태진은 침대에 엎드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른한, 그러나 뒤끝이 깨끗한 잠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태진은 소영의 젖가슴에 손을 얹고 엎드린 그대로 깜빡 잠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