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축제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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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축제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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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핥고 물어뜯어라. 자존심이 상하면 먹지 않아도 된다. 먹이를 먹고 안 먹고는 네 자유니까.”

녀석은 팔이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무릎이 꿇려있었다. 고통을 주더라도 먹이는 주어야 했다. 아니, 녀석을 더 악랄하게 괴롭히려면 먹이만은 풍족하게 주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풍족하게 채워졌을 때, 녀석은 생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고 더 악착같이 살고 싶은 욕망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먹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부탁?”

진희가 태진보다 먼저 녀석의 말을 받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참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처리할 수는 없잖느냐.”
“그냥 싸라. 개가 실례할 때 장소를 가리더냐? 네 녀석은 아직도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빨리 꿈에서 깨는 게 좋을 것이다.”

진희가 이죽거렸다.

“…….”

녀석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엉덩이를 들고 요란스럽게 똥과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냄새가 지독했다. 태진은 코를 쥐고, 녀석 앞에 놓아주었던 음식을 치웠다. 녀석은 일을 다 보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뒤로 돌아서서 허리를 굽힌다. 실시!”

진희는 수도꼭지를 틀어 호스의 물을 녀석의 엉덩이를 향해 쏘았다. 그리고 바닥에 쌓인 오물을 배수구로 쓸어넣었다. 녀석은 찬물을 뒤집어써서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정말 개 떨듯이 떨었다.

“자, 이제 무릎을 꿇고 먹이를 먹어라. 정확히 10분의 여유를 주겠다.”

이미 한 사내로서의 자존심이 깡그리 뭉개진 녀석은 앞에 놓인 볶음밥 접시에 코를 밖았다. 영락없는 개의 형상이었다. 접시에 놓인 밥을 혀와 입술로 쩝쩝대며 핥는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손이 등 뒤로 수갑 채워져 있어서 대접의 물도 혀로 핥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싸고 핥아대는 녀석을 보면서 비애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인 양 말하는 자존심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개처럼 배설하고 먹어야만 하는 녀석의 절박감이, 추한 인간의 모습이 태진을 슬프게 했다.

녀석은 접시 주위에 너저분하게 밥을 흘렸다. 혀로 핥다가 흘린 물도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었다. 몹시도 배가 고팠던지, 접시 밑바닥까지 청소하듯 깨끗이 핥고 덜썩 주저앉았다. 잠시지만 포만감에 젖어 있었다.

태진은 온몸이 채찍에 맞아 찢기고 벌겋게 부어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인 측은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 약해져서는 안 됐다. 녀석은 인간 쓰레기였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이 땅의 수많은 나약한 여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놈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소영이조차도 더럽히려고 한 놈이었다. 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을 떨어 내기라도 하듯이.

“시작하죠.”

진희가 접시와 물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태진은 녀석을 다시 쇠고랑에 매달았다. 녀석은 반항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순순히 응했다. 녀석을 녹화하는 모니터를 살펴보았다.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비디오 앵글이 녀석만 찍히게 조정되어 있었다.

오늘 아침 가판대에서 일간지를 다 사서 훑어보았지만, 녀석에 관한 기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녀석이 행방불명된 것이 확인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늦어도 내일 아침쯤이면 신문의 사회면에 녀석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 시작할 것이다.

태진은 스웨터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 녀석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네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지 깨달을 때까지 그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견뎌낼 수만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줄 것이 있는데, 네 녀석은 지금 비디오로 녹화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태진은 일단 찬물 한 바가지를 녀석의 얼굴에 끼얹었다. 녀석은 고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몸이 완전히 젖도록 몇 바가지 더 끼얹었다.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윽!”

녀석이 몸을 뒤틀며 신음을 삼켰다.

물에 젖은 그의 가슴엔 금세, 뱀이 지나간 모래밭처럼 자국이 생겼다. 채찍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녀석은 입술을 앙다물며 신음을 삼키고 있었다. 세 번, 네 번…… 밤새 상처난 곳에서 흐른 피가 굳어 까맣게 딱지가 앉았던 자리가 다시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이제 녀석의 상체는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이 누더기가 되어갔다. 녀석을 난타하느라 땀이 났다. 땀을 닦으려고 채찍을 진희에게 넘겼다. 녀석도 고통을 참아내느라 얼굴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으아아아…!”

진희가 허공을 가르며 내리친 채찍이 몸에 닿자마자, 녀석은 지금껏 참아내던 비명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진희의 채찍질은 태진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채찍을 맞은 살갗이 터져 검붉은 피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하지만 진희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모질게 채찍을 휘둘렀다. 녀석의 단말마적인 비명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녀석은 쇠고랑에 매달려 소금을 맞은 지렁이처럼 몸부림쳤다. 그러나 진희의 채찍질은 단호했다. 채찍이 감기는 곳마다 피가 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졌다. 마치 자신이 채찍에라도 맞는 듯이.

“네가 왜 맞는지 네 스스로 말해!”

진희가 잠시 채찍질을 멈추었다.

“…….”

지독한 놈.

녀석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오줌을 질질 지리면서도.

“좋아! 네놈의 사내다움이, 배짱이 맘에 들었어!”

다시 한바탕 진희의 손에 들린 채찍이 춤을 추었다. 그대로 녀석이 죽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채찍질이었다. 진희의 이마에서도 땀이 번들거렸다. 태진은 진희에게 손짓을 했다. 채찍질이 잠시 멈추었다. 태진은 진희에게 수건을 건넸다. 진희는 이마에 솟은 땀방울을 닦았다.

“난 성미가 급해! 꾸물거리는 것은 질색이지!”

진희가 다시 채찍을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호, 혹시…… 당신들은…… 이형석이 보낸…….”

녀석은 차마 하기 힘든 말을 내뱉듯 뜸을 들였다.

“이 새끼가 사람 성질을 돋우는구만.”

“헉!”

진희의 앞발 올려차기에 턱을 강타당한 녀석의 얼굴이 뒤로 휘청 젖혀졌다가 앞으로 툭 떨어졌다. 금세 입이 피범벅이 되었다. 녀석이 뭔가를 뱉어냈다. 이빨이었다. 피 묻은 앞니였다. 다시 진희의 발이 바람 소리를 내며 돌려차기를 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아랫배에 정확히 꽂혔다. 녀석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한동안 꺽꺽대더니 방금 전에 먹은 음식물을 꾸역꾸역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해!”

진희의 목소리는 이제 막 제재소의 톱날을 통과해 나온 각목의 모서리처럼 각이 져 있었다. 진희의 어디에 저렇게 독사의 독니 같은 일면이 숨어있었을까. 태진은 오늘 그녀의 또 다른 일면을 보는 듯했다.

“난 정말이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태진이 다그쳤다.

지금 녀석이 말하고 있는 이형석이란 탤런트는 태진도 알았다. 톱 탤런트는 아니지만, 방송국 물을 꽤 먹은 조연급이었다. 말이 별로 없고, 언제보아도 겸손하고 성실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다 방송국에서 마주치면 인사 정도만 나눈, 한 번도 마주 앉아 차를 나눈 적은 없는 그런 사이였다.
“어쩔수 없었어. 나도 그를 주연으로 쓰고 싶었지만, 그만한 연기력이 있다고 판단은 했지만, 워낙 방송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대작이었고, 경쟁도 치열했고, 더구나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압력도 있고 해서…….”

녀석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하는데, 지금 네 녀석의 모든 행동과 말이 하나도 빠짐없이 녹화 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거야. 만의 하나 거짓말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는 영리한 네 놈이 더 잘 알겠지만.”

태진은 겁을 줬다.

사실 지금 녀석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듣고자 하는 것과는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지만 듣기로 했다. 언젠가는 알고자 하는 얘기도 고백하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육체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들면서 모두 토해내고야 말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하여튼 흥미 있는 일이었다. 녀석의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올 온갖 추한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녀석의 다음 말이 몹시 궁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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