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 박선협^^^ | ||
적도와 남극의 사이에서 울울창창한 파라다이스 대륙(大陸), 남회귀선이 길다랗게 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는 남태평양의 자이언트랜드 대양주이자 호주(濠洲) 그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가 떠 있다.
국토의 크기는 7백68만 7천8백여 평방킬로인데, 그것이 우리나라 한반도의 36배에 달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구는 고작 1천2백 여만 명에 불과해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의 그 엄청난 언밸런스현상에 그만 입을 벌려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대륙의 3분의 2가량이 불모의 준 사막지대이며 강우량이 몹시 부족하다는 점과 또한 일부 열대지방을 제외하고는 동남방으로 내려갈 수록 연중 대부분이 눈에 뒤덮여 있을 정도로 기후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 고장 나름대로의 특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비록 지리적 위치는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백인천하이긴 하되, 스스로 아시아지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시아 사람들과 더불어 빈번히 접촉하게된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인은 어떤 점에선 마치 '거대한 소국의 젊은 백성'같은 느낌이다. 국토만 컸지 인구가 적고 역사가 형편없이 얕기 때문이다.
희생양 아보리지니
하기사, 탐험가 쿠크대령이나 필립총독이 처음으로 이 남태평양 위의 외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유럽인들이 정착한 것은 지금부터 2백년 전에 불과한 것이다. 그때까지의 원주민은 아보리지니(Aborigines)족이다.
약 1만2천년 전에 동남아시아 지방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온 방랑민족으로 알려지 아보리지니는 코카서스(Caucasus), 몽골리언(Mongolian), 니그로(Negro)와 더불어 세계4대 주요 종족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또한 인종학적으로도 희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알몸에 '부메랑'이란 활을 들고 주로 수렵만 일삼는 석기시대 이전의 몽매한 생활 관습 속에 얽매어 있는 이들 아보리지니는 원래 1백여 만명이 이곳에 칩거하고 있었으나 영국 본토로부터 밀어닥친 죄수와 유배민족을 비롯한 유럽 백인들의 학대와 생존경쟁에 쫓겨 대다수가 희생되고 지금 남아있는 숫자는 고작 10여만명을 헤아릴 정도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에서는 이 소수민족인 아보리지니들의 처우문제와 그들이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게끔 계도하는데 꾀나 신경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 가 싶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특이한 명물로서는 무엇보다도 양(羊)을 으뜸으로 손꼽는다. 이밖에 캥거루, 코알라, 철새 등 야생동물들이 허다하다. 가는 곳마다 흔하게 눈에 띄고 또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가까이 벗삼을 수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유유자적한 멋을 맛보게 한다.
특히 양의 경우는 1억8천여만 마리에 달하므로1인당 평균15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셈이되며 이로 말미암은 수입은 자그마치 연간 15억불이나 된다.
유배민의 판세
대부분의 영어 사용국이 그렇듯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 영연방도 비록 위치상으로는 인도만과 남태평양간의 아시아 동남방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생활관습, 문화, 예술 등 여러분야에 걸쳐 그 어떤 특이성을 발견할 수는 없고 다분히 서구적이며 무엇보다 영국을 그대로 멀리 남 반구위에다 옮겨 놓은 것 겉은 인상을 준다.
하기사 미국의 독립전쟁 때문에 그 당시까지 미국에 유형수를 보내고 있던 영국이 많은 죄수들을 처리할 곳이 없어,새로이 남태평양의 무인도를 택한 이래 캡틴 필립선단을 통해 1840년까지 50년 동안 총 4만명의 전과자들을 이곳으로 유형 시켰던 만큼, 영국의 유배죄수와 더불어서 그 후예들이 창건한 것이 지금의 오스트레일리아다.
그로부터 또다시 오랜 식민통치와 독립후의 연방관계를 통해서도 영국의 전통적인 지배세력과 온갖 영향력이 깊숙히 뿌리를 박고 있으므로 매사에 있어 영국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대자연의 웅대한 매력이라든가 풍부한 광산자원, 야생동, 식물같은 것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지니 고유의 자랑이랄 만하다. 유배죄수를 제쳐놓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1850년대 이른바 골드 러시(Gold Rush)때문이라 한다.
바로 그 무렵 거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여기저기서 진귀한 금 덩어리가 무수히 발견되는 바람에 세계각처의 욕심장이들이 군침을 삼키면서 무려 50만 명이나 이 고장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중에도 중국인이 가장 많았다는 것은 오늘날까지고 여러모로 입중되고 있다.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에서 이른바 차이나 타운을 이루고 음식저,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는 지금의 화교들 대부분은 그 당시 금노다지르 탐내던 불청객인 중국인의 후손들로 알려지고 있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명물 캥거루 ⓒ 박선협^^^ | ||
오스트레일리아에 말썽 많은 '백호주의'가 탄생하게 된 동기는 다름 아닌 19세기 중엽이다. 이 고립무원한 대륙의 깊은 산중에서 금덩어리 쟁탈전이 빚은 백인과 중국인간의 불화관계가 마침내는 중국인 대학살사건으로까지 번짐에 따라 골치를 앓던 끝에 금세기 초 오스트레일리아가 지금의 연방정부로서 발족함과 동시에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을 몰아낼 속셈으로 그처럼 까다로운 이민법을 실시하게 된 데 연유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악명높은 백호주의란 것도 그 역사적인 유래와 배경을 염두에 둘 땐 다소 납득이 갈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편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관문이자 북쪽의 유명한 소도시 다아윈에는 인구 2만명 가운데 화교가 3천 여명이나 있는데 대부분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을 뿐더러 현 시장직도 중국인이 선거에 의해 뽑혀 있을 정도다.
그만큼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때 욕심 많던 중국인들의 행패 때문에 생겨난 이 '백호주의'란 것이 전체 아시아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천하게 여기거나 차별대우하기 위해서 더 이상 존속돼서는 안됀다는 소리가 오스트레일리아 안의 학자, 언론인 및 일부 정부관리 등 식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저임금에 만족(?)하는 아시아 사람들이 대량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몰려들어 오게끔 이민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개방하는 말엔 현 백인들의 사회적 지위나 권익옹호에 불리한 영향이 필연코 미칠 것이라 하여 극구 반대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그들은 미국의 말썽 많은 인종분규 같은 것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옮겨 올까봐 꽤나 속 앓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연극복 그 놀라운 도전
위로는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로 부터 동해안을 끼고 멀리 빅토리아주(州)에 이르기까지 무려 2천여 평방마일을 덮고 있는 대분수산맥(Great Dividing Range)은 이른바 스노우이 마운틴(Snowy Moyntain)으로 불리고 있다. 이 거대한 산맥을 뚫어 건조한 내륙지방에 물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해 보자는 이중목적으로 자그마치 8억A(오스트레일리안)달러를 들여 장장 30년 간에 걸친 장기적 대 공사를 벌인 것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오스트레일리아의 스노우이 마운틴 스킴(Snowy mountain scheme)이다.
캔벌 남쪽 약 32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쿠우마(Cooma)란 촌락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이튼날 다시 자동차로 몇 시간동안 산길을 달려 이 거창스런 공사의 현장을 보고 새삼 대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야심이 얼마나 지극하고 끔찍한가를 실제로 느꼈다.
즉 이 대분수사막을 중심으로 한 머리계곡, 머럼비지 강, 유컴빈 강 등 대하천의 물이 동쪽 바다로 흘러 빠지기 때문에 가뜩이나 강우량이 부족해서 연중 메마르기만 한 불모의 내륙지방은 영영 하나의 준 사막지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수 없는 안타가운 실정이기에 이 산맥을 송두리째 파헤쳐 굴을 뚫고 댐을 만들어 그 귀중한 물을 안으로 끌어넣어 건조한 따을 옥토로 만들고 막대한 땅의 전력도 생산해 내기 위한, 실로 어마어마한 난공사의 현장이었다.
무려 80년 동안 세밀한 검토를 거친 끝에 지난 1946년부터 착공했다는 이 세계건설사상에 보기 드문 대공사는 드디어 1975년에 완공되어, 1천평방 마일의 건조한 농토를 해마다 2백만 에이커피이트의 물로 완전 수리화한 것. 결과 9개의 발전소에서 총 4백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연간 6천만 달러의 농산물 수입을 더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전력까지 합치면 그 결과로서 얻는 이익은 실로 엄청난 것이 된다.
날으는 인술
인상깊고 특이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벽지보건진료와 무선통신교육제도다. 날으는 인술(Flying Doctor Service)은 현대문명과 동떨어진 내륙 벽촌지방의 위급환자들을 위해 항공기 편으로 신속한 치료혜택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1929년 존 프린이란 일개 기독교 선교사의 발안으로 빅토리아주 서부지방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60여년을 경과한 오늘날 총 27대의 항공기와 14개의 연락기지, 1천2백87개의 무전중계소 등을 보유하면서 전 대륙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백만 평방마일의 준 사막지대를 커버하게 됐다.
한해동안 비행횟수 2천6백 회, 치료환자는 2만7천 여명에 달하는 놀라운 인술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와 같은 인술비행과 병행, 무선통신망을 이용한 방송교육기관이 항공학교(School of the Air)란 이름아래 몇몇 군데에 산대해 있는데, 여기서는 등교거리가 멀고 교통이 매우 불편한 외딴 벽촌의 어린이들(5세~14세)을 위해 정해진 시간과 사이클에 따라 송,수신 겸용 무전기를 통해 초등학교의 정규과정을 그대로 수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광산촌인 브로켄힐 (Broken Hill)에 있는 항공학교에 들렀을 때 철저히 방음 장치가 된 텅 빈 교실에서 마이크 하나만을 상대로 교감 모리스 여사는 아침인사에다 교가 선창에 이어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필자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 귓가엔 순식간에 참새 떼들의 합창인양 귀여운 목소리가 일제히 울리는데, 한국 어린이들은 무슨 음식, 어떤 옷, 국기의 생김새는? 오스트레일리아엔 무엇 때문에 ...등등 어린이다운 질문들이 쏟아져 낱낱이 대답하느라 즐거운 한 순간을 겪었다.
돌아서 나오면서 이러한 학교교육이야말로 편리하고 실용적이겠다 싶은 생각에 몇번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오스트레일리아 지도 ⓒ 박선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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