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대 조상우 교수, 한국 골프코스 도입에 관한 사회사적 연구 발표(4)
호서대 조상우 교수, 한국 골프코스 도입에 관한 사회사적 연구 발표(4)
  • 양승용 기자
  • 승인 2013.05.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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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원과 효창원 골프코스

▲ 효창원 골프코스/자료출처 : 대한골프협회(2001)

본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원산해관 골프코스 이후 한국 골프코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21년 효창원에 건설된 효창원 골프코스에 관한 기록이다. 이 시기는 대한제국이 을사조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잃어 일본 제국에 편입되는 일제 강점기 시대였다.

이 당시 일본인들은 한반도로 몰려들었고, 일본은 철도국을 그 선봉에 세워 일본의 식민지 야욕을 펼치고자 동아시아 곳곳에 철도국을 설립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들어냈다. 그 중심에 만철(滿鐵,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 있었고(박천홍, 2003), 대륙 침략의 야욕으로 곳곳에 설립된 철도역과 그 부속기관의 개발과정에서 효창원 골프코스가 탄생하게 된다.

효창원에 골프코스를 건설하려고 최초로 구상한 사람은 당시 조선철도국 안도(安藤) 이사였다. 안도(安藤) 이사는 대련에 있는 본사 출장 중 대련 근교 골프장에서 플레이하면서 자신의 근무지인 경성에 골프장을 만들기로 계획한다(김태운, 1984, 1월호).

대련 출장에서 돌아와 당시 철도국장 구보(久保)의 승낙을 얻어 조선호텔 지배인 이하라(猪原貞雄, 1875-미상)의 협력으로 철도국에서 직영하던 조선호텔 부속골프장을 건설한다(대한골프협회, 2001). 효창원 골프코스는 1918년 5월에 확정인가를 받아 1919년 5월에 착공하고 2년 만인 1921년 6월 1일에 완공하여 개장했다. 조선호텔이 경성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취지는 입안서류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의 취지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첫째 호텔투숙객을 위한 서비스이고, 둘째 호텔 숙박객의 체류연장으로 조선호텔의 수입증가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호텔에 투숙하는 외국인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운영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개발 초기 기대했던 수입증가 효과는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텔 투숙객 전용제를 총독부, 체신국, 도청, 군기관, 일본인 유지들에게 입회를 권유한다.

이후 1922년 정무총감으로 취임한 아리요시(有吉忠一)가 효창원 골프장을 애용하면서 일요일 내장객이 70명 정도로 늘어났고, 아리요시(有吉忠一) 총감과 고급관리, 은행간부들이 하루 종일 골프를 즐겼다(최영정, 2000).

효창원 골프코스는 일제강점기에 미개한 조선 땅에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제국주의의 야욕을 실현한 한 예로 사료된다. 이것은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밀어내고 총독부가 통치하는 식민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며, 철도건설은 대륙진출에 대한 야망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륙 침략의 야욕으로 곳곳에 설립된 철도역과 그 부속기관의 개발과정에서 조성된 효창원 골프코스는 만들어진 장소가 효창원이라는 점에서 그 순수성이 의심되고 개발에 또 다른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효창원은 조선 왕족의 묘가 있는 신성한 장소임과 동시 산림이 울창하여 조선인들이 아끼고 사랑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조선 왕조의 혼을 간직한 곳을 쉽게 임대받아 조선호텔을 이용하는 외국인과 일본인들의 여가시설로 만든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과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일본이 조선황실을 ‘이왕가(李王家)’로 격하시켜 ‘이왕직’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황실의 운영과 재산을 관리했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왕직 장관은 조선황실 재산에 대한 전권을 행사 할 수 있어서 황실의 묘역을 쉽게 임대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일본은 황실의 묘역을 골프장으로 만들어 짓밟는 망국의 역사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 왕조의 혼이 남아 있는 효창원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당시 설계자인 Daunt의 수기에서 찾을 수 있다.

효창원 골프코스의 전경 사진으로 사진의 상단중앙에 멀리 원형을 이루며 규칙적으로 꽂혀 있는 흰색 말뚝은 일반적인 골프코스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시설물이다. 이것은 큰 원형을 이루고 있는 말뚝 내에 있던 것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이 묘역이었다는 점과 코스 주변에 고분(古墳)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사진 속에 원형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봉분(封墳)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물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유교적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왕실의 묘역에 골프코스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봉분(封墳) 주변까지 코스를 만들었다는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송림이 우거져 있던 효창원을 골프코스로 개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손환(2006)에 따르면 효창원 골프코스를 만들면서 조선총독부 철도국 공무원과 이시카와(石川) 기사의 감독 하에 벌목하였고, 총 공사비용은 6,000엔이 소요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골프장을 개발함에 있어 가장 핵심인 부지(敷地)를 황실의 묘가 있던 곳에 임대했다는 점은 일본 정부와 고위 관료들의 적극적인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당시 공사 주체가 조선총독부 소속의 철도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도국은 일본이 대륙정벌을 위해 만든 곳으로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고 있었으며,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던 기관이다.

이곳에서 황실의 묘원을 임대하고 6,000엔이라는 자금을 출자하여 골프코스를 개발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상황에서는 울창한 나무숲을 베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호텔이 건설한 효창원 골프코스는 일제가 대륙 진출의 야욕에 첨병인 일제의 관리나 군벌들이 쉬어가는 중간 기착지에 이들의 오락시설로 활용하면서 조선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로 개발한 경술치국(庚戌恥國)의 한 단면이라 사료된다. 또한 한반도에서 골프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총독부 고위관리, 기업체의 장(長) 등이 즐기던 특권층 놀이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시작부터 골프가 대중들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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