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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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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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시민혁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 반정부 민주화 시위모습^^^  
 

1월 말부터 열흘 넘도록 전 세계의 관심은 이집트에 쏠려 있다. TV로 보는 BBC와 CNN은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보는 폭스 뉴스도 연일 이집트가 톱 뉴스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이집트의 향방에 따라 중동 정세가 좌우될 것이고, 그것은 국제정세를 뒤 흔들게 될 것이다. 이집트의 시민혁명 사태는 인터넷과 소셜 웹이 이루어낸 것이라면서 희망적인 관측을 하기도 하지만, 이집트가 과연 민주화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이란처럼 근본주의 이슬람이 주도하는 국가로 변신해 갈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집트에는 호메이니 같은 종교 지도자가 없을뿐더러, 이집트 사회는 원래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또 외국인 투자와 관광이 주된 수입원이기 때문에 ‘제2의 이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다. 하지만 1978년 초부터 시작된 이란 내에서의 반정부 시위가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 독재로 귀착될 것을 내다본 서방 언론이나 학자는 없었기 때문에 이집트의 미래도 역시 불확실하다고 할 것이다.

한편 무바라크의 세습 시도가 작금의 사태를 불렀다면서 이집트 사태는 북한의 ‘김씨 세습 왕조’의 앞날을 경고한다는 식의 해석이 일부 국내 신문에 있어 흥미로운데, 2월 2일자 동아일보 사내칼럼(‘무바라크와 김일성 왕조 3대’)이 대표적이다. 사실 ‘압제’로 칠 것 같으면 이집트는 북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집트에서 요즘 같은 시민혁명이 일어난다면 북한의 김 씨 정권은 열 번은 더 무너졌어야 한다. 압제는 시민혁명을 불러일으키지만, 역설적으로 상당한 자유가 인정되는 압제국가에서나 시민혁명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에선 시민혁명이 없었지만 우리에겐 4월 혁명과 6월 혁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것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이란의 샤(팔레비 국왕) 정권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중 어느 정권이 더 지독한 압제였는가는 누가 봐도 명백할 것이다. 이란의 샤 정부는 미국이 사주한 구테타로 들어선 정권이었고, 미국의 지지로 지탱했던 정권이었다. 샤는 이란을 현대화하려고 했고,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 등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테크노크라트로 자리 잡는 등 이란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였다. 그러나 샤 정권은 극심한 빈부 차이, 전통적 계층과의 갈등, 장기 집권에 따른 언론 탄압 등 압제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1978년 초부터 시위가 잦아졌지만 샤 정부가 무너질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은 당시 테헤란 주재 이스라엘 대사뿐이었다. 이디오피아 주재 대사를 지내면서 셀라시에 왕정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그는 본국 정부에 그런 우려를 전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미국 국무부와 CIA에 전달했으나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만 얻었다. 샤는 1979년 1월 초에 외국으로 망명했고, 2월 1일에 호메이니는 테헤란으로 돌아왔으며 수백만 군중이 그를 환영했다.

이란의 샤와는 달리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자신에 대한 반대자를 가차 없이 처형하는 등 공포의 통치를 했다. 그런 공포의 통치하에선 ‘시민혁명’이 일어날 수가 없다. 1991년 걸프 전쟁은 이라크 사람들에게 후세인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잠시 제공했다. 실제로 북부의 쿠르드 지역과 시아파(派) 지역에서 후세인에 반대하는 시위가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자 후세인은 자신의 친위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보내서 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시아파 주민들을 학살할 때에 주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미 합참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공격하게 해 달라는 현지 미군 지휘관들의 건의를 묵살했다. 걸프 전쟁 때 성급하게 종전을 선언해서 공화국 수비대를 파괴하지 못한 것과 시아파 주민 학살을 방치한 것은 걸프 전쟁에서 미국이 저지른 중대한 실수로 평가된다. 그 후 유엔에 의한 경제봉쇄를 당하면서도 후세인은 압제를 계속했고, 결국 그는 조지 W. 부시가 벌인 전쟁으로 인해 미군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됐고, 아버지 그늘 아래서 전횡했던 후세인 아들 둘은 미군에 의해 피살됐다. 잔인한 압제 하에선 시민혁명이 불가능함을 잘 보여 준 셈이다.

호메이니가 장악한 이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등 전보다 더한 새로운 형태의 압제, 즉 ‘공포의 신정(神政)’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런 공포 정치에 저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호메이니가 드디어 사망하자 서방의 관측자들은 이란이 이제는 개방을 하지 않겠나 하고 기대했다. 실제로 그런 희망적 징후가 생기기도 했고, 그것을 보고 낙관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중동전문가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이란 그리고 북한을 ‘악(惡)의 축’으로 지목하자 “이란은 개방적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부시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란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며, 이란의 임박한 핵 무기 개발은 북한의 핵 무기와 더불어 세계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것은 물론 미국인데, 그것이 미국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집트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맺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간의 평화협정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미국의 눈물어린 노력의 결과였고, 그 대가로 미국은 이집트와 요르단에게 경제원조를 주어 오고 있다.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 반도 남쪽 홍해 연안에는 별천지 같은 휴양지가 생겨서 유럽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경제적 혜택이 이집트의 특권 계층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이집트 사태 초기에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언론에 한 이야기를 보면 1978년에 카터 행정부가 이란 사태를 보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현상유지’(‘status quo’)를 희망했으나 그것은 이미 깨져버린 후였다. 무바라크가 30년이나 권좌에 있을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는 미국이 벌써 10년 가까이 벌이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위해서 미국은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지가 필요했고, 그래서 미국은 이집트와 사우디의 인권유린과 반(反)민주주의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와 사우디의 정보기관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사로잡은 포로를 미군 대신 고문하는 악역도 기꺼이 맡았다. 조지 W. 부시도 자서전에서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알케이다 지휘부를 제거할 수 있었다고 썼을 정도다. 민주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미국으로선 이집트와 사우디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석유를 갖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와 달리 이집트는 외국 자본과 관광수입, 그리고 미국의 지원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어서 노골적인 반미 노선을 가기는 어렵겠지만, 최악의 경우는 사다트가 생명을 바쳐 이루어 놓은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체제가 위태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사태가 요르단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전체 중동이 다시 크게 요동칠 우려도 있다. 이란이 핵무장을 하고, 이라크과 서부 아프가니스탄이 이란의 영향권 아래로 떨어지고, 이집트와 요르단 등 온건 아랍권에서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커지는 세상이라면 미국과 서유럽이 지배해 온 문명과 세계가 이제 막(幕)을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그것처럼 반가운 일은 없겠지만, 그런 ‘한가한 희망적인 기대’를 하기에는 이집트 사태가 너무나 중차대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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