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에 물든 우리말-(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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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색에 물든 우리말-(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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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깡(わりかん)

어느 날 옛 친구들이 내사무실엘 몰려와 담소를 나누다 저녁때가 되자 한 친구가 "우리 '와리깡' 해서 저녁식사나 하자"고 제의를 한다. 옛날 같으면 자기가 사겠다고 앞장서 나섰을 텐데 요즘 주머니에 용돈이 떨어졌는지 궁색한 제의를 했다.

왕년에 화려했던 직장도 나이 들어 그만두고 백수가 됐으니 당연한 제의였을 것이다. 다 같은 처지에 있는 신세인지라 누가 마다할 것인가? 일행은 그를 따라 나오면서도 어쩐지 그가 말한 '와리깡'이란 말이 마음에 거슬린다.

'와리깡'(わりかん-割り勘)이란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이다. 본디 말은 '와리마에간죠'(わりまえかんじょう-割前勘定)로 이를 줄인 말이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각자추렴 또는 공동부담이라는 말이 된다.

이 친구들은 일제치하인 어린 시절부터 사용하던 말이라 별 부담 없이 아직까지도 우리말로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로 고쳐 부르라고 몇 차례 권유했지만 우이독경 격으로 그때뿐이다. 이토록 한번 길들여진 말버릇은 좀처럼 고쳐 부르기가 힘들다.

'와리깡' 이란 다시 말해 자기가 먹은 음식 값은 자기가 내는 제도로 각자가 지불하는 복잡성을 덜기 위해 어느 한사람이 한데 모아서 일괄 지불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정착이 돼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더치페이(Dutch pay)라 하여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내가 60년대 초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수강 중일 때 들은 × 교수의 체험담 생각이 난다. 그 교수가 미국 국무성초청으로 교육을 받으러 미국을 갔는데 현장 실습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안내자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계속 하자기에 졸랑졸랑 따라가 그와 같이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를 했단다.

식사를 마친 후 안내자는 현장으로 가자며 벌떡 일어서기에 따라나섰다. 식당 문을 나와 몇 발작 걸었는데 식당 종업원인 흑인이 쫓아 나오며 밥값 계산을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앞사람과 동행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은 자기 밥값 계산을 했으니 당신 것만 내면 된다고 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 했다. 미국은 우리문화와 다르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무지가 이날의 창피를 몰고 온 것이다. 무안하기도하고 창피하며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밥값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우리 풍속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제의한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 상례인데 미국은 우리문화와 다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이토록 수치를 당하게 된 것이다. 사소한 불찰이 국제적 망신을 당했으니 매사는 불여튼튼이란 속담이 생각났다고 했다.

근래 우리 주변에는 신용 카드 매출전표를 불법으로 할인해 탈세와 폭리를 취하는 '카드깡' 이란 신종 <깡>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는 본래의 목적인 각자 공동 부담이 아닌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빌려주는 일종의 고리대금업이다.

최근 들어 그 수법이 대담해지고 대형화·조직화하면서 거액의 탈세를 위한 방편으로 '카드깡'이 득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신용 카드 할인을 이르는 속칭으로 일본어의 '와리캉'(割り勘)에서 유래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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