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화가치 10분의 1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200여 명이 사망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한 지 2021년 8월 4일로 꼭 1년을 맞았다.
대규모 도시 폭발 사고 직후에 레바논 내각이 총사퇴를 표명한 이후, 1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사실상 정치공백이 계속 되어, 경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7월 말에는 3번째 총리 후보자가 지명은 됐지만, 정권 수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 붕괴의 현실성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레바논의 일반 물가는 하는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치즈 값은 1년 반 만에 5배가 됐다. 복수의 외신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이루트의 식품점은 물론 일반 상점들도 치솟은 물가에 시민들의 소비는 꽁꽁 얼어붙고, 전력공급은 매우 불안정해 가게 안은 마치 밤처럼 어두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레바논은 차입에 의한 과도한 보조금 제도 등으로 재정의 앞뒤가 꽉 막혀 2020년 3월에는 채무불이행(default, 디폴트)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 직후에 일어난 것이 200명이 웃도는 사망자와, 6,5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도시폭발사고이다.
항구에 보관되어 있던 질산암모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원인 규명은 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폭발 사고로 당시의 하산 디아브 (Hassan Diab) 내각이 총사퇴 표명에 이르렀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총리가 지명되었지만, 모두 내각 구성에 실패했다. 그 사이 정치의 공전으로 레바논 경제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레바논 파운드화와 달러화의 고정 환율은 사실상 붕괴됐으며, 2년 전의 10분의 1 이하로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
식료품이나 연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지하는 레바논에서는 통화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으로 직결된다.
레바논 정부 통계당국에 따르면, 2020년 인플레이션율은 85%에서 올해 들어 100%를 넘어섰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보였고, 연료도 제대로 수입할 수 없게 됐다. 6월 이후는 하루의 대부분은 정전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가로등이나 신호등이 켜지는 일이 거의 없다.
경제 살리기는 정치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미셸 아운 (Michel Aoun) 레바논 대통령은 7월 하순 세 번째 총리 후보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나지브 미카티 (Najib Mikati) 전 총리를 지명했다. 그런데도 베이루트·아메리칸대의 정치학자, 나세르·야신 교수는 “미카티가 개각에 성공을 한다고 해도 경제회생을 향한 본격적인 개혁 실행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이 장기적인 정치 공백의 배경은 레바논 특유의 정치 구조이다.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공인 18개의 종교의 종파가 정치적 고위 주요직이나 의석을 나누어 가지도록 돼 있다. 각 세력이 말단 행정조직에까지 이권망(a vested interest-network)을 촘촘하게 치고 있어 개혁은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러한 정치 체제가 사법이나 행정 등의 기능을 마비시켜 베이루트 항만의 관리 당국이 질산암모늄을 오랫동안 방치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공동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원리상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전가(buck-passing)에 불과하다.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레바논의 상황에 대해, 옛날 종주국인 프랑스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초조함을 더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일 레바논의 국제적인 지원을 위한 모임을 주최하지만, 목적은 인도적 지원에 불과하다. 나라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재정 재건 계획 등은 새로운 레바논 정권이 발족해 개혁에 일정한 전망이 선 다음의 순서이다.
세계은행 등에서 일을 한 경제전문가들 “레바논이 이대로 가면 진짜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 매우 극심한 인플레이션), 기아(starvation), 내란(rebellion) 등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레바논은 국내 세력들이 각각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주변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파(宗派) 의 갈등과 더불어 인근 국가와의 네트워크가 레바논 정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내고 있다.
레바논에 다가오는 정치와 경제의 위기는 극심하게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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