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적 동북아역사재단을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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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적 동북아역사재단을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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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의 유언도 거역하는 동북아는 패륜아 인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과 제18대 광개토호태왕이 중국 임금을 섬기는 신하(臣下)라고 주장하며, 어처구니없는 망발을 일삼아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2004. 3. 1일 고구려연구재단이 출범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대응의 본질 연구는 외면하고, 무려 1백억원의 국고만 손실내고 결국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되고 말았다.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은 2005년 4월 8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 발의하여 2006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어『동북아역사재단』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의하여 8월16일 시행되어 고구려연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하고 2006년 9월 28일 정식 출범했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겠다.” 는 목적으로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요 연구사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동아시아의 근·현대사 쟁점 규명

  2. 한·일 관계사, 고구려사 등 동북아시아 역사 연구

  3. 한일병합조약, 한일협정(1965) 등 한·일관계 제반 협약 연구

  4. 역사·지리적 관점, 국제법적·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독도 영유권 강화방안 연구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주요 연구 사업의 상기 1~4는 교묘히 가식(假飾)하여 바른역사정립 자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즉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들이 왜곡된 국사정립에 대한 탐구를 회피하고, 현행 국사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묵시적으로 암시 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현행 국사가 식민사학자 이병도에 의해 엉터리로 편찬된 사실을 감지한 23명의 국회위원들은 본래『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란 제명으로 발의했으나『바른역사정립』은 빼버리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다는 미명(美名)]의 동북아역사재단이란 이름으로 출범하여 또다시 7천만 국민을 우롱하며 기만하고 있습니다.

본래 23명의 국회위원들이 발의했던 『바른역사정립』의 이름으로 출범해야 마땅한 기관명을 [동북아역사재단]이란 가식적 미명으로 출범한 속 사정은 『바른역사정립』의 이름은 대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큰 장애물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제와 식민사학자 이병도에 의해 말살, 왜곡, 변조된 망국적 치욕의 사대주의적 식민지사관의 현행 국사를 바로 정립한다는『바른역사정립』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다는 미명의 동북아역사재단이란 이름의 차이는 미묘(微妙)한 괴리(乖離)가 있습니다.

즉 동북아역사재단은 『바른역사정립』은 외면하고, 일제와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가짜로 편찬한 망국적 치욕의 식민지국사를 철통같이 고수(固守)하겠다는 음흉한 저의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에 의해 말살, 왜곡된 『바른역사정립』은 외면하고 현행 국사를 적극 고수하겠다는 흉계와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한 통속의 역사관을 입증하는 절대적 증서가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의 ‘올바른 역사’등재 입니다.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 출범이후 1년여 동안 현직 연구위원들의 치적들이 또한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고작 ① 고구려 지키기 ② 요동의 역사를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제 3의 영역으로 보려는 요동사(遼東史)의 개념 등이 대표적 연구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홈의 ‘올바른 역사’ 본문은 민족의 반역자이며, 우리역사 왜곡의 주범이며, 일본왕의 충견이었던, 이병도 식의 철저한 패배의식과 사대주의적 식민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내용이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된 현행 중, 고등 국사와 똑 같은 내용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은 외면하고, 오히려 중국 동북공정을 비호(庇護)하고, 민족혼을 말살한 대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편찬한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비호한다면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병도 보다 더 큰 범법자가 아니고 무엇이며, 반민족적 연구 기관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약에 깨닫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각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중국 동북공정의 대응 첩경은 우리나라를 일찍 멸망시키고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왕의 충견이었던 식민사학자들이 편찬한 망국적 치욕의 현행 국사를 철폐하고, 반드시 민족사학자가 저술한 사서를 근간으로 오직『바른역사정립』뿐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염려하고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은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의 ‘올바른 역사’와 본 뉴스타운의 연재 [한국사 진단]을 함께 탐독하시면 누구나 울분을 참지 못할 것이며,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이 7천만 국민을 그 얼마나 우롱하며, 기만해 왔는지 곧바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홈의 [올바른 역사] 본문을 깊이 탐독, 고찰해 보시면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대응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동북공정을 더욱 견고히 고착시키는 비호(庇護) 세력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즉 중국의 한무제가 5만여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침략하여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을 멸망시키고(B.C108) 한(漢)나라는 북한지역에 한4군을 설치하고, 고조선을 식민지로 다스렸다. 또한 한무제는 황제이며, 같은 시대의 우리나라는 제부족사회입니다. 어찌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할 수 있으며, 어찌 중국의 동북공정이 허황된 주장이라 할 수 있으며, 어찌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 동북공정의 비호 기관이라 말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북아역사재단은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교묘히 거짓 가짜로 편찬한 현행 국사를 철폐하고, 반드시 바른 국사로 정립하지 않고는 결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도 직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일본인과 이병도가 거짓 가짜로 편찬된 위서(僞書)만 탐구하는 위선(僞善)자들이 어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 홈의 [올바른 역사]는 1. 개관 2. 고조선의 위치 3. 종족구성 4. 정치와 경제 5. 사회 6. 신화로 6등분하여 무려 2천여년 고조선 역사를 단 한 장에 수록 해설하고 있습니다.

독자님들이 잘 살펴 고찰(考察)해 보시면, 고조선과 국조 단군을 인정하는 것 같으나 교묘히 부정하고, 중국의 식민지 나라를 특별히 강조하고, 마치 남의 나라 역사처럼 빈정거리며 이병도식 민족 비하(卑下)의 어법(語法)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동북공정 비호세력인가?

[동북아역사재단 홈의 올바른 역사에서 옮겨온 내용입니다.]

1. 개관

고조선은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서, 중근세에는 위만조선 이전의 조선만을 고조선이라 불렀으나, 최근에는 위만조선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고조선이라 하고 있다.

요하유역의 비파형동검문화와 대동강유역의 세형동검문화가 고조선의 문화로 알려져 있는데, 기원전 3~2세기대 준왕 대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 평양을 도읍으로 하고 있었고, 전국 연나라와의 전쟁이 있기 전인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이전에는 요하유역 어딘가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고려시대 승 일연이 13세기에 쓴『삼국유사』와 승 일연이 참고한 중국사서 『위서(魏書)』등에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하늘신인 환인의 손자이자 환인의 서손 환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다만 요하유역의 고고학적인 정황과 여러 문헌기록을 고려하여 볼 때, 기원전 8~6세기 요하유역에서 군장사회(君長社會)의 형태로 출발하였고, 늦어도 기원전 7~5세기 대에는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은 발달된 청동기문화와 주변의 선진적인 문화를 수용하여 문화와 경제는 물론 정치적인 면에서도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중국의 사서인 『위략(魏略)』에 의하면 기원전 4세기에는 고조선의 세력이 강성해져 중국의 전국시대 칠웅(七雄) 중의 하나였던 연(燕) 나라와 세력을 다툴 정도에 이르렀다.

고조선과 전국시대 연나라의 긴장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연나라의 칭왕(稱王)으로 되어 있으나, 고조선의 통치자 또한 연나라에 뒤질새라 칭왕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조선이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조선과 연나라의 긴장관계는 급기야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면적인 전쟁의 형태로 표출되었는데, 고조선은 이 전쟁으로 무려 2,000여리에 달하는 지역을 빼앗기고 그 중심지를 평양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러던 중 진한(秦漢) 교체기와 한나라 초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연나라를 비롯한 북중국 사람들이 고조선의 변경으로 많이 망명하게 되었는데, 연나라 출신 위만(衛滿)이 이들과 일부 토착집단을 결집시켜 준왕(準王)을 공격하여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세웠다.

위만조선은 위만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중국 망명 집단과 다수의 토착집단의 결합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기에 처음부터 고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고 나중에는 중국 망명인 출신들 또한 고조선인으로서 완전히 토착화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정권을 빼앗긴 준왕은 뱃길로 서해안 일대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위만조선은 한나라와의 교역과 중개를 통해 실력을 배양시켰고, 이렇게 하여 축적된 군사력과 경제적 능력으로 임둔과 진번 같은 소국들을 복속시켜 점차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위만조선의 성장은 당시 북방의 강자인 흉노와 대치 국면에 놓여져 있던 한나라로 하여금 불안감을 야기시켰고, 결국 기원전 109년 두 나라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시 한나라는 50,000여명에 달하는 대군을 발동하여 위만조선을 공격하였는데, 위만조선의 군사력은 한나라가 근 1년이 지나서야 그것도 내분을 유도하여 겨우 승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강성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의 북쪽에는 우리 민족의 일부가 세운 부여(夫餘)가 성장하고 있었으며 남쪽에는 진(辰)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고조선은 이들 나라와 함께 고구려, 백제, 신라를 형성한 모태가 되었다.

 
   
  ▲ 올바른 역사의 후기조선  
 

2. 고조선의 위치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 말 중국 연나라가 칭왕하는 것에 뒤이어 마찬가지로 칭왕한 것으로 되어 있고,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위만이 준왕정권을 전복시킨 다음 왕험성(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위만조선을 세웠으며, 기원전 109년 가을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 있을 때에는 한나라 군대가 왕험성의 방비가 견고하여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하였으며, 기원전 108년 여름에는 위만조선의 대신 성기가 왕험성에서 한나라에 항거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중 위만조선은 그 왕성인 [1] 왕험성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 이는 위만조선과 한의 경계 역할을 한 [2] 패수(浿水)가 지금의 압록강이라는 점,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3]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는 점, 왕험성 및 조선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4] 열수(列水)가 지금의 대동강으로 비정되고 있다든지 하는 점을 통해서 입증된다. 따라서 위만조선이 전복한 준왕 대 고조선의 왕성 또한 지금의 평양에 있었던 셈이 된다.

▶ 중국은 황제국이며 우리나라는 부족사회이다.

 
   
  ▲ 올바른 역사의 후기조선  
 

준왕 이전의 고조선, 다시 말해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국 연나라와의 전쟁으로 2,000여리를 빼앗기기 전의 고조선 중심지는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분명치는 않다.

다만 준왕과 위만조선의 문화인 대동강유역의 세형동검문화가 요하유역 비파형동검문화의 후계문화이고 비파형동검문화가 요하유역에서 발전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요하유역의 어딘가에 고조선의 중심지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후보지로는 조양(朝陽), 금주(錦州), 북진(北鎭), 심양(沈陽), 요양(遼陽), 해성(海城), 개주(盖州) 등이 논의되고 있다.

3. 종족구성 : 고조선은 예(濊)·맥(貊)이라는 종족이 정치적으로 성장하여 발전시킨 나라이다. 예맥족은 한반도와 요령성 및 길림성 등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으로서, 고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화인 비파형동검문화를 형성, 발전시켰다. [중략] 따라서 우리민족 형성의 근간이 된 종족은 고조선 사람들인 예맥족과 [5],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삼한(三韓)을 구성한 한족(韓族)이라고 할 수 있다.

4. 정치와 경제 : 고조선은 제정일치적 통치체제와 8조금법 등의 법제도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존속기간이 긴만큼 정치 및 사회적 단계 또한 변모하여 왔는데, 비파형동검단계에는 적어도 군장사회까지는 이르렀던 것으로 여겨지고, 세형동검단계에는 어떠한 형태로든지간에 국가단계에 진입하였던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중략]

특히 위만조선 시기에는 중국의 한(漢) 나라와 주변의 여러 나라 사이의 중계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었으며, 연(燕)나라에서 만든 명도전(明刀錢)이라는 화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명도전은 중국 북경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고조선 주민들이 주변의 여러 종족과 함께 명도전을 사용하였음을 의미한다.

5. 사회 : 고조선은 적어도 위만조선 대에는 계급사회인 국가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왕성, 관료조직, 군대, 계급 등의 요소가 모두 확인되고 있다.

위만조선의 국가로서의 성장은 중개무역과 군사 정복에 의해 강화되었는데, 중개무역은 한나라와 위만조선 및 위만조선 주변의 여러 집단 사이에서, 군사정복은 위만조선과 그 주변의 진번과 임둔과 같은 소국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통치중심인 왕성으로는 왕험성이, 관료로는 상직(相職)이, 군대로는 장군 휘하의 최소 10,000여명의 군사가 있었다.(중략)

위만조선 이전에는 기원전 4세기대 왕과 대부 및 군사의 존재가 확인되는데, 기록이 희소하여 더 이상을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단,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국 연나라와의 전쟁이 있기 전 고조선이 요하유역의 어딘가에 있었고 [중략] 이외 위만조선 전후의 것으로 여겨지는 8조금법중 3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였고, 사람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배상하였으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예로 삼되 용서 받으려면 50만전을 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백성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 대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고 여자들은 모두 정조가 있어 음란하고 편벽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이 금법을 통해 고조선 사회가 일정한 법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였고 최하층으로서 노예가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6. 신화 : 단군신화를 전하는 기록으로는『삼국유사』이전에 이미 일연 등이 참고한『고기』,『본기』,『위략』등이 있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으로는 일연의『삼국유사』, 이승휴의『제왕운기』, 권람의『응제시주』,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실려 있는데, 이 중『삼국유사』가 가장 고형이라는 데에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단군신화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아득한 옛적 하늘신 환인(桓因)의 서자인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는데, 환인이 그 뜻을 알고 지상의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부르고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온갖 일을 다스렸다. [후략]

출처 : http://www.historyfoundation.or.kr/History/KrCn/Ancient.asp
메뉴담당자 교류홍보실 TEL : 02-2012-6152

[1] 고조선의 단군은 국왕으로 믿기 어렵다. 고 했다.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 하늘신인 환인의 손자이자 환인의 서손 환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라고 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을 믿지 않고 요임금과 같은 시대의 단군과 고조선시대를 부정하고 단군왕검을 부족 장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요임금도 부정해야 옳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오직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 밖에 없습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古朝鮮)]편에 魏書(위서)에 이르기를 2,000년의 고대사가 기재되어 있었다. 단군왕검(BC 2370-2239)은 아사달(無棄山(무기산), 또한 백악산, 白州(백주)지역, 혹은 개성 동쪽, 지금의 백악궁)에 도읍을 세우고 당요제(BC 2357-2258)와 같은 시대에 나라를 개국하여 국호를 “조선” 이라 불렀다. 라고 명확히 기록된 삼국유사를 부정하고 있다.

도대체 일인학자들과 이병도의 논문을 제외하고 기원전 8~6세기 요하유역에서 군장사회(君長社會)의 형태로 출발했다. 는 기록은 어느 고대 문헌에 기록돼 있단 말인가? 또 환인, 환웅, 단군이 명확히 기록돼 있으나 왜 환인, 황웅과 단군을 부정하는 사유가 무엇인가?

[2] 준왕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평양이 아니다

기원전 3~2세기대 준왕 대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평양을 도읍으로 정했다.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위만이 준왕정권을 전복시킨 다음 왕험성(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위만조선을 세웠다. 기원전 108년 한나라는 50,000여명에 달하는 대군을 발동하여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 나라는 한4군을 설치했다. 註: 한이 설치했던 한 4군은 결국 고구려에 의해 격퇴될 때 까지 식민자로 다스렸다는 뜻의 교묘한 이병도식 어법입니다]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 전면적인 전쟁의 형태로 표출되었는데, 고조선은 이 전쟁으로 무려 2,000여리에 달하는 지역을 빼앗기고 그 중심지를 평양으로 옮기게 되었다.라고 돼 있습니다.

도대체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들은 우리 고조선의 영토가 무려 2,000여리에 달하는 지역을 한나라에 빼앗긴 땅이 어디인지도 연구 발표한 연구원아 있는가?

[올바른 역사]는 [1] 왕험성 ⇒ 평양시 북안이다. [2] 패수(浿水) ⇒ 지금의 압록강이다. [3] 낙랑군 ⇒ 평양시이다. [4] 열수(列水)는 ⇒ 지금의 대동강으로 돼 있습니다.

상기 [1~4]의 지명 위치에 위만조선이며, 소위 한4군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3] 이병도는 죽기 전 한4군의 위치를 밝혔다.

 
   
  ▲ 이병도가 밝힌 왕검성과 위만조선  
 

이병도의 스승 금서룡(今西龍.1875~1931)은 삼국사기 중요 지명의 열대패 삼수고(洌帶浿三水考) 논문을 발표했다.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는 일본인 스승 금서룡(今西龍)의 열대패 삼수고(洌帶浿三水考) 논문에 따라 중국 요서(遼西)지방의 대릉하(大凌河)에 위치한 패수(浿水)를 북한의 청천강으로 지정하고, 또 하북성의 왕검성(왕험성)을 평양으로 지정하고 요서(遼西) 와 하북성에 위치했던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을 평양으로 설정하고, 열하(熱河)를 ⇒ 열수(列水)로 바꾸고, 지금의 대동강으로 비정했던 것입니다.

일인학자와 이병도는 중국 대륙의 지명을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추고, 중국대륙에서 건국되었던 신라, 백제, 가야의 강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 변조하는 증거로 삼아 우리나라를 철저히 한반도 속의 소국으로 얽어 맞춘 결정적 요인이 열대패 삼수고(洌帶浿三水考) 논문입니다.

우리나라 3국의 위치상 가장 중요한 왕검성(왕험성), 낙랑(樂浪), 대방(帶方:帶水), 패수(浿水), 열수(列水)의 핵심 지명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찬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과 이병도를 추종하는 학자 중에 탐구하여 발표한 연구원이 있는가?

 
   
  ▲ 이병도의 자백전 한4군과 자백후의 한4군  
 

[4] 대부의 유언도 거역하는 동북아는 패륜아 인가?

이병도가 죽기전 고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한 위치를 밝히게 된 동기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지금도 경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김세환 원장님이 우리 역사 왜곡의 주범, 이병도 자택을 찾아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기 전에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해 사실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이병도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밝히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습니다.

김세환 원장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낀 이병도는 1986년 10월 9일(목)자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니고 우리나라 국조이며 "역대왕조의 단군제사는 일제 때 끊겼다" 라는 제목으로 특별기고 하여 우리나라 고대역사 왜곡의 사실을 고백하고 1989년에 죽었습니다.

이병도는 죽기 전까지 중국은 황제국이고 이웃에 위치한 우리 민족은 B.C 108년까지도 국가다운 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제부족사회(諸部族聯盟社會)를 강조했습니다.

한편 한무제는 대규모 침략을 감행하여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을 멸망(기원전108)시키고. 한은 위만의 고조선 지역에 한사군(漢四郡 : 낙랑, 임둔, 현도, 진번군)을 설치하고, [한무제는 북한지역을 식민지로 다스렸다]라고 철저한 사대주의사상과 식민지사관을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김세환 원장에게 목숨의 위협을 당하고, 죽음이 임박해서 최태영 박사의 설득으로 이병도와, 최태영 박사가 공저한 “한국상고사 입문”에서 단군조선을 인정하고 한4군에 대한 위치도 정확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상도와 같이 이병도는 끝내 위만조선의 왕검성(왕험성)과 고조선의 왕검성이 마치 다른 것 처럼 두 개의 왕검성(왕험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 대국의 고조선 삼한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끝내 밝히지 않고 죽었습니다.

이병도가 죽자 사학의 선구자로 추종하던 제자들은 이제 노망이 들어 헛소리 한 것에 불과하고 단군은 신화일 뿐이다. 라고 주장하며 이병도가 진실로 참회하고 밝힌 고조선과 위만조선과 한4군의 위치를 확실히 믿지 못하게 흐려놓는 수작으로 이병도를 비호했습니다.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지금도 역사학계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교육, 종교 등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어처구니 없는 괴변으로 민족의 사학을 정립한 선구자로 추종하며 목숨을 걸고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사수(死守)하고 있습니다.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모두 다 일인 학자와 이병도가 거짓 가짜로 저술한 위서(僞書)를 인용해서 석사, 박사, 교수, 연구원, 국편위원장, 등의 명예를 성취했기 때문에 그들또한 가짜 박사의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명예와 현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사학계의 대부(大父) 이병도를 죽을 때 까지 추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병도처럼 죽을 때 까지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사유라 사료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편찬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들도 이병도가 죽기 전에 밝힌 한4군의 위치에 대해 이병도가 노망해서 헛소리로 밝힌 위치인가? 이병도와, 최태영 박사가 공저한 “한국상고사 입문”은 황당하고 신빙성이 없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자료인가?

대한민국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사편찬위원회를 창설하고 국사학계의 최고 원로인, 대부(大父) 이병도가 밝힌 한4군의 위치에 따라 당연히 바른 국사로 새로 개편해야 마땅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죽기 전의 국사를 그대로 고수(固守)하는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패륜아(悖倫兒)인가? 맹아(盲啞)들 인가? 아~~ 하느님을 숭배하던 천손들이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늘을 원망하며, 땅을 치며, 통탄할 뿐이다.

[5] 수많은 고대사료가 산처럼 쌓여 잠자고 있다.

대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들은 한국은 고대사 자료가 빈약하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 해도 입증할 사료가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말들은 모두 다 이병도를 추종하는 반민족적 세력들이 주장하는 괴변입니다. 왜냐하면 1945년 8.15 해방이후 환단고기를 비릇 수 많은 고대 사료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수집된 자료만 해도 수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사편찬위원회 사고(史庫)와 정부문헌 창고에 수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이 산처럼 쌓여 잠자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과 귀가 먹고, 왜독에 중독되어 넋을 잃은 정부당국자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들의 눈에는 모두 다 믿을 수 없이 황당하고 신빙성이 없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자료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는 똑같이 남의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농아(聾啞)와 맹아(盲啞)와 같은 불구자가 어찌 중국의 동북공정과 대응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위 중국 동북공정의 우리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된 [동북아역사재단 홈의 올바른 역사]에서 오히려 중국 동북공정을 확고히 입증하고. 비호하는 얼빠진 작태를 연출하는 멍청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존속할 가치가 없고, 막대한 국고 소실만 초래할 뿐입니다. 본 뉴스타운의 본문 제1탄으로 이미 [중국 동북공정]은 파괴되고 말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즉시 해체하라...! 해체하라...!

[6] 국사개편은 논쟁할 사안이 아닙니다.

대개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역사를 탐구한 사람들 마다 주장이 각각 다르므로 역사학계에서 학술적으로 토론하여 하나로 통일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사개편은 논쟁할 사안이 아닙니다.

즉 우리나라를 침탈한 일제가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 가짜로 만들었다는 “조선사편찬사업개요”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또한 망국적 치욕의 현행국사 내용이 바로 명백한 증서입니다.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조선사를 만든 목적과 “조선사편찬 지침”에 따라 조국을 배신한 민족반역자들과 일본인 학자들이 거짓 가짜로 만든 “일제만행의 명백한 증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거짓 가짜 국사”에 대해 무슨 논쟁을 한단 말입니까?

세상에서 자국의 국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논쟁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또 어떤 나라가 있단 말입니까?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우리나라를 강탈한 침략자가 거짓 가짜로 만들어준 국사에 대해 무슨 논쟁을 한단 말입니까?

1945년 독립국이 되었으면 침략자가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킬 목적으로 거짓 가짜로 만든 국사는 당연히 개편해야 마땅한 것을 얼빠진 정부당국자는 7천만 국민을 기만하며, 책무를 기피함으로서 논쟁하고 있을 뿐이지 올바른 정통국사라면 어찌 자국의 국사가 논쟁의 대상이 된단 말입니까?

다만 조국을 배신하고 오직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왕의 충견이었던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온갖 괴변으로 현행 국사를 적극 사수(死守)하며 망국적 치욕의 국사개편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논쟁할 뿐입니다.

1945년 일제의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으면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켜 영원히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국의 역대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허물을 과장하게 들추어내서 거짓 가짜로 편찬했던 조선사(현행국사)는 당연히 폐기 처분하고, 일제의 손으로 말살된 성군(聖君)의 역사는 복원하고, 유린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 세워야 대한민국 국민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국편위원회와 동북아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라.

우리나라의 국사는 오직 대통령 스스로 자각하고 반드시 개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결심을 갖고 국책으로 삼았을 때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잘못된 역사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수정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뒤틀린 현행 국사]는 장기적 국책이기 때문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두 개의 기관으로 존재할 필요성이 없으며, 진실로 각성하고, 하나로 합쳐서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일제와 민족의 반역자 이병도의 손으로 말살된 성군(聖君)의 역사는 복원하고, 유린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 세워 올바른 정통적 국사정립을 간절히 소망하며, 거듭 간곡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8] 한반도 하늘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의 4국은 본래 중국 대륙에서 건국되었던 아세아적 대국을 한반도 속의 소국으로 축소한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의 반민족적 범행으로 말미암아 중국의 동북공정이 잉태했던 것입니다.

이미 태어난 중국의 동북공정이 점점 성장하여 청년으로 변모하고, 중국이 군사 강국이 된다면 한국과 중국의 한판 전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宿命的) 업보(業報)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독립국이 되었으면 민족혼을 말살한 식민사학자 이병도를 즉각 처단하고 한국인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킬 목적으로 거짓 가짜로 만든 망국적 치욕의 국사는 당연히 폐기처분하고 정통적 국사로 개편해야 마땅한 것을 얼빠진 정부당국자는 7천만 국민을 기만하며, 책무를 기피함으로서 해방과 더불어 이미 62년 전에 동북공정이 잉태했던 것입니다.

중국은 현재 모든 국사교과서에 한반도 북쪽을 다스린 한4군을 지도로 표시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한반도 남쪽 김해의 가야 지역에 임나본부설(任那本府設)을 지금 일본의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임나본부설과 소위 중국 동북공정과 중국의 국사는 “한국의 국사를 근거”로 “중국의 국사교과서가 편찬 ”돼 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본과 중국은 “현행 한국의 국사를 근거”로 삼아서 편집된 “국사교과서”에 대해 무슨 증서로 항변할 수 있겠는가?

중국의 역사와 소위 동북공정은 중국의 고대 사료(史料)의 고증에 증거한 주장이 아니고, 일본과 중국은 자국의 역사를 임의대로 변조하고, 한국의 국사편찬위회에서 편찬된 망국적 현행 국사 내용에 준거하여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머지 않는 장래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간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의 우리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분쟁 등의 난제(難題)가 한.중.일 3국간에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어 한반도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과 같이 전운이 감돌게 될 것이다.

역사는 민족정신을 형성하고 국사는 국운을 결정하므로 망국적 역사가 망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며 국력의 흥망성쇠에 따라 언제든지 영토는 바뀌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국사편찬위회에서 편찬된 현행 국사를 근거”로 중국의 국사가 편찬돼 있는 실정에서 어찌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중국 동북공정을 무력화시키고, 한국과 중국이 전쟁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오직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철폐하고 중국에 빼앗긴 3황5제의 역사를 복원하여 바른 국사를 정립하는 방책뿐입니다.

중국과 일본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이 [1] 인류의 부모국이며, [2] 인류의 4대문명의 원천국이며, [3] 세계의 인류를 구제한 종교의 원천국]의 역사적 진실을 다 알고 있으나 오직 얼빠진 한국인들만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 뉴스타운의 연재는 [인류 부모국의 우리역사]를 고증서로 명확히 입증하고, 현행 국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근본적으로 뒤틀린 현행 국사]를 확인하고, 정통적 국사로 정립하는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본 고증(考證)은 세계사적, 종교적, 일대사건입니다. 한국의 역사가 바뀌게 되면 세계사가 바꾸게 될 것이며, 세계 각국에서 인류의 부모를 올바로 깨닫고, 종교적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며, 세계의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일을 이루어 종교로 인한 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탄이 될 것이다.

다음 주의 연재 [한국사 진단 제7편]은
[한국은 인류의 부모국이다] 가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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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역 2007-11-07 11:55:46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들의 대답을 고대합니다.

상기 본문 중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 누락되어
독자의견란에 보충해서 올립니다.

[올바른 역사 본문 중]

▶ [한편 정권을 빼앗긴 준왕은
뱃길로 서해안 일대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한왕(韓王)이 되었다.] 라고 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마지막 준왕(準王)이
위만에게 고조선국 땅을 빼앗기고
뱃길로 서해안 일대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한(韓)나라를 건국하고
한(韓)나라 왕(王)이 되었다. 는 뜻입니다.

위만은 정통 조선왕이 아니고,
한(韓)나라를 건국한 준왕(準王)이
고조선을 계승한 정통적 우리나라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들은
연나라에서 망명해온 위만은 준왕의 은혜를 배반하고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을 해방 62년을 맞은 지금까지 고조선을 계승한 우리조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작태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준왕이 망명해간 그곳은 어느 곳이란 말인가?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위원들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들은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국을 배신했던 민족반역자 이병도를
추종하는 세력들도 꼭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7-11-07 12:45:09
전 역사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몇 몇 재야역사학자들은 진보(좌파)계열이 집권을 하면, 역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 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엔 진보계일이 없습니다.

있다면 친북좌파이면서,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있고, 그 가면에 속고 있는 것 입니다.

광주폭동등 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당시 방송과 여론 그리고 국민들은 별다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좌파와 손 잡으면서, 문제가 생긴 것 입니다.

제가 역사 관련 기사에 왜 이런 글을 쓰느냐면, 진보(친북좌파)가 진짜 진보 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에 찍소리 못 하는 것 이고, 그게 진보 계열이 집권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국사편찬위원회등이 제역활을 못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국민들과 역사학자들은 깨어나야 합니다.

즉 대한민국에 제대로된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집권을 해야, 역사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들이 해결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병역선생님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지식(?)이 부족하여, 궁금해도 질문을 하지 못 하지만, 계속 연제를 하신다고 하시니, 공부(?)를 하다고, 궁금한 것 이 있으면, 질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학종 2007-11-10 05:15:01
항상 선생닝 건강 하시고 즐거움이 충만 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 교육 기본은 육 예.악.사.어.서.수.

한얼원 2007-11-10 12:38:10
필명 음님, 최학종님
두분의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큰 용기가 솟아나
다시 두 주먹을 웅켜 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얼원 2007-11-10 13:36:50
애국애족 회원 여러분...!!!
나라를 망치는 세력이 각처에 기생하며 활개치고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도 보지도 못하는
농아, 맹아와 같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들과,
처음부터 불구자로 잘못 태어난 동북아는

1, 국사편찬위원회, 해체하라
2, 동북아역사재단, 해체하라

정곡을 찌른 단 두 편의 예리한 칼날을 맞고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곧 [꺼꾸러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 연재를 읽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고는
망국적 치욕의 국사를 개편할 수 없습니다.

애국애족 회원여러분...!!!
각처에 기생하며, 나라를 망치는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서.
아래의 글을 복사해서 각 싸이트 게시판 등에 널리 퍼뜨려 주세여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합니다.

아래의 글을 복사해서 퍼뜨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

▶ 나라를 망치는 세력이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해체하라
▶ 국사편찬윈원회,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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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local.asp?P_Index=5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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