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귀국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이 만 56년간의 볼모생활을 끝내고 1963년 1월 22일 일본 정부가 제공한 JAL전세기편으로 김포 공항에 도착, 꿈에 그리던 조국의 땅에 병구를 이끌고 감격의 귀국을 하였다.
영친왕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조국의 향기로운 공기를 깊이 들어 마시며 중얼거리듯 조용히 혼자말로 “서늘한 바람.... 내 땅이구나”는 한 마디뿐 벅찬 그의 감회를 표현하기에는 조국을 잃은 볼모생활에서 얻은 오랜 신병에 시달려 온 그의 심신은 너무도 노쇠하였다.
영친왕 이 은은 1897년 7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3남으로 탄생하였다. 순빈 엄비의 태생으로 27대 순종에게는 후사가 없었으므로 28대 임금이 되기위하여 11세 때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침략의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일본은 통감부를 설치하고 합병의 수단을 강구하던 끝에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된 그해 12월 일본 유학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로 끌고가 그들의 침략을 위한 볼모로 삼았다.
유달리 영특하였던 어린 11세의 소년 영친왕은 자신이 볼모로 끌려가는 줄도 모르고 “아바마마, 옥체 보강을 축수하옵나이다”하면서 고종에게 작별 인사를 올려 궁중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일제 침략의 원흉 이등에게 끌려 일본군함 만주환으로 일본에 도착한 영친왕은 동경 마포조거판에 있는 좌좌목 후작의 보호 속에서 외로운 볼모생활을 시작하였다.
일본 황족학교인 학습원과 육군 유년학교를 거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된 그는 일본 육군의 중장까지 진급하였으나 이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한국민의 반발을 제압하기 위한 식민지 정책에 의한 허울일 뿐 모든 행동은 제약을 받아야 했다.
일본 황족의 대우를 받던 그는 23세 때 (1920년 4월)일본 황족인 지금의 방자여사와(62세)와 정략적인 강제 결혼을 하였으나 부인의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결혼 생활은 원만하고 지극히 행복하였다.
슬하에 2남을 두었으나 장남 진은 생후 수개월만인 1921년 영친왕 부부가 순종에게 성혼의 폐백을 드리기 위하여 귀국하였을 때 독감으로 죽었으며 2남 구만이 장성, 미국에 유학하여 매사추세스 공과대학을 졸업, 건축기사가 되어 미국인 줄리아와 결혼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귀국한 것이다.
이날 병고에 지친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아내와 아들 부부의 부축으로 60여년만에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영친왕은 대기하였던 앰뷸런스에 실려 그의 지병인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성모병원으로 직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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