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라, 목젖께 그닐그닐 맺히는 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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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목젖께 그닐그닐 맺히는 설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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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75>천승세 “매미”-박종권 판소리

 
   
  ^^^▲ 매미 울음소리가 그리워지는 계절
ⓒ 매미/우리꽃 자생화^^^
 
 

내 올 여름 불솥더위 숫구멍 위에 얹고 견딜
그날까지만 살 수 있다면
너는 울고, 나는 듣고
우리 또 청청하게 만날 것이다
울울청산 한 덩이 들여마셔라
큰 하늘 한 점도 걸러내거라
목젖께 그닐그닐 맺히는 설움도
카악 토악질로 뱉아내거라

이런 소리 있어야 한다
이런 북장단 있어야 세상이다

울어라, 매미여! 판소리 뽑으라
심심하고 무름해서 감질나는 한평생
삼라만상 어귀찬 목숨들 나무 없으면 끝장이다

매달려라, 오르거라 끝가지까지
희번득 희번득 요리조리 날며
갈비짝 찢어지게 불러라, 여름을!

날이 점점 무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이마와 등에서는 노독 같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진초록 불길을 내뿜으며 마구 타오르던 나뭇잎도, 물에 잠겨 겨우 이마만 내밀고 있는 모들도 무더위에 숨이 막히는지 헉헉거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립니다.

지금, 그 우물가에서는 빠알간 앵두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겠지요. 그리고 우물가를 지나치는 길손들의 입에 침이 고이게 하겠지요.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과수원, 새파란 탱자가 주렁주렁 매달린 그 과수원에서는 살구와 앵두도 노랗게 익어가고 있겠지요.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어느새 하얀 거품을 입에 물고 백사장으로 달겨드는 파도가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어디선가 깡마른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우렁찬 매미소리도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매미소리를 북장단으로 삼아 판소리 한가락도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 중에는 봉황새~ 만수 문전에 풍년새~
산고곡심 무인처~ 춘림비조 뭇새들이~
농춘화답에 짝을 지어~ 쌍거래 날아든다~
말 잘허는 앵무새~ 춤 잘 추는 학 두루미~
솟댕쑥국, 앵매기 뚜리루~ 대처의 비우 소로기~

어디선가 박종권 시인의 새타령이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젊은 날,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시인 박종권. 그와 더불어 금새 이 땅의 새란 새들이 모두 날아들어 그 가락에 맞추어 훨훨 춤을 출 것만 같습니다. 이 산으로 가면~ 쑥꾹~ 쑥꾹~ 쑥쑤꾹 쑤꾹~ 저 산으로 가면~ 뻐꾹~ 뻐꾹~ 뻑뻐꾹 뻐꾹~

"내 올 여름 불솥더위 숫구멍 위에 얹고 견딜/그날까지만 살 수 있다면/너는 울고, 나는 듣고" 그렇게 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우리 또 청청하게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울울청산 한 덩이"도 들이마시고 "큰 하늘 한 점도 걸러내"고 "목젖께 그닐그닐 맺히는 설움"마저도 "카악 토악질로 뱉아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소리 있어야" 하고 "이런 북장단 있어야 세상"입니다. "울어라, 매미여! 판소리 뽑으라/심심하고 무름해서 감질나는 한평생/삼라만상 어귀찬 목숨들 나무 없으면 끝장이다//매달려라, 오르거라 끝가지까지/희번득 희번득 요리조리 날며/갈비짝 찢어지게 불러라, 여름을!"

하지만 시인은 가고 없습니다. 이 세상의 온갖 설움 토악질로 카악 뱉어내던 박종권 시인은 경기도 어느 돌산 중턱에 쓸쓸하게 누워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그 돌산 숲속에서도 참매미가 요란하게 울 것입니다. 그 중 유난히 소리가 우렁찬 녀석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녀석이 내는 소리가 박종권 시인의 혼백이 내는 소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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