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강정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비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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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강정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비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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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좌익사상에 대한 분노

 
   
  ^^^▲ 한홍구 교수^^^  
 

한홍구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공회신학대의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박노자, 홍세화와 함께 삼대트로이카를 구성하고 강정구의 천막강의를 직접지원하며 강정구 구하기에 힘쓰고 있다.

박노자의 한국의 병영문화 비판과 뜻을 함께 하는 한편, 성공회신학대에 교과목으로 군대와 사회라는 교과목을 설치하여 병영문화 개혁론을 주창하고 있다.

1. 역사가의 수평

역사를 공부하면 역사에 대한 눈이 떠진다. 현재부터 과거까지의 역사를 더듬어낼 수 있는 눈은 영웅의 일어섬과 무너짐, 국가의 일어섬과 무너짐 속에 담겨져 있는 교훈과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이 떠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영웅의 무너짐으로 인해 한 시대가 어떤 종말을 가져 왔는지와 한 가정의 무너짐이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하여 깊이 살펴지는 눈이 떠진다. 이를 혜안이라고 부른다. 정통한 역사학자의 눈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는 한 눈에 꿰어 뚫을 수 있는 혜안이 있다.

이는 일어섬과 무너짐에 대한 관찰과 성찰로 인해 논리가 생겼음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학자로서의 논리 체계 즉 학문의 체계를 세웠다는 평을 받게 되어 있다.

역사는 단 하나의 사건을 말하지만 단 하나에 불과한 역사는 여러줄기의 문화로 전개된다. 이는 하나의 사건에도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추론하기에 가능한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건 속에 들어 있는 주인공과 주인공을 중심으로 얼켜있는 여러가지의 사실들은 여러갈래의 문화를 잉태하게 되어 있다.

주인공이 어떤 문화를 즐겼는지 어떤 집에서 살았으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그리고 그의 말이 어떤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말을 해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러갈래로 나오게 되어 있다. 역사가는 이들을 모아 원래의 한 줄기로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사건은 한 시대의 역사에서 나타난 작은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확장하면 국가의 문제가 되나 축소하면 가문의 문제이며 더 축소하면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웅도 한 사람일 뿐이다.

역사가란 불안한 미래와 싸우는 사람이다. 현실에서 과거를 살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해내고 진단되어진 현실의 문제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예측해낸다. 그 근거는 과거의 역사들이며 그중에 현실과 가장 가까운 역사가 근거로 제시된다.

통상 몇 개의 예가 제시되는데 제시되는 예는 결과까지 가는 동안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일어난 중대한 변수들은 어떤 것이었는지가 관찰되어지고 연구되어진다. 이렇게 연구가 되어진 연구물이 근거로 제시되어 현실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타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역사가란 미래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상적인 안경을 착용하고 역사를 보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굴절되어 있는 시각으로 사건을 보면 역시 굴절되어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이 나오게 되어 있다. 역사가의 불안은 현실을 이대로 끌고 갈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다.

진보주의 역사가는 진보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고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 있다.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 있고 자유민주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결국에 대한 불안이 있다. 따라서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평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수평감각이 있는 역사가 만이 역사를 써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민주화운동자들은 민주화운동의 계승을 위해 민주화 운동사를 쓴다. 공산주의 역사가는 공산주의 사상 전파를 위해 역사를 쓴다. 종교가들은 해당 종교의 전파를 위해 해당종교의 역사를 쓴다.

역사서란 교과서적이 되어야 하고 교과서적인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가는 수평이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의 사관과 같은 우직함과 오직 후대를 위해 사실을 기록한다는 사명감에서 온 수평이다. 현재의 역사는 미래에 가서 그 시대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과거의 거울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수평감각을 잃은 역사가의 글에서는 착시현상이 보인다. 기술된 내용이 어떤 운동이나 사상전파의 목적을 가졌을 경우 편향되어 있는 시각이 드러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 수평감 상실시대를 만드는 좌파 역사가와 학자들

한국에서 소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역사가치고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는 수평이 있는 역사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에는 4.19 운동에 참여했던 주역들이 있으며 그 주역들은 386세대의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역사가들이 극히 좌로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의 논리로 가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로서의 수평심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안병직 교수를 위시하여 최문형 교수(한양대 명예교수, 역사학), 유영익 교수(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한국사), 신복룡 교수(건대 교수, 정치학), 강규형 교수(명지대 교수, 현대학) 는 한국 근.현대사가 좌파들의 운동사로 요약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수평감각을 잃은 역사가들의 교과서 집필로 인해 오히려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대목인 갑오경장과 러시아와 일본의 침략 배경에 대한 기록은 약화되었거나 취급되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영익 교수는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 차용의 오류를 지적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어떠한 공사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을 인용함으로 동학혁명을 반봉건 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커다란 오류로서 믿을 수 없는 사료임을 지적했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 [동학십이개조폐정개혁안]을 집강소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다는 이른바 [12개조 폐정개혁안]은 1940년에 출판된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에만 실려 있는 사료이다. 오지영이란 인물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천도교계의 아마추어 역사가이자 역사 소설가이다.

그는 한국에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졌던 1938년에 "역사소설 동학사"를 탈고했는데, 그의 소설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곧 사료로 체택할 수 있는 사료를 체택하여 고교 교과서로 출판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내용은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에 실려 있다.

민주화운동의 전력이 있는 역사가가 민주화운동의 결말에 대해 불안해하며 민주화 운동의 항거정신을 애국정신으로 포장하여 기술하면, 현실과 후대에서는 정권에 대한 항거의 논리를 갖게 된다. 민주화 운동자들의 안목에서는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나,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생업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가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시위현장에서 난무하는 항거의 독설이며 정부의 권위를 박살내려는 폭력이며 국론이 무너지고 있는 불안을 야기시킨다. 교통은 통제되고 사상자가 발생하고 이런 내용들이 뉴스화 될 때마다 말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괴롭고 아프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민주화 운동자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직장이 보장되고 정부의 지원금이 보장되는 등의 유익을 얻는지 모르나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창한 미명하에 장사를 하는 이들은 손님을 놓치고, 택시 운전사는 힘든 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노동운동의 파업도, 민주화 운동도 국민을 인질로 잡고 벌이는 시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길거리를 막는다.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해 정부에 대한 폭력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올리기 위해 무엇이든 다 한다.

문제는 또 있다. 파업과 민주화 운동을 업으로 삼고 사는 자들의 과시욕과 자리보존 욕구에 의하여 더욱 폭력적이고 더 큰 규모로 확장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시민은 항상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어디에 하소연을 할 데도 없이 고스란히 매를 맞는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위와 파업은 경제활동을 막는다.

노조의 년중 행사로 인해 직장이 있는 자의 더 달라는 요구와 직장이 없는 자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교는 없는 자의 무력감을 유발하고 있다. 현재 무력감으로 인해 그냥 놀고 있는 대학이상 학력자만 100만을 넘었다는 통계발표까지 나왔다.

국가적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의 파업으로 인해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어쩔 수 없는 손해로 인해 이중고를 당한다.

손해를 감수하며 죽을 힘을 다해 외국 수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현대자동차는 노동파업으로 인해 러시아 자동차 수출국 1위의 자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유럽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힘을 다해 정상까지 올려 놓은 해외의 현대자동차 시장과 판매상들은 어이없는 현대자동차의 파업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노동운동으로 인해 국가의 장래까지 말아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판매전략은 내수는 고가, 수출은 저가 전략으로 판매전략을 집행해왔다. 제품 개발에 소용되어진 일체의 연구비와 마진을 더해 국내에서 고가로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수출단가를 낮춰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구조였다.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고가판매전략을 내놓기까지 국민은 내국에서 수출품의 판매손실까지 보존해 주는 가격으로 대기업의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해야 했으며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수출우선정책으로 인한 내국인의 손실이었다. 이후 삼성은 세계시장에 고가전략을 내어 놓았고 이를 통해 내수와 수출상품의 연구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경우 아직도 해외시장에서 저가의 경쟁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내수를 통해 연구비를 조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노조가 파업을 통해 임금을 올리게되면 올리는 만큼 원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높아진 원가는 내수시장에 반영되어 내국인에게 상대적인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태에서 현대의 정책은 내국민에게 수혈을 강요하는 한편 가격 경쟁력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일본에서 수출 전략 차원에서 한국으로 수입되고 있는 저가형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가격 경쟁면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정도까지 낮추어져 있다.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경영진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축적되어 있는 기술력과 완전 자동화 시스템 으로 인해 인건비를 낮추어 낮춰진 만큼 내국인에게 그 이익을 돌려주려던 현대의 경영진의 자신감은 강성노조의 등쌀에 밀려 내국민에게 돌려줄 몫을 노조에게 주었다.

이는 결국 내국인의 불신을 초래했고 국산품애용이라는 가치관마저 실종되어 있는 판국에 애국심을 충동하여 국산품을 팔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영자의 고민은 더 깊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노조는 강성파업으로 유도하고 있어 이제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국민들에 의하여 한국형노조운동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3.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민주화 운동

파업으로 연결되는 노동운동은 이미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한 요구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전국규모화되어 있는 민노총이나 한노총의 동반파업 혹은 연결파업으로 이어지는 파업행위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파업을 통한 투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시위를 하며 시위 중에는 어떤 단체라도 받아 들여 함께 시위해 왔다.

민주화 운동자들은 노동운동이야말로 민주화를 측정하는 바로메타로서 노동운동이 보장되어야 민주국가라는 논리를 세우며 슬며시 이들 노동운동에 합세하여 반미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시위를 주도하며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는 동안에 죄없는 시민은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 중에 민주화 운동과 전혀 상관이 없는 국민의 국민성은 어떠한가.

연합뉴스 1월 14일자 보도에는 “아들 살려준 은혜 35년만에 갚습니다”라는 제하의 가슴 훈훈한 감동의 보도가 전해졌다. 부산연합뉴스의 조성미 기자에 의하면, 한 70대 할머니가 지난 11일 오전 부산대학교 병원 원장실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그리고 묵혀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을 붉히며 병원장에게 사죄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1972년 부산 중구 영주동에서 식당일을 하던 최씨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간 어느 겨울날 한살바기 아들이 얼굴이 시퍼레져서 숨도 가누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를 들쳐업고 달려간 부산대 병원 응급실에서 급성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 달 간의 입원치료 끝에 완치가 됐지만 그의 마음은 다시 걱정으로 가득 찼다.

남편 일이 여의치 않아 최씨가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던 처지에 당시 큰 돈이었던 치료비 20만원을 내기가 너무나 버거웠기 때문. 순간적으로 '독한' 마음을 품은 최씨는 아이를 등에 업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왔고 이후로 35년 동안 마음에 커다란 짐을 안고 살아왔다.

그 때 죽을 고비를 넘긴 아들이 장성하고 집안 형편도 나아지자 더 늦기 전에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한 최 할머니는 11일 아침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대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병원 관계자들 앞에서 감사함과 죄스러움에 눈물을 훔치던 그가 내민 꼬깃꼬깃한 봉투 속에는 35만원이 들어있었다. 당시 내지 못한 치료비 20만원에 조금의 성의를 보탠 것.

김동헌 병원장은 할머니의 손을 맞잡으며 흔쾌히 봉투를 받았고 35년 세월을 지나 돌아온 치료비는 병원발전 후원금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기로 했다는 보도이다.

자식의 생명을 구해준 병원과 의사에 대하여 고마움과 병원비를 내지 못하고 도망을 쳐야 했던 슬픈 사연은 35년 동안의 마음의 짐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국민은 고마움을 알고 선행에 대하여 칭찬을 할 줄 아는 국민이다. 남에게 손해를 끼친 일에 대하여는 평생 마음의 짐으로 생각하며 죽기 전에 반드시 갚아야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국민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가들과 파업을 일삼고 있는 노동운동을 지휘하는 자들은 다르다. 이들은 가련한 국민들의 애달픔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무식하고 무지한 가치가 없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이들이 죄없는 국민을 담보로 잡고 폭력시위를 벌일 수 있는 근거는 항쟁의 논리에서 나왔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외치고 있는 투쟁이니 항거이니 쟁취 등의 구호는 특정대상과 싸워서 빼앗기 위한 것이다. 상식으로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길을 막으며 혹은 경찰과 대치하여 공권력과 폭력으로 맞서는 행위는 기본질서를 도륙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개인의 폭력은 폭력처벌행위로 처벌한다. 기본질서에 반하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체가 공권력에 대항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철저히 관대하다. 왜 그러한가? 공권력(정부)이 봐주고 있다거나 혹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파업과 민주화 운동자들의 폭동을 두려워 하는 것이던지 양자간에 답이 있다.

4. 민주화 운동의 정체성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과 폭력시위에는 북한의 대남공작에 포섭된 간첩 및 주체사상자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사실 노사간의 갈등은 하나이다. 더 달라는 노조의 요구와 사정을 봐 달라는 사측의 입장이다.

민주화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혼자서만 해먹지 말고 골고루 해 먹자는 요구이다. 여기에 반미가 들어갈 이유가 없고 친일파제거니 국보법폐지니 이런 류의 주장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원칙은 그러하나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구호에는 어김없이 반미와 친일파제거, 국보법폐지, 평화가 주창되어왔다. 그 원인은 주사파 운동의 핵심멤버였던 강길모의 전향으로 그 이유가 설명되었다. 여기에 386 간첩단 사건과 남, 북, 해외 3자연대 통일운동단체인 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의 고문이었던 강순정의 구속으로 민주화 운동의 정체가 밝혀졌다.

문화일보 1월 10일자 보도(2007년)에는 “통일운동 빙자해 간첩 활동 강순정 前범민련 간부 구속” 사건이 보도되었다. 내용은 통일운동을 위장,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전 부의장 강순정(76)씨가 9일 구속기소됐다는 내용이다.

일심회와 강씨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북한이 과거와 달리 간첩 을 통해 국내외 정보를 수집 보고토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친북 성향의 재야단체들을 배후 조종해 국내 정치개입, 반미 운동 강 화, 연방제 선전활동 강화 등 국내 정치 사회 문제에 직접 개입 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주목된다. 또 간첩 침투와 활동에 있어 해외교포나 해외체류 인사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지는 대목이라는 강조점을 두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정병하 부장검사)는 2001년 11월부터 지난 해 3월까지 128차례에 걸쳐 북한 공작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재 야단체 내부 동향, 2002년 대선 및 2004년 총선 동향 등 국가기 밀 16건을 포함해 133종 329점의 문건 등을 북측에 전달한 강씨 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강씨는 국방예산 규모가 담긴 문건과 미국의 군사전략 및 주한미군 철수 문건 등 을 북측에 전달했다. 강씨가 전달한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고 사 진화보는 북한 노동신문에 4차례 게재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북한은 강씨에게 이적단체인 범민련보다 통일연대 등을 활용하고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약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선전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령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또 ▲2002년 대선과 관련, 보수언 론 반대시위를 하고 ▲재야인사 동향을 파악, 국보법으로 구속하거나 여성을 알몸으로 조사하는 사례가 있다면 인터넷신문을 이용해 여론화하고 ▲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을 하고 ▲8•15 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라는 등 구체적 인 지령을 내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

이 사건에 대하여 법민련 남측본부는 즉각적인 기자회견을 내고 석방을 촉구했다. 뉴시스 1월 11일자 보도를 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은 11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첩혐의로 기소된 강순정 선생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검찰이 지난 9일 강순정 선생을 국가기밀 유포 등 간첩혐의로 기소하고 이를 언론에 발표했다"며 "그러나 강 선생에 대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는 법원 판례나 객관적 사실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밀의 개념과 그 판단기준에 대한 법원 판례는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물건.지식에 속하지 않은 것,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검찰에서 문제삼은 자료들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조선노동당 창건55돌 경축 비디오테이프 배포'에 대해 "해당 테이프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방북해서 관람했고, 이미 TV를 통해 많이 소개된 것"이라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민련의 아버지격인 남로당의 원흉인 박헌영이나 남한에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몽양 여운형도 학자였다. 학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 보았으나 공산주의 안경을 쓰고 굴절된 사상을 말하며 현실화시키려고 했다. 이들은 이것이 진리이며 공산주의를 실현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줄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1917년 레닌에 의해 2월 혁명과 10월 볼세비키 혁명으로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게 되었으나 1980년 후반부터 공산주의는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1991년 고르바초프의 공산주의포기와 1992년 러시아연방독립국가 선언으로 공산주의는 소멸하고 말았다.

만약 박헌영과 여운형이 살아 있어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현재의 모습과 핵실험까지간 북한의 공산주의 정체를 보았다면 자신들이 외쳤던 이론에 대해 반성했을까? 대한민국 안에서의 공산주의는 6.25 동란과 함께 사라져야 했을 악이다.

한홍구는 역사를 보는 시각을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고 했다. 평화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붙잡힌 강씨에게 내려졌던 지령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북한은 강씨에게 이적단체인 범민련보다 통일연대 등을 활용하고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약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선전하도록 하는 방안으로 선회할 것을 지령했다”는 내용과 일치된다.

연방제 통일론이니 하는 말은 김대중 시절에 나왔었던 이야기이다. 김대중은 드러내놓고 연방제 통일론을 말했었다. 북한이 거부 반응이 많은 연방제 시행 등의 구호를 버리고 통일연대 등과 연합하여 효력이 있는 다른 구호로 바꿀 것을 지령하고 난 후에 남한에는 유난히 평화라는 구호가 판을 치고 있다.

한홍구도 평화를 말한다. 그리고 병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홍구의 역사적 시각에 대한 주문에 의하면 지금까지 해 왔던 역사공부를 다 버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하는 이단교주의 말과 흡사하다. 과연 그래야 한홍구의 역사책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의 단순한 사건을 연구하여 기술하는 역사학자의 말치고는 광오하다.

그것은 자신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눈으로 봐야 한다는 말일게다. 다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구원한 구원자가 쓴 책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거부감없이 봐야 한다는 말일게다.

5.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3대 요소가 있다. 첫째는 햇볕정책이요 다음은 노조요 다음은 민주화 운동이다. 하나의 면면을 따지고 본다면 위의 3대 요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각각의 개체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따져보면 다른 면모가 나온다. 속을 살피면 하나가 다 연결이 되어 있다. 그것은 주체사상이다.

햇볕정책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에서 나왔다. 노조운동은 노동자 중심에서 나왔다. 민주화 운동은 친북좌파 교수들과 전교조가 중심이 되어 사회각층에서 나타난다. 특히 386간첩단 사건에서 보여주듯 민노당도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노조는 하부조직으로 친북좌파들의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먼저는 민주국가의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운동이란 무엇을 하자는 운동인지 그 정체를 규명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화 운동이 한국 역사에 어떤 바람직한 영향을 끼쳐 왔는가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민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대하여 살펴져야 한다. 이어서 한국의 노동파업과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으며 협력하는 이유의 근본은 어디에서 출처되었는지를 고찰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운동이 한국인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살펴져야 한다.

한국의 경제는 IMF 시대보다 더 환경이 열악한 구조로 떨어지고 있다. 먼저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공무원 외에 전문직이 아니고는 정년까지 보장 받는 일자리가 없다는 문제이다. 이로 인하여 서민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있다.

소위 민주화 운동전력자라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정권을 잡은 이후 서민의 삶을 피폐로 이어지고 있으며 두 정권이 발행한 국채의 부담으로 인해 국민은 없는 일자리에서 가도한 세금부담으로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통해 거둘 수 없는 세금을 유류세를 통해 거두고 있다. 유류세를 통해 거출하는 세금은 그대로 한국 경제발전의 동력을 막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숨통이 터질 기미가 없다는데 질식한다. 한국은 지금 위기의 시점이며 한계의 마지노선에 도달되어 있다.

학자의 건강한 양심과 학자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은 국가와 민족의 빛나는 장래를 위해 쓰여져야만 한다. 그것은 학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6.25 동란 이후 지금까지 골수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유민주국가에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공산주의의 정체를 민주운동이라는 애국 애족의 표현으로 둔갑시켰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은 헌법을 악용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발판이며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 발판과 무대를 통하여 끊임없는 북한의 김일성의 공작은 2차적 공산주의 이상론자들을 만들어 냈다.

1차적 공산주의자는 공작원(간첩)을 통해 김일성의 지령을 직접 받았다. 1차적 공산주의자는 마냥 공산주의와 김일성을 흠모해서 공산주의와 김일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이들 중에 대다수는 북한에 가족을 둔 피난민이거나 혹은 월북한 월북자의 가족들이었다. 인질로 잡혀 있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인물을 포섭하여 교육시키는 동안에 자기 최면에 빠졌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인 정동영, 김근태, 노무현의 공통점은 좌파라는 것과 직계 가족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김근태에 관하여 월간조선은 2004년 3월호에서 과거 안기부에서 작성한 ‘김근태 신원 및 배후 사상관계’ 파일을 근거로 “김 장관의 형 3명이 모두 월북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은 “그의 큰형은 서울대 미대출신으로 6•25 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월북했다. 둘째 형 역시 월북 후 평성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은 의용군으로 월북해 통일선전부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고 보도했다.

6. 지식인의 책임

지식인은 자신이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그 지식으로 인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른 지식을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하고 바른 역사를 남겨주어야 한다는 숭고한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다해야 비로소 지식인은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가 있게 되는데 그 역사란 바로 자식세대를 말한다.

자신이 죽고 나서야 역사가 평해줄 것이라는 말은 예언가가 아닌 이상 망언에 불과하다. 어떤 역사도 10년 혹은 길어봐야 30년 주기로 돌아오는 한 세대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아버지의 세대에서 추구되었던 모든 가치는 아들의 눈을 피해 손자의 시대로 직접 넘어갈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우리 아버지의 시대에서 가장 가치가 컸던 이슈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가난과의 사투였으며 내집 문패를 위한 사투였다. 동시에 그 시대의 지식인(대학생 이상)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이슈는 유신철폐와 군사독재정권타도였다.

이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한다면, 내 아버지의 목표와 이들 민주화 운동가들의 목표는 크게 엇갈린다. 내 아버지는 운명에 순종하여 가난도 팔자려니 하고 참고 인내하며 소처럼 일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최루탄을 마시면서 데모대의 행렬 끄트머리에서 눈치를 보다가 군인과 경찰이 덮치면 골목길 요리조리로 피해 달아났다.

밤이 어두우면 슬금슬금 무교동에 모여서 못 마시는 막걸리를 놓고 독재정권이 어떠니 전태일의사가 어떠니, 김대중과 김영삼 둘 중의 한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야말로 집 걱정 없고 먹고 사는 것 걱정하지 않고 맑고 밝고 잘사는 세상이 오는 줄 알았었다.

그리하여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아침이슬을 부르다가 “후리가리다” 하는 소리와 함께 반쯤 꺽어 신고 있던 신발을 똑바로 신고는 꽁지가 빠지게 내뺐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그짓을 반복했다. 그래도 그 때에는 일자리가 넘쳤고 군대에 가서 말뚝을 박는다면 인생의 낙오자인 것처럼 여겨졌다. 당시 공무원은 안정된 직장이라는 인식 외에 가치가 없는 직업의 하나였다.

그후 30년이 지난 지금, 김영삼씨도 김대중씨도 대통령을 했다. 만약에 이분들이 당시에 이야기를 했던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했던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대한민국은 대학교육까지도 의무교육이 되어 있어야 하며 집이 없는 국민은 한 가정도 없어야 한다. 직장은 남아 돌아가야 하고 북한은 이미 흡수통일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 대통령이 삼대를 지나고 있는 동안에 삼성과 현대 그리고 엘지는 가장 첨단이라고 하는 반도체 부분을 석권한 반면 대한민국은 북한에 조공을 바치는 형태로 몰락하고 말았다. 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출산률과 이혼률 그리고 자살률에서 세계 최고 국가가 되어 있다. 이것이 민주화 운동의 결과인가? 똑같이 출발한 경제는 세계 1위가 되었고 똑같이 출발한 민주화 운동의 결과는 지금 뭐란 말인가.

결국 군사독재타도와 유신정권타도를 외쳤던 민주화 운동이란 대통령병에 든 김영삼씨와 김대중씨의 욕심에 불과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었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불과 30년도 내다 보지 못하고 지식적 자아도취에 빠져 들고 뛰었던 반골들이었다는 결론이다.

이제 우리 시대에 들고 뛰며 이루려고 했던 민주화 운동의 정체가 김씨들의 정권야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의 민주화 운동이란 가치가 없다. 여기에서 더 나갈 이유도 없어졌는데 민주화 운동을 노래 부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야 말로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이미 3명의 민주화 대통령들의 치적의 결과로 이들 민주화 운동을 거론했던 인사들의 민주화란 자신들이 대통령을 해먹기 위한 수단이며 방편일뿐 국가와 민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어졌다. 그리고 역사는 공산주의를 심판했다.

결과가 너무도 선명하게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홍구는 민주화 운동은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가야 하는 과제로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인가? 그 끝은, 그 끝은 결국 김일성이다. 한홍구의 책에 의해서 6.25동란의 원흉인 김일성은 민족의 거대한 태양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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