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군사재판 재심 '공소기각'은 또 하나의 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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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군사재판 재심 '공소기각'은 또 하나의 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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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의 판결을 재판했던 현재의 제주법원 판사들은 내일쯤에 다시 후배들에게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니, 정권에 따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판결이라면, 이런 판사들의 법조문과 조폭들의 사시미칼은 다를 게 무엇이던가?

2019년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기각은 법원이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이 판결로 4.3재판의 재심을 청구한 수형인들은 '70년 만에 무죄를 인정받아 빨갱이의 오명을 벗게 됐다'고 밝혔다.

4.3수형자들의 재심 판결은 한마디로 사법농단에 다름 아니다. 확정된 판결을 다시 재판하는 재심과 헌법에 규정된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충돌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는 재심의 사유가 있을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재심의 사유는 엄격하고 확증적이어야 한다.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원판결에서 사용된 증거가 명백히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다시 발견하여야 한다. 새로운 증거는 확정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고도로 인정될 수 있는 증거여야 했다.

그러나 4.3수형자 재심에는 원판결의 증거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나 새롭게 발견된 증거가 전혀 없었다. 다만 청구자들의 억울하다는, 그러나 증빙할 수 없는 주장과, 당시 재판 절차가 잘못되었다거나, 당시 고문을 당했다거나 '4.3은 학살'이라는 감상만이 나부끼고 있었다.

제주법원의 판사들은 이런 감상에 젖은 채 시류에 영합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판결을 내렸다. 증거나 법리를 검토하는 냉철한 이성은 엿 바꿔 먹고 없었다.

이번 재심 재판에서 한줄기 빛도 있었다. 그동안 4.3좌파단체들과 일부 수형인들은 군사재판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군사재판이 없었다면 재심을 청구할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원재판이 없었다면 재심재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군사재판이 없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군사재판의 증거들을 찾아내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4.3당시 재판을 받았던 서류들은 전부 소실되었고 '수형인명부'만이 4.3재판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물이었다. 그래서 수형인명부는 좌익들에게 진위 여부가 공격을 받곤 했지만, 재판부는 재심 재판의 필요상 수형인명부를 정당한 명부로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재심청구 측에 의해 4.3재판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군집행지휘서'가 발견되었다. 군집행지휘서는 4.3당시 폭동 진압에 나섰던 제2연대가 대구형무소장에게 수형자들의 형 집행을 요청하는 공문서였다.

수형인명부에는 4.3폭동에 참여했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형을 받았던 자들의 성명, 직업, 연령, 본적, 형량, 복역형무소 등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다가 폭도들의 재판을 담당했던 2연대에서 형무소에 형 집행을 요청하는 지휘서까지 발견되었다. 수형인명부와 군지휘집행서는 4.3폭동 당시의 진실을 밝혀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이 문서들은 4.3 당시 폭도들의 실체를 밝혀주는 문서인 동시에 4.3평화공원에 봉안되어 있는 가짜희생자들을 가려주는 데에도 아주 요긴한 문서가 될 수 있다.

제주법원의 재판부가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공소사실의 불특정, 군법회의 심판 회부 등에 관한 절차 규정 미준수 등이었다. 당시 4.3군사재판의 공소장, 판결문 등 소송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이유는 6.25를 거치며 대부분의 문서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이었다. 군집행지휘서는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았던 대구형무소의 문서였기에 살아남아 빛을 볼 수 있었다.

제주법원의 재심 재판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주인공들은 지역 여론과 정치 판검사들과 떼법과 싸구려 감상들이었다.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었다면 재심청구는 접수되지 말았어야 했다. 재판이 있기에 재심청구를 받아놓고서 문서가 없어서 재판을 못 하였기에 공소기각이라는 논리였다. 재판관들은 스스로 자기 선배들이 세웠던 법의 권위와 위엄을 짓밟아버렸고, 여론과 민심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서 그들에게 법조문은 유행과 시류에 따라 변하는 유행가 가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덩달아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해야 할 검사들도 항소를 포기함으로서 직무를 유기했다. 검사들은 수형자들의 유죄를 증빙할 수 있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아직 4.3경험자들이 다수 생존해 있기에 수형자들의 유죄를 증언하거나 재판의 정당성을 증언해 줄 생존자들은 많았다. 문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탁상'에서 여론의 눈치를 보며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했다. 검사들은 항소를 포기함으로서 대한민국보다는 인민공화국에 충성을 바친 꼴이 되었다.

제주법원의 판검사들은 하느님의 동기동창이나 되는 걸까. 70년 전의 재판을 뒤집어버리다니. 이 재판은 대한민국 법관들의 희극을 보여준다. 옛날의 판결을 현재의 판결로서 재판하는 것은 현재의 판결을 미래의 판결로서 다시 재판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야준다. 70년 전의 판결을 재판했던 현재의 제주법원 판사들은 내일쯤에 다시 후배들에게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니, 정권에 따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판결이라면, 이런 판사들의 법조문과 조폭들의 사시미칼은 다를 게 무엇이던가.

2천 년 전의 유다를 불러내어 재판정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전지전능한 판사들이 있다면 아마도 제주지방법원의 판사들일 것이다. 절차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판결이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판결은 언제나 변동될 수 있는 불안한 위치에 있게 된다. 법과 판사의 존재 이유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4.3재심 재판은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개나 소나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는 판결이었다. 이런 것도 법의 판결인가?

제주지역의 언론들은 4.3수형자들의 재심판결에서 공소기각이 내려짐으로서 수형자들이 무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소기각은 무죄판결이 아니라 판결불능이라는 판정이다. 수형자들은 제주언론에서 무죄가 될 수 있을지언정 역사의 법정에서는 유죄다. 4.3정립연구유족회가 가짜 4.3희생자들을 골라내어 척결을 주장했던 기준은 '유죄판결'이 아니었다. 그들이 70년 전에 무엇을 했는냐가 유죄와 무죄의 판가름이었다.

70년 전에 유죄를 언도받고 형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데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다. 대한민국은 죄값을 치른 사람들에게 다시는 죄를 묻지 않기 때문이다.

4.3정립연구유족회가 불량희생자를 주장하는 것은 4.3당시 폭도들이 얌심의 가책 없이 무고한 희생자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4.3재심 판결에 공소기각이 내려졌어도 70년 전의 행위를 정당화 하거나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버려서는 안 된다.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고 역사의 심판에는 싸구려 감상이 없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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