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넓은잎천남성너는 그 누구를 기다리는가 ⓒ 우리꽃 자생화^^^ | ||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그 날,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기다리는 그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푸른 하늘 위를 거"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선가 나즉하게 나를 부르는 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귀기울여 귀기울여보니 뼈에 사무치도록 사랑하는 그 사람의 속살거림은 온데 간데 없고 파아란 하늘에선 그녀의 속살 같은 젖빛 구름만이 하품을 하면서 두둥실 떠다니고 있습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잃은 것" 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달겨드는 서운함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봄비! 봄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물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바라보는 봄비는 마치 내 님의 눈물 같이 "나즉하고 그윽하게" 흘러내립니다. 내리는 봄비 속에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나의 회상", 생각만 해도 저절로 가슴이 떨리는 내 님의 따스한 입김만이 향기로운 봄비 앞에 자지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누가 찌르지 않아도 아파오는 가슴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봄비가 "나즉하고 그윽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봄비처럼 훌쩍 찾아들 것만 내 님은 진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창 밖으로 나아가 봅니다. 창 밖에서는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 가 더욱 줄기차게 내립니다. 행여나 하면서도 오지 않을 내 님을 기다리는 그 사람의 심정,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까닭없는 근심이 봄비가 되어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에는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도 내가 늘 기다리는 있었던 그 사람이 봄비처럼 문득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행여나 봄비 속에 떠난 내 님이 있었다면, 그리고 봄비가 내릴 때 만나기로 하고 떠난 내 님이 있다면, 그리고 봄비가 내린다면... 기다리는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봄비가 내리는 날, 한때 사랑했던 그 사람의 얼굴을,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의 촉촉히 젖은 까아만 눈동자를, 봄비가 흘러내리는 유리창 속에 슬며시 떠올려 보는 것도 삭막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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