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반인륜적 해외 암살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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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반인륜적 해외 암살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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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대세습 독재자 김정은 참수만이 암살 흑역사 종식

▲ 김정은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 또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등 김씨 3부자에 걸친 납치, 습격, 숙청, 처형, 암살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만행들은 김정은 가문의 오래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뉴스타운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된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46) 사망과 관련, 북한은 자신들의 눈에 거슬리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라도 가차 없이 암살해버리는 잔혹한 ‘암살의 역사’를 기록해오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암살의 역사는 북한의 김씨 세습 정권이 유지되는 한 항상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일부 정보기관은 북한의 공작원들에 의한 암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확인된 정보는 없다. 북한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이후 그는 고위간부들에 대한 숙청과 처형을 반복하면서 이른바 ‘공포정치’를 통한 자신의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비인간적,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더니, 급기야 이복형인 김정남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암살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과 그의 아버지 김정일, 또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등 김씨 3부자에 걸친 납치, 습격, 숙청, 처형, 암살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만행들은 김정은 가문의 오래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북한의 정예부대라 할 수 있는 31명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지난 1968년에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입성 청와대(대통령궁에 해당)까지 접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했다. 이들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은 산을 타고 움직이면서 서울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발각, 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됐다.

그들은 만일 적발될 경우 자살을 택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군과 경찰 병력은 치열한 소탕작전을 펼쳤다. 이들 특수부대 요원들은 청와대 100m까지 접근, 추저중인 군과 경찰 병력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 특수부대요원들의 대부분은 사살되었다. 일부는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당시 1명은 생포됐다. 북한 특수부대요원들의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당시 한국 민간인들이 90명 이상이 희생됐다.

* 1983년 버마 폭발사건 

1083년 10월 9일. 당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 등 각료들이 미얀마(버마)를 공식 방문한 때였다. 북한은 제 3세계 성향의 버마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한국 대통령과 각료들을 일시에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수도 양곤 순교자들의 영묘 시설에 폭발물을 숨겨 설치해놓앗고, 그 행사장에 모였던 각료들을 겨냥 폭발시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현장에 미처 도착하지 않아 희생들 모면하게 됐다. 이번 말레이시아 김정남 암살 사건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 각료들을 실제 암살시킨 버마 사건이 가장 큰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장관 등을 포함해 고위 관리들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또 당시 4명의 버마인들도 사망했다. 당시 3명의 북한 요원들이 그 사건에 연루되었고, 3발의 폭발물을 설치했으나,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한 발이 터져 대통령 암살은 실패했다. 폭발물이 터지자 이들 3명은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한 명은 살해됐고, 나머지 두 명은 체포됐다.

* 1970~ 1980년대 해외에서의 납치 사건 

북한은 19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민간인들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은 이들 민간인들을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가 이들을 통해 일본인들의 습관이라든가 언어를 배우며 간첩(스파이)요원 훈련에 이용했다.

일부 일본인 민간인들은 해안가에서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고, 일부는 해오에서 납치되기도 했다. 당시 가장 어린 나이인 13살의 소녀도 납치되었으며, 1977년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납치되었다.

평양 당국은 후에 납치한 일본인들 가운데서 5명은 일본으로 되돌려 보냈으나 8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죽었다고 믿고 있지 않고 있다. 납치인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국(남한)의 민간인들도 역시 납치를 많이 당했다. 가장 고위직은 영화감독 신상옥 감독과 부인 배우 최은희 씨 부부였다. 이들은 홍콩에서 납치되었으며, 북한으로 끌려가 북한 영화산업 부흥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옥 감독은 끝내 북한에서 탈출할 당시 북한에 있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을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 가지고 나와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김정일 본인이 납치 명령을 내린 것이다.

* 199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살해 

이번 김정남의 말레이시아에서의 암살 사건이 터지면서 20년 전 괴한의 습격을 받았던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최덕근 영사는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1996년 10월 1일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길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북한인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다.

최덕근 영사의 시신에서는 북한 공작원들이 독침에 사용하는 독극물 성분이 검출되었고, 부검 결과 원통형 물체로 머리를 8차례나 가격 당해 심한 두개골 손상을 입고 있었고, 예리한 물체로 오른쪽 옆구리 부분을 찔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덕근 영사는 당시 북한의 달러 위조와 마약 밀매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었고, 국내 정보 당국은 이런 정황을 볼 때, 북한이 남측 외교관의 대북 정보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최덕근 영사를 독극물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사건은 발생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확한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 1997년 김정남 이종사촌 이한영 피살

지난 13일 암사당한 북한 김정남의 이종사촌인 이한영이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두 번의 총성으로 숨을 거뒀다. 1997년 2월15일이었다. 이한영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이다.

이한영은 1982년에 한국으로 망명한 후 한국에서 원래 이일남이던 이름을 이한영으로 바꾸고 성형수술까지 감행했지만 북한의 총탄을 벗어나질 못했다. 이한영 피습 현장에서는 북한제 권총에서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됐고, 또 이한영이 의식을 잃기 전 "간첩"이라는 말을 남겼다는 증언이 나오며 북한은 이한영 피습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 2011년 북한의 독침 공격

2011년 8월 21일에는 중국 단둥에서 대북 선교 활동을 하는 김창환 선교사가 독침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 그 다음 날인 8월 22일 중국 옌지(延吉, 연길)에서도 10여 년 간 대북 인권 활동을 해 온 강호빈 목사가 독침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 강 목사는 기적적으로 소생했지만 이듬 해 5월 27일 교통사고로 끝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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