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이 보기보다 가파르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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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보기보다 가파르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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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마음따라> 경남 사천 '와룡산'

 
   
  ^^^▲ 용이 누운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혀진 와룡산
ⓒ 경상남도^^^
 
 

"삼천포에 왔으모 삼천포의 명물을 구경 안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저 앞에 보이는 와룡산을 말하는 거냐?"
"하모. 와룡산에 올라가 보아야 삼천포를 쪼매 안다꼬 말 할 끼 아이가."
"이 차림으로 어찌 저 산을..."
"걱정 말거라. 그럴 줄 알고 내가 등산화를 한 켤레 더 넣어가꼬 안 왔나."

그래.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마따나 삼천포에 와서 와룡산을 그냥 먼 발치로 바라보고만 갈 수야 없지 않겠는가. 에라이, 모르겠다. 기왕에 나선 김에 저렇게 사람을 태우기 위해 드러누워 있는 용을 타고 구름 속으로 한번 날아나 볼까.

사천시 남동쪽에 위치한 와룡산(臥龍山, 798.6m)은 북쪽으로는 사천시 사남면과 동쪽으로는 고성군을 거느리고 있다. 와룡산이라는 지명이 맨 처음 나오는 곳은 도선국사(827∼898)가 쓴 시(詩) '방수심산 무한경 외룡산하 남양동(訪水深山 無限景 臥龍山下 南陽洞)'이라는 싯귀 속에 있다.

이 시의 뜻은 '깊은 산 맑은 물이 흐르는 무아지경을 찾으니 그곳이 바로 와룡산 아래의 남양동이로구나" 라는 말이다. 또 경상도지리지 진주목 사천현 명산조에도 와룡산이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니 저 산이 운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나?"
"체, 바람이 불면 울지 않는 산이 어디 있어?"
"그런 기 아이고, 예로부터 와룡산이 섣달 그믐날 밤만 되모 운다카는 그런 전설이 있다카이."
"???"

"와룡산이 우는 데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그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산의 족보격인 산경표(山經表)라는 책에서 이 와룡산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다른 하나는 와룡산에 아흔아홉 개의 골짜기 있는데, 골짜기 하나가 모자라서 백개의 골을 채우지 못해 슬퍼서 운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아이가."
"니도 제법이다이~."

"그걸 모르모 삼천포 사람이 아이제. 또 최근에는 일본놈들이 우리 고장의 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서 와룡산 정상(민제봉)을 깎아 내렸기 때문에 그렇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 아이가."
"그래, 욕봤다. 열심히 공부한다꼬."

 

 
   
  ^^^▲ 와룡산 사자바위
ⓒ 경상남도^^^
 
 

그랬다. 와룡산은 과연 삼천포 사람들의 자존심 그 자체였다. 가는 길 곳곳에 와룡산이라는 입간판이 마치 길라잡이처럼 길을 안내한다. 그 입간판을 따라 가다보면 이내 눈 앞에 거대한 용 한마리가 떡 하니 드러누워 있다. 그 곁에 초라한 모습의 남양동 사무소가 보인다. 금세라도 용 발톱에 짓눌릴 것만 같다.

와룡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 5분 정도 올라가니 아담한 저수지가 하나 나온다. 그 저수지 곁에는 마치 누운 용의 수문장처럼 무슨 군부대가 하나 들어서 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 옆에는 으레 그러하듯이 오뎅, 번데기, 컵라면 등을 팔고 있는 구멍가게들과 60대 남짓한 할머니들이 손짓을 하고 있다.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고 올라갈까?"
"에이~ 산행할 때 뭐 묵으모 속만 너글거린다카이. 그냥 올라가자. 나중에 니가 사주는 싱싱한 회 묵을낀데 뭐."
"내가? 그으래. 나중 생각하면 미리 속을 좀 비워둬야겠지."

와룡산에는 옛 절터가 많기로도 유명하단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한때 이 와룡산에는 팔만아홉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또 와룡산 허리춤에 배꼽처럼 패여있는 백천골은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왜군들과 싸운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백천골에서 와룡산 등뼈를 더듬어 삼천포 바닷가쪽으로 내려오면 그와 관련된 지명이 실제로 있다. 성문에 매단 등이라는 이름의 성문등(城門嶝)이나 병사를 보낸 산이라는 파병산(派兵山), 난곡(亂谷), 퇴병산(退兵山) 등의 이름은 그러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뒷바침해주고 있는 지명들이다.

"제법 힘들제? 이 산이 보기보다 가파르다카이."
"하긴 용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려고 하는 일이 그리 쉽겠나."
"니나 내나 인자 다 됐다. 용 꼬랑댕이(꼬리) 쪼매 지나가꼬 벌시로 헉헉거리는 거로 보모."
"저게 상사바윈가?"
"와? 한번 올라가 볼라꼬?"
"아니 아니."

와룡산은 과연 명산은 명산이었다. 산 정상, 아니 세섬바위 근처에서 산을 휘둘러보니 아찔하다. 곳곳에 기암절벽이다. 그와 더불어 산 전체가 온통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의 천국이다. 마치 용의 등에 솟은 지느러미처럼. 산 아래 잔잔한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하얀 띠를 긋고 있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 와룡산에서 바라본 삼천포항경상남도^^^  
 

새섬바위... 이 새섬바위에도 얽힌 전설이 있다. 아득히 먼 옛날, 와룡산 전체가 물에 모두 잠긴 때가 있었단다. 그때 새 한마리가 앉아 있을 정도의 바위 하나가 물 위에 튀어나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바위를 보고 새섬바위라고 불렀단다. 하여간 대자연의 기묘한 모습에 무슨 의미를 갖다 붙히는 데에는 사람들이 으뜸이다.

이제부터 바위지대다. 암벽 중간중간에 안전장치로 쇠파이프를 꽂고 밧줄을 쳐 놓았지만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평소에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저 아찔한 바위벽을 어찌 지날 수 있으랴. 한때 북한산 백운대에 그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일이 새롭다.

"저 새섬바위도 정상이나 마찬가지 아이가."
"민제봉이 정상이라며?"
"새섬바위 저기 2m 차이로 민제봉한테 정상을 뺏깃다 아이가. 우째보모 참으로 억울한 일 아이가."
"하여간 고맙다. 가는 길에 팔딱거리는 회까지 다 사주고."
"니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다가 오늘 꼼짝없이 붙잡히는 수가 있다카이."
"빨랑 내려가자.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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