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장이 열리모 뭐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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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장이 열리모 뭐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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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진해 “벚꽃장”

 
   
  ^^^▲ 그 가시나의 얼굴처럼 피어나는 벚꽃
ⓒ 우리꽃 자생화^^^
 
 


"니 이야기 들었나?"
"뭐로?"
"요번 토요일부터 진해 벚꽃장이 열린다 카더라."
"벌시로? 하기사 벚꽃장이 열리모 뭐하노. 가보지도 못하는 거로."
"혹시 마을 어르신들이 콩고물 노랗게 묻힌 쑥떡을 해가꼬 불곡사에 해치(꽃놀이)라도 갈란가 아나."
"택도 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울 옴마가 요번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데 가지 말고 보리밭에 가서 독새(뚝새풀) 좀 베라카더라. 소가 잘 묵는다꼬."

시퍼렇게 자라는 쌀보리가 연초록 줄기를 쑤욱쑥 뽑아올리고, 보리밭 고랑에는 마을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뚝새풀이 수북히 자라고 있었다. 지난 2월에서 3월 내내 허리가 부서져라 그렇게 열심히 보리밭을 맨 보람도 없이.

앞산가새에 계단처럼 다닥다닥 붙은 다랑이 밭둑 곳곳에서는 연분홍 진달래가 메롱, 하면서 바알간 혓바닥을 쏘옥 쏘옥 내밀기 시작하고, 벚꽃나무 가지마다 우리들 손과 무릎에 마구 돋아나던 그 사마귀처럼 망울망울 매달린 벚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해마다 4월이 다가오면 우리 마을은 그야말로 울긋불긋한 꽃동네로 변했다. 냉이꽃, 장다리꽃, 개나리꽃, 뱀딸기꽃, 양지꽃, 제비꽃, 진달래꽃, 복사꽃, 살구꽃, 앵두꽃, 벚꽃 등이 마치 우리 마을에 예쁜 색동옷을 갈아입히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앞 다투어 피어났다. 앞을 보아도 꽃이요, 뒤를 돌아보아도 꽃이요, 좌우를 둘러보아도 온통 꽃, 꽃, 꽃들뿐이었다.

 

 
   
  ^^^▲ 마치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인 것 같다
ⓒ 경상남도^^^
 
 

그래. 이맘 때면 우리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도랑가에서는 마치 갓 뽑아낸 국수가락처럼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이 연초록 잎사귀를 수없이 내밀기 시작했고, 물이 휘돌아 흐르는, 제법 깊은 반수 위에서는 마치 물방개처럼 머리를 뾰쪽히 내민 오요강생이가 허옇게 센 머리로 동그란 원을 수없이 그리고 있었다.

그때쯤이면 갈판이산(불모산) 너머 진해에서는 벚꽃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갈판이산 너머 진해에서 열리는 군항제를 벚꽃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번도 벚꽃장에 가보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진해 벚꽃장이 열리는 때가 되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들에 나가 바쁜 농삿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 울긋불긋한 저기 도대체 뭐꼬?"
"진해 벚꽃장에 놀러가는 사람들 아이가."
"이야~ 도대체 고빼(열차 칸)로 울매나 달았길래 끝이 안 보이노."
"하나, 둘... 열 아홉, 스물. 우와~ 고빼로 스물 칸이나 달았다. 고빼로 저래 많이 달아가꼬도 기차가 달리는 거 보모 참말로 희한하다 그쟈."

그랬다. 이제 마악 하나 둘 연초록 보릿대를 뽑아올리고 있는 보리밭 고랑 사이에는 보리보다 더 많은 독새풀이 시퍼렇게 자라나 보리처럼 마악 줄기를 뽑아올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마치 숨박꼭질을 하는 것처럼 그 보리밭 고랑에 엎드려 금방 숫돌에 간 조선낫으로 독새풀을 차근차근 베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새풀을 한 바지개 쯤 열심히 베어갈 때면 으레 상남역에서는 푯대가 내리고 댓떼, 하는 소리와 동시에 기차칸을 스무 개 남짓하게 단 기차가 긴 몸을 구브리며 진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기차에는 문 입구까지 온통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사람들로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뎃떼~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뎃떼~ 철커덕 철커덕"

당시 상남역에서 진해로 가는 그 기차는 연기를 푹푹 내뿜으며 으레 댓대, 하는 기적소리를 연신 울리며 우리 마을의 들판 사이에 걸쳐져 있는, 그러니까 왜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해 놓았다는 그 철로를 철커덕 철커덕 달렸다. 우리가 한참을 세어도 꼬리가 보이지 않는 그 기차에는 우리 마을 곳곳에 피어난 꽃보다 더 많은 사람꽃들이 수없이 피어나 있었다.

그 기차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탔든지 아예 기차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왼손에 독새풀을 쥐고 오른손에 낫을 든 우리들은 한동안 그 기차를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진해 벚꽃장이 뭐길래, 진해 벚꽃장에는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가 있길래,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악을 쓰며 달려가는 것일까.

 

 
   
  ^^^▲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꽃선녀
ⓒ 경상남도^^^
 
 


"우와~ 올개는 홀딱 벗고 장에 가는 사람들이 작년보다 더 많네."
"그라지 말고 우리도 벗고 장에 한번 가보자."
"우째?"
"살살 걸어가모 서너 시간 안에는 도착 안 하것나."
"굴을 우째 지날라꼬?"
"개구리맨치로 굴벽에 납작하게 붙어가 가모 된다카더라."
"택도 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그라다가 기차발통에 깔리(깔려) 죽으모 누가 책임 질끼고. 정 그렇게 가고 싶으모 안민고개로 넘어가라미."

그랬다. 보리밭 고랑에 허새비처럼 우뚝 선 우리들은 정말 진해 벚꽃장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기차표를 살 돈도, 밪꽃장에 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차려 입을 옷도 없었다. 또 학교를 파하면 누구나 소를 먹여야 했고, 소풀을 베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부러 벚꽃장을 옷을 벗고 장에 가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진해 벚꽃장에 가려고 하면 갈 수는 있었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 진해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었다. 하나는 위험을 무릅쓰는 한이 있더라도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기차터널을 걸어서 가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장복산으로 올라가 안민고개를 넘어서 진해로 가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가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아나."
"그기 뭐꼬?"
"딸기다."
"딸기로 우째 구했노?"
"울 옴마가 마디미 비닐하우스에 일하러 갔다가 조금 따왔다카더라."
"니 묵을 거로 내한테 다 주모 니는 우짜고?"
"나는 딸기로 싫어한다 아이가"
"그라모 니는 뭐로 좋아하노?"
"내가 좋아하는 거? 그거는... 바로 니 아이가."

마산쪽 하늘에 봄노을이 곱게 깔린 그날 저녁, 나는 어두컴컴한 도장에 들어가 그 가시나가 준 빨간 딸기를 볼 터지게 먹으면서, 그 가시나와 내가 나란히 손을 잡고 진해 벚꽃장에 가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황홀하고도 달콤한 꿈을 꾸었다. 그 가시나와 내가 하얀 벚꽃나무 아래서 하얗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그런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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