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김기춘과 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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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세웠던 보수층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외면당했다

▲ ⓒ뉴스타운

더민당 조응천 의원이 박근혜 정권 초반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순실 씨의 신사동 건물을 이용하며 정권 프레임을 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조응천은 "김기춘 전 실장이 최순실 사태의 상황을 장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면서 김기춘이 최순실 사태의 막후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조응천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낼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정윤회 십상시 문건'을 조사해 보고한 인물이다. 그러나 조응천은 정윤회에 대해서는 샅샅이 꿰둟고 있었지만 최순실에 대해서는 '확신'이 아니라 '의혹' 수준이었다. 당시 정윤회 뒷조사에 임했던 박관천 전 경정도 최순실에 대해서는 '의혹'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를 받았던 조응천과 박관천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박근혜 정권 초기의 비선 실세는 정윤회였고 최순실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갈등 관계에 있었다. 두 사람은 2014년 5월 이혼했다. 2014년은 많은 변화가 있던 해였다.

정윤회 부부의 이혼 사유는 사생활 문제이기보다는 권력 암투가 많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최순실의 전 시아버지이자 정윤회 부친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이가 대통령에게 정윤회가 대통령 비서로는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전달한 문제로, 정윤회는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혼까지 생각을 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정윤회가 애초부터 박근혜의 비선 실세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비서직을 수행했으니 정윤회는 청와대 최측근 3인방에게는 '큰형님' 뻘이었다. 그래서 정권 출범 후에도 동생들이 큰형님에게 정치적 자문을 구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야당에서는 이 조직을 '만만회'라고 불렀다. 이재만의 만, 박지만의 만, 정윤회의 회 자를 따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공격은 추측에 다른 것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조응천이 유출한 문건에서 정윤회가 박지만 회장을 미행 시켰다는 첩보에서 알 수 있듯, 박지만은 이들과는 관련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2013년 말 증권가 찌라시에는 중병으로 인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이 루머로 떠돌았다. 이에 김기춘 비서실장은 조응천 비서관에게 감찰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여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라는 감찰보고서를 작성하여 조응천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제출한 것은 2014년 1월이었다.

그 문건에는 정윤회가 '문고리 3인방'의 청와대 핵심비서관들이 포함된 10여 명의 '십상시' 인사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면서 국정을 배후조종하고 있고, 정윤회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2014년 중순 쯤에 교체할 것"이라고 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보고서는 김기춘과 박지만에게도 들어간다.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대낮의 실세였고, 정윤회는 대통령의 비선 최측근으로 어둠의 실세였다. 어둠의 실세가 대낮의 실세를 교체하려는 것으로 보아 두 개의 권력은 대립과 견제, 암투가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권력은 대립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최종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대낮의 실세를 교체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어둠의 실세는 정작 자기가 먼저 무대 아래로 퇴장하게 된다. 김기춘을 교체하겠다던 2014년 중반에 정윤회는 최순실과 이혼하면서 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했고, 그리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갔던 것으로 보인다.

감찰보고서를 썼던 박관천은 한 달 후인 2014년 2월에 경찰로 복귀 지시를 받았고, 조응천 비서관은 2014년 4월 해임되었다. 감찰보고서 내용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보도하면서 세간에 알려졌고, 김기춘은 2015년 1월 비서실장에서 사임했다.

김기춘이 물러가면서 최순실의 독주시대가 열렸다. 정윤회의 자리에 최순실이 들어설 때부터, 정윤회가 물러가자 김기춘과 최순실의 균형추가 무너졌고 최순실의 어둠이 권력이 대낮의 실세를 압도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추었다. 최순실이 권력의 핵심에 진입하던 2014년 중반, 제주4.3의 정상화는 엔진을 멈추었고 광주5.18의 정상화는 된서리를 맞아야 했다.

박근혜 곁에서 '늙은 측근'들이 떠나가고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며 박근혜를 세웠던 보수층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광고는 좌익언론에 더 쏠리고, 아스팔트의 애국투사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했는데 젊은 친구들은 수억 원씩 보조금을 받고 있었고, 종북인사들은 승승장구하는 데 비해 애국지사들은 고소고발에 시달리며 박근혜 정권을 원망해야 했다.

박정희는 부하들을 등용하면서 견제와 균형에 신경을 썼다.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 옆에서 근 6년 동안 정치 수업을 쌓았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권력의 경도를 방치하여 나라에 망조가 들게 했다. 오늘쯤에 박근혜는 나라를 살릴 방도를 구했을까. 박근혜 정권을 견인하던 박근혜의 '늙은 측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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