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뭐꼬? 개똥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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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뭐꼬? 개똥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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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 속의 그 이름> 개떡

 
   
  ^^^▲ 낙안읍성개떡 찌던 내 고향은 어디 있는가
ⓒ 전라남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작시,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모두)

내가 살던 마을 앞산에는 오 가네 과수원이 있었다. 그 과수원은 언뜻 보면 금방이라도 아기 산을 하나 낳을 것처럼 늘 둥그런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 가네 과수원에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처럼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가 무척 많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 가지에는 동글동글한 꽃구슬이 마치 우리들 손과 발에 돋아나는 사마귀처럼 촘촘하게 매달렸다.

그날도 나는 도시락을 달그락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마악 책 보따리를 풀고 혹시 먹을 게 없는가 싶어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맘때면 늘 닫혀 있어야 하는 부엌문이 활짝 열려 있는게 아닌가. 게다가 부엌 안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도둑고양이인가? 아니면 쥐새끼가? 아니, 혹시 도둑놈이...

어머니께서 벌써? 아니었다. 보리밭 메러 나가신 어머니께서 벌써 들어오실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발뒷꿈치를 들고 살그머니 걸어가 외양간 옆에 세워둔 지게 작대기부터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 부엌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부엌 안에는 머리에 노란 수건을 쓴 낯 선 아주머니 한 분이 어머니께서 아침에 선반에 올려둔 그 맛있는 개떡을 마악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누굴까? 혹시 덕순이가? 아니었다. 덕순이는 몸집이 저리 작지가 않다. 일단 나는 지게 작대기를 단단히 잡고 헛기침부터 크게 한번 했다.

"에구머니나!"
"아지메! 정지(부엌)에서 도둑괭이맨치로 뭐하고 있능교?"
"놀래라. 나는 또 누구라꼬. 아따~ 개떡 그거 참 맛있네"
"참 내 미치것네. 아지메! 우리 아부지 중참 할라꼬 아껴둔 그 개떡을 아지메가 묵으모 우짜능교?"
"야가 또 와 이라노?"
"빨리 물어내소"
"아따, 갸 그거 참말로 무섭네. 니 개떡 한 쪼가리가꼬 참말로 그라끼가"

개떡을 훔쳐먹는 사람은 바로 이웃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그 아주머니는 별호가 세터댁이라고 불리는 마을형의 어머니였다. 그날 나는 그 자리에서 개떡이 담긴 그릇을 냉큼 빼앗았다. 하지만 세터댁 아주머니가 마악 입에 물고 있던 그 개떡은 차마 뺏지를 못했다. 그러나 새터댁 아주머니가 입에 물고 있는 그 개떡을 보자 목에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갔다.

"인자 빨리 가소. 고마"
"아따, 갸 그거 성질 더럽네. 내 지금 집에 가서 당장 개떡 한소쿠리 찌 주꺼마. 개떡 한쪼가리 묵다가 아(아기) 떨어질 뻔 했네"
"아지메가 오데 두둑인교?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가꼬 떡까지 훔쳐 묵구로"
"뭐라카노? 저 넘의 손이. 니 내 보고 도둑이라 캤나?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니 장개(장가) 갈 때 니 색시한테 이 이야기로 하는가 안하는가로"

그날, 새터댁 아주머니는 개떡 한 조각 먹은 죄로 어린 나에게 도둑이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새터댁 아주머니는 내가 오후 중참 때가 지나도록 기다려도 개떡 한 소쿠리를 쪄 준다는 그 약속은 끝내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마을 사람들에게 그 개떡 이야기를 해서 내게 무안을 주곤 했다.

개떡... 개떡의 재료는 보리등겨였다. 하지만 우리는 보리딩기라고 불렀다. 딩기는 쌀이나 보리를 방앗간에서 찧을 때 나오는 밀가루 같이 하얀 가루다. 하지만 쌀딩기는 좀처럼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금싸라기 같은 것이 쌀이었으니, 쌀을 찧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리딩기는 체로 걸러 개떡을 쪄서 먹거나 쑥과 같이 삶아 쑥털털이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나머지 거친 딩기는 주로 소여물과 함께 섞어 소죽을 끓였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보리딩기가 제법 흔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에서는 대부분 소를 키웠고, 마을 신작로 근처에 방앗간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떡을 찔 때에는 방앗간에서 가져온 제법 따스한 보리딩기를 체에 넣고 거른 뒤, 체 아래 쌓인 고운 딩기에 사카린을 넣고 밀가루처럼 반죽을 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얀 소다였다. 왜냐하면 소다를 넣어야 개떡이 크게 부풀어올라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개떡을 따로 찌지는 않았다. 그저 아침에 시커먼 밥솥의 솥두껑 안쪽에 보리딩기 반죽한 것을 얇게 펴 바른 뒤 그대로 솥두껑을 덮고 밥을 지었다. 그러면 밥이 됨과 동시에 그 맛있는 개떡까지 한꺼번에 쪄지는 것이었다. 개떡은 찌고 나면 색깔이 마치 개똥처럼 까맣게 변했다.

"니 퍼뜩 손바닥 내밀고 두 눈 꼭 감고 있어봐라"
"와?"
"퍼뜩!"
"자~"
"인자 눈 뜨라"
"옴마야! 이기 뭐꼬? 개똥 아이가"
"에이! 아깝구로. 내가 가시나 니한테 개똥을 주것나. 에이~ 참"
"옴마야! 이 일로 우짜것노? 이 맛있는 개떡을 땅에 떨짜뿌서(떨어뜨려서)"
"가시나 니도 오늘 묵을 복이 더럽기 없는갑다"

그래. 지금도 복사꽃과 살구꽃이 동글동글 꽃 몽오리를 말고 있을 때면 달착지근하고도 시커먼 그 개떡이 먹고 싶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집 컴컴한 부엌에서 개떡을 한입 베어물던 그 새터댁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새터댁 아주머니는 개떡 한소쿠리 쪄 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지만 내 결혼식 때 개떡 이야기를 할거라는 그 약속조차도 끝내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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