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우슈비츠’ 방문 ‘말보다 행동이 더 많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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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아우슈비츠’ 방문 ‘말보다 행동이 더 많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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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여, 그 잔학성을 용서 하소서 !” 기도

▲ 이번에 아우슈비츠수용소(Auschwitz)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독일 출신도, 폴란드 출신도 아닌 아무런 연고가 없는 교황이 이곳을 찾아 몸소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환하게 비추며 유대인과의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뉴스타운

프란치스코 교황은 29일(현지시각)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Oswiecim) 교외에 위치한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Auschwitz)강제수용소를 방문하고, 홀로코스트(Holocaust, 유대인대량학살) 희생자들을 위해 약 15분간 조용히 기도만 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아우슈비츠수용소 정문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그 유명한 냉소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수용소의 상징 문구이다.

교황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문은 홀로 걸어 들어간 후 부지 안의 벤치에 앉아 15분간 묵도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당한 이른바 ‘죽음의 벽(Death Wall)’이라 불리는 벽에 오른손을 살짝 댄 채 고개를 숙였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당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에 의해 100만 명 이상이 희생을 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Pope Francis)이 수용소에서 이례적으로 연설을 하지 않은 채 철저히 기도만 한 것에 대해 교황청과 폴란드 가톨릭 관계자는 “비극 앞에서는 침묵밖에 없다. 말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아우슈비츠수용소의 홀로코스트에 관해서 가톨릭 신자들이 잔학행위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충분하게 내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문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지난 2006년 독일 출신 베네딕토 16세(Pope Benedict XVI)도 이곳을 방문해 추도식전에서 “독일인의 책임”을 강조해 유대인과의 화해를 도모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히틀러시대에 10대 소년이었다. 수용소를 방문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모국어인 독일어 대신에 이탈리아어로 연설을 했다.

앞서 교황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도 1979년에 이곳을 방문을 한 적이 있지만 바오로 2세 교황은 조국 폴란드 출신이다.

따라서 이번에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독일 출신도, 폴란드 출신도 아닌 아무런 연고가 없는 교황이 이곳을 찾아 몸소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환하게 비추며 유대인과의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가톨릭교회의 아우슈비츠의 ‘검은 역사’를 속죄하고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이끌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의 의미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올해는 1941년 폴란드 출신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막시밀리안 콜베, St. Maximilian Kolbe) 신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된 한 남성을 대신해 살해 당한지 75년이 지난 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콜베 신부가 최후를 맞이한 감방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 6분간 조용히 기도했다.

나치가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에 가둔 신부는 당시 47세의 나이로 다른 탈출시도 강제 수감자를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1941년 8월 15일 수용소 내 화장장에서 불태워졌다. 콜베신부는 1930년부터 약 6년간 일본 나가사키를 거점으로 복음 활동을 한 뒤 폴란드로 돌아갔으나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2016년 7월 29일 신부가 당시 지낸 지하 감금실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침묵으로 콜베 신부의 숭고한 죽음을 애도하고 묵상에 또 묵상을 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감금시설과 고문 장소, 각종 전시 공간, 화장터 등으로 개장된 역사기념물이기도 한 수용소를 카트(cart)에 올라타 둘러보고 몇몇 아우슈비츠 생존자들과도 만났다. 생존자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몸을 숙여 그들의 양 볼에 입을 맞추기도 했고, 한 여성 생존자는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가벼운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은 이어 수용소에서 3㎞ 떨어진 ‘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 있던 나치의 집단살해 만행장소도 훑어보았고, 이 자리에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의 만행으로부터 폴란드 내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데 크게 역할 한 폴란드 교계 인사 25명을 만나 대화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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