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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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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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례, 김진순씨 관련 5월17일자 한겨레신문 보도 사실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5월 17일자(입력 16.05.17. 21:26. / 수정 16.05.17. 21:26) “우릴 간첩으로 몰아야 쓰냔 말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엔 ‘5·18때 남편·자식 잃고 북한군 날조된 두 여성의 분노‘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5.18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아니 조금만 객관적 입장이었다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해버렸다. <뉴스타운>이 한겨레신문의 기사까지 문제시 하는 것은 국민의당이나 5.18 단체들이 여타 언론들의 왜곡보도는 방관한 채 유독 <뉴스타운>에만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뉴스타운>의 [제 13탄] 기사를 보고 어떤 언론이 광주 5.18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 바란다.<편집자주>

▲ 사진 : 5.17일자 한겨례신문 보도 내용 캡처 ⓒ뉴스타운

심복례, 김진순 두 사람은 5월 23일자 사진에 촬영될 수 없다

심복례씨는 광주 5.18이 발생한 후 5월 30일 이후에야 광주에 왔으며, 김진순씨는 6월 30일에야 아들의 사망 소식을 경찰로부터 통보 받았다.

따라서 심복례, 김진순 두 사람은 <뉴스타운>이 공개한 5월 23일자 상무관 촬영 사진에 촬영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두 사람이 광수로 지목됐건 아니건 사진 속 인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겨례신문 기자가 두 사람이 언제 광주에 왔었는지 날짜만 파악했다면 이런 기사는 작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복례씨는 <뉴스타운>이 연재하고 있는 [제1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 ‘광주 5.18 심복례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다’(6월10일자 보도)라는 기사에 상세히 밝혀 놓았다.

심복례씨 5월 29일 이후 광주에 왔다

심복례씨의 남편 김인태씨가 시민군에 납치당한 후 상무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돼 그의 신원이 검시관들에 의해 확인된 날짜는 5월 28일이었다. 남편 김인태씨의 주민등록증이 그의 상의 안주머니에서 이 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심복례씨 역시 본인도 면사무소 직원에게서 남편 김인태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5월 말이라고 증언한다. 즉 5월 28일 부검 때 김인태씨 옷에 들어있던 주민등록증으로 거주지를 찾아, 그 다음날인 29일 망월동 묘역에서 합동장례식이 거행되었을 때 가매장하고, 합동장례식이 끝난 다음에야 광주시가 해남의 심복례씨에게 사망통지서를 발송한 것이다.

이런 심복례씨가 5월 23일 상무관에 온 사실이 없음에도 사진 속 특정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는 심복례씨의 증언록 등이 이를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의 증언록에는 “5월 19일 광주를 향해 떠난 남편은 며칠째 소식이 없었다. (중략)남편이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되자, 점점 초조해졌다. 그렇다고 일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면사무소에 달려가 보니 분명 김인태씨의 사망을 알리는 종이쪽지였다. 벌써 망월동 묘역에 가매장되어 있으니 와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시신의 주머니 안에 있던 주민등록증으로 거주지를 찾았다고 했다.”

합동장례식이 끝난 후에 배달된 남편 사망통지서를 받고 광주에 도착한 심복례씨를 광주시가 안내한 장소 역시 망월동이었음을 심복례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바로 남편이 있다는 광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교통편이 없었다. 한숨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6시, 시누이와 동네 어르신 몇 분과 똑딱선을 빌려 해남을 출발해 목포로 갔고, 목포에서 다시 광주행 버스를 탔다. 도청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모여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시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망월동에 도착하니 시신을 넣을 구덩이가 이미 만들어져 있고 관들이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런 내용은 사이버추모공간(국립 5.18 민주묘지 1묘역)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사망일자가 1980년 5월 20일로 기록돼 있다.

이 역시 심복례씨는 5월 23일 상무관에서 온 사실이 없다. 그는 증언록에서 ‘5월 19일 광주를 향해 떠난 남편은 며칠째 소식이 없었다. (중략)남편이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되자,’라고 밝히고 있다. 19일 이후 열흘이 지났다면 이날은 29일 이후를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곳곳에서 자신이 도착한 곳은 사진 속 상무관이 아닌 망월동이었음을 그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다. 이는 5월 23일 상무관의 관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은 물론 곳곳의 증언들이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진 속 광수가 자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사이버추모공간(국립 5.18 민주묘지 1묘역)에는 사망일자가 1980년 5월 20일로 기록돼 있다. 내용에는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남편, (중략) 심복례씨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5월 말께, 심복례씨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면사무소 직원에게 김인태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인태씨가 사망에 이른 경위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며 심지어는 그가 연행되고 바로 숨을 거뒀는지, 구타에 시달리다가 버려지기 직전에 숨을 거뒀는지 조차 알 수 없다.(중략)(증언자 : 심복례)

한겨레신문 기사는 그럼에도 ‘80년 5월 남편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내던 장남의 하숙집에 갔다. 하숙비를 주고 공용터미널로 가다가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숨졌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남편 김인태씨는 공수부대원이 아닌 시민군들에 붙잡혀 간 후 사망했다. 공식 기록에는 5월 20일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김인태씨는 사진에서도 드러나듯 공수부대와 관계없이 시민군(지만원 박사 북한 특수군 주장)에 연행돼 도청으로 끌려간 후 살해 당했다.

그런데 김인태씨를 연행해가고 있는 인물 중 광수로 지목된 한명이 당시 시민군 대장인 박남선씨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같이 연행하고 있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또 끌고 가고 있는 김인태씨를 어떻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겨레신문은 김인태씨가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죽었다고 단정했다.

▲ 사진 : 심복례씨의 남편 김인태씨가 시민군에게 붙잡혀 가는 모습 ⓒ뉴스타운

김진순씨 6월30일 경찰로부터 장남 사망 소식 통보 받아

김진순씨도 마찬가지다. 한겨레신문은 ‘광수 62번으로 지목된 김진순(86)씨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망한 리을설 북한군 원수로 날조 됐다. 80년 5월 당시 독일 기자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상무관(옛 전남도청 앞)에서 아들의 주검을 찾는 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이 동영상 등을 두고 리을설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리을설은 5·18 당시 광주 북한특수군 현장 지휘 총사령관으로, 여자로 변장해 활동했다”는 것이 일부 극우세력의 주장이다.’고 보도했다.

이 내용은 한겨레신문 기자가 스스로 진실이 아님을 바로 아래 기사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 사진 : 한겨례 신문 기사 내용 중 일부 캡처 ⓒ뉴스타운

‘이날 전남 목포에서 만난 김씨는 “어찌고 치가 떨려서…. 오죽하면 내가 고소하려고 하겄소? 말만 해도 떨리요”라고 했다. 김씨의 큰아들 이용충(당시 26)씨는 1979년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 양동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했다. 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해 시위에 참여한 이용충씨는 5월 21일 오후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시위 진압용 페퍼포그 차를 끌고 나왔다.

이용충씨는 5월 22일께 광주교도소 앞길에서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안부맹관창’(3곳)으로 사망해 암매장됐다가 광주시 북구 망월동 옛 묘지에 묻혔다. 김씨는 그해 6월 30일에야 경찰한테서 장남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 체크무늬 점퍼와 오후 1시23분에 정지된 손목시계가 아들이라는 증거였다.‘고 한겨레 신문은 적었다.

한겨레신문 기자는 앞에서는 ‘80년 5월 당시 독일 기자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상무관(옛 전남도청 앞)에서 아들의 주검을 찾는 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고 밝히고는 뒤에서는 ‘김씨는 그해 6월 30일에야 경찰한테서 장남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고 보도했다.

김진순씨가 아들의 사망 소식을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날짜가 6월 30일인데, 어떻게 22일과 23일 사이 상무관에 마련된 사망자들의 관 앞에서 울고 있을 수 있는지, 또 사진에 찍힐 수 있는지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는 김진순씨가 아들의 사망 소식 조차 모르고 있을 때였다.

이런 정황만 보더라도 지금 광주 5.18의 역사는 <뉴스타운>이 아닌 여타 언론들이 왜곡하고 있음에도 국민의당은 <뉴스타운>발행인을 고소 했다.

진실은 손으로 가릴 수 없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막을 수 없는 큰 화가 돼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은 물론 정치인들은 광주 5.18의 역사를 제대로 보기 바란다. 외눈박이 눈에는 두 눈 달린 사람이 비정상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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