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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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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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 내용 진실로 믿고 있는가?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는 시체 5,000구가 쌓여 있었다.” 이 유언비어는 광주 5.18 후에도 20여 년간 지속됐다. 특히 이런 유언비어에는 당연히 “전두환이 광주시민 5,000명 학살하였다”는 단서가 따라 붙었다. 과연 이것이 사실 일까.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유언비어는 엄청난 사태를 불러 올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은 물론 내전까지도 유발시키는 핵폭탄 같은 위험물질이다.

사전에서 ‘유언비어(流言蜚語, rumor)’를 찾아 보니 ‘근거가 부족한 상태로 소문에 의하여 비교적 광범위한 사람들 사이에 연쇄반응적으로 퍼지는 말. 그 전달 경로가 일정하지 않고 내용도 당면의 상황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지만 보통은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적혀 있다. <뉴스타운>은 광주 5.18의 근본적 원인이 유언비어에서부터 출발했다는 단서를 잡고 지금까지 수많은 자료들을 취합해 왔다. 결론은 ‘광주사태=유언비어 유포’였다. 세월 36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 5.18을 이야기 하면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유언비어의 진위 여부다. <뉴스타운>은 광주 5.18에서 나돌았던 유언비어는 모두 조작된 것이라 단정한다. 만약 충격적인 유언비어가 없었다면 광주 5.18은 ‘사태’나 ‘폭동’ 같은 단어 없이 단순 시위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흉악한 유언비어는 시위에 기름을 부었고, 결국 군과 시민군 사이에 총질을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뉴스타운>은 ‘5.18 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이 왜곡되고 거짓투성이인 광주 5.18의 유언비어 진위 조차 말하지 못하게 입을 막겠다는 것인지 묻고자 한다.<편집자주>

▲ 광주 5.18 관련 북한 방송의 유언비어 내용 ⓒ뉴스타운

광주 5.18은 유언비어에 속아 광란의 폭동으로 변질 됐다

2016년 6월 20일 <뉴스타운>은 이렇게 단정한다. “그동안 수없이 회자 됐던 광주 5.18의 유언비어는 사전 계획된 무리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폭동을 조장할 목적으로 문서로 작성해 전국적으로 퍼트린 악질적 범죄행위다.” 만약 <뉴스타운>의 이 같은 결론에 문제가 있거나 이의가 있다면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반박 하기 바란다.

먼저 광주 5.18의 대표적 악질 유언비어는 7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싹쓸이 하러 왔다’. 둘째 ‘공수부대원이 여자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도려냈다’. 셋째 ‘공수부대원이 임신한 여자의 배를 대검으로 찔렀다’. 넷째 ‘죽은 시민을 불도저로 밀면서 처리하는 과정이 TV에 나왔다’. 다섯째 ‘공수부대원이 광주에 들어오면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죽일 것이다’. 여섯째 ‘공수부대원 곤봉 속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일곱째 ‘공수부대원들이 독한 술과 환각제를 먹었고, 사거리 20미터의 화염방사기를 쏘았다’등이다.

이 같은 유언비어는 80년 당시 광주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유언비어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 졌고, 심지어는 “경상도 사람이 호남지역에 가서 차에 기름도 못 넣었다”, “주유소 앞에서 김대중 만세 세 번 부르니 넣어,주더라”, “식당에 가서 경상도 말하니 밥도 주지 않더라”, “경상도 말한다고 죽도록 얻어 터졌다”는 등 또 다른 유언비어를 양산했다.

이런 유언비어에 속은 시위대 및 광주·호남 사람들은 광분 했고, 그 광분은 폭동으로 이어지는 점입가경이 되었고, 시위대는 시민군으로 결집돼 결국 군인과의 총격전으로 전개됐다.

▲ 광주 5.18 당시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에 격분한 광주시민들 모습 ⓒ뉴스타운

과연 그랬을까. 진짜 공수부대원들이 유언비어처럼 흉악무도한 짓을 했을까. 유언비어가 사실이라면 공수부대원들은 광주와 호남사람들이 말하는 양민학살자들이 맞고, 아니면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지금이라도 유언비어 생산 및 유포 자들을 고발해야 한다. 이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을 뜯어고쳐 왜곡보다 더한 거짓말의 역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유언비어는 이렇게 만들어 졌고 살포 됐다

광주운동권 중에서 녹두서점 주인 김상윤이라는 인물이 있다. 김상윤은 김대중의 측근이었고, 김상집은 김상윤의 동생이었다. 광주 5.18 유언비어는 맨 처음에는 녹두서점 전화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녹두서점은 전국 운동권에 연결되는 전화 연락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전화를 이용해 유언비어 확산에 기여 했던 인물이 바로 김상집이다.

5월 18일 오후 시위대에 인질로 납치된 경찰 45명을 구출하기 위해 오후 4시 반에 7공수 2개 대대가 동원되어 3시간 가량 시위 진압이 있었을 뿐인데, 이때 벌써 사망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이러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사실을 김상집은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녹두서점에 앉아 광민, 돌베개, 일월서각, 대구양서조합, 부산양서조합 등 책에 적힌 전화번호와 전국 각지에 있는 사회과학 서점에 전화를 걸어 광주의 학살소식을 전달하였다.”

이미 광주 5.18 이전에도 5월 8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제1시국선언문’, 5월 14일 중고생 봉기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5천만 겨레여 성명서’, 5월 15일 동광주와 목포 소재 전문대학들 명의로 발표 된 ‘제2시국선언문’ 성명서들을 보면 대부분 ‘매판자본’이란 용어를 삽입하고 있는데, 이는 반정부 심리를 부추기려는 심리전에서 비롯됐다. 그 이유 역시 북한의 김중린이 남한의 간첩 조직망에 유언비어 살포 지령을 내린 것과 쌍둥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명서들의 결정판은 바로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문건이다. 이 유언비어 유인물을 작성한 사람은 광주운동권 김현장이라는 인물이다. 김현장은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명의로 이 문건을 작성하였다. 당시 김현장은 전남 구례의 천은사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다.

▲ 광주 5.18 당시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 원본 ⓒ뉴스타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은 천은사에 기거하던 김현장이 직접 작성했다는 주장도 있고, 남파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불러 주는 대로 제목을 붙이고 받아 썼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어찌됐건 이 문건은 악성 유언비어로 가득 찬 성명서 형태의 유인물이라는 점이다. 유인물 초안이 완성되자마자 김현장은 전주의 정의구현사제단에게로 달려가 이를 전달했다. 그 즉시 문정현 신부는 전주성당의 고속복사기로 수 만 장 복사하여 천주교 조직을 통해 전국으로 보냈다.

이 유언비어 유인물을 작성한 김현장은 5.18 광주 현장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가 아니었다. 이는 김현장이 김대중을 만나러 서울에 도착 했지만 김대중이 연행 되었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구례 천은사로 피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천은사에는 운동권 전용 승방이 있었다.

김현장은 천은사에서 북한 방송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와 구례의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에게서 들은 유언비어를 토대로 5월 21일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전주성당의 고속복사기로 수 만 장 복사하여 천주교 조직을 통해 전국으로 살포한 문정현 신부는 5월 22일 이우정을 서울대학교 한홍구(유시민, 정윤광 등과 서울대 3학년 운동권 주동 세력)에게 보내 이 유인물을 전달토록 했다. 한홍구 일행은 이날 가장 먼저 전국 대학교에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로 이 유인물을 보내고, 25일에는 서울 시내에 살포했다.

5월 22일 상경하여 한홍구에게 이 유언비어 유인물을 전달한 이우정도 광주사태 현장 목격자가 아니었다. 조선대 민투 위원장으로 김현장과 더불어 김대중 내란음모에 동참했던 이우정은 5월 17일 밤에 예비검속이 시작되자마자 전주로 가 전주성당 문정현 신부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그래서 5월 18일부터 그는 전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유인물은 악성 유언비어 유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갑제 기자가 월간조선에 실었다. 문제는 조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아니하고, ‘시민의 증언, 자료, 체험기’라는 큰 제목을 붙여 독자들이 목격자의 증언으로 착각하도록 유도 했다. 결국 이 때문에 광주 5.18의 악성 유언비어는 유언비어가 아닌 사실화 돼 버렸다.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의 북한 연계성 추적

1980년 광주 5.18 하면 북한에서는 김중린이 있다. 북한의 광주 5.18 배후인물이 김중린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책으로 발표한 사람은 탈북자 강성산 북한 전 총리의 사위 강명도다. 1994년 7월 우리나라로 망명한 강명도는 이듬해 6월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이 책도 위장탈북자로 불리는 서울광수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있다.

▲ ⓒ뉴스타운

강명도는 ‘김일성은 전두환을 두려워 했다’라는 제목 하의 이 책 237쪽부터 251쪽에서 자신이 북한에서 이해 했던 광주 5.18에 대한 시각을 자세하게 밝혀 놓고 있다.(강명도도 5.18 당시 광주 현장 사진 분석 결과 현재 위장탈북자로 불리는 서울광수로 판독 됐다.)

‘광주에서 전쟁이 터졌다. 1980년 5월 18일 북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남조선에서 계엄군과 학생 시위대가 충돌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 조총련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한 중앙 TV가 매일 그 테이프를 방영한 것이다.(중략) 또 복면을 쓴 시민군이 탈취한 계엄군의 지프를 타고 시가지를 달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남조선에 파견된 간첩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김중린은 3호청사의 전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김중린은 당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대남비서였다. 김중린은 남조선에 구축해놓은 정보망을 총 가동해 사태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김중린이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양자 간의 갈등 관계를 증폭시킬 경우 이는 공화국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폭동이 광주에만 국한된 것이 문제라며, 만일 우리가 폭동을 남조선 전역으로 확산시킬 경우 대남사업의 결정적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김중린은 비교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김중린의 실책은 광주민주화운동 응용·활용보다 사태 파악과 분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것은 5월 18일이다. 그 후 사태는 22일에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5일 뒤인 27일 계엄군의 진압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은 종식됐다. (중략) 나는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당시 얘기를 당대외연락부 6과 지도원이었던 임만복을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강명도 1996, 237-240) (강명도는 당시 김중린이 광주에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중린은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이 밝힌 것처럼 제134광수다. 그는 북한의 스파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으면서 광주비정규전작전 총사령관으로 내려 왔다.)

이때는 간첩 손성모 등이 광주의 증심사와 전남 구례 천은사를 오가며 광주사태 공작을 하고 있었다(서울고등법원 88노1367). 그 천은사에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언비어 유인물을 작성한 김현장이 기거하고 있었다.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은 바로 손성모와 김현장의 관계를 밝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언비어 유인물이 어떻게 작성 됐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 ⓒ뉴스타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난 1982년에 발행된 북한 도서 ‘정호용에게 준 특수지령’이라는 책이다. 먼저 이 책 36~38쪽에 실린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광주 5.18 이틀 전인 5월 16일 전두환이 정호용 특전사령관에게 ‘광주살육작전’을 지시했다는 또 다른 유언비어를 담고 있다.

이는 88년 광주청문회에서 전두환이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결국 야당 국회의원 등이 희생양으로 정호용을 끌어들여 전두환 등 5공 세력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이런 시도가 우연의 일치라 해도 이미 북한에서 82년에 시나리오를 소설로 짜 두었던 것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잘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언비어 유인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 진실이 아닌 왜곡이거나 거짓말이라면 바로 이런 유언비어를 차단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 같은 유언비어들은 정치권으로 확산돼 결국 영호남의 갈등을 부채질 했고, 지금까지도 이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5.18 민주화운동특별법’개정안도 이런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뉴스타운>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의 북한 연계성에 의문점을 두는 것은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 전문사진 참조).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면 수단도 순수해질 수 없다.

새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이 적어도 국민통합을 주창하려면 바로 이런 의혹을 벗겨주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낙인처럼 남아 있는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을 호남과 광주 지역에서 걷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요구까지 법으로 재갈을 물리겠다면 국민은 국민의당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뉴스타운>의 이런 요구는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유인물 배포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일단 그 내용이 사실일 때만 정당함으로 먼저 국민의당이 유인물 작성자인 김현장에게 객관적 진실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허위사실을 기록해 유포한 것인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광주청문회 특위위원들도 5.18 재판을 한 법관들도 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듯 광주 5.18 유언비어들은 문서화 돼 있다는 것 때문에 정확한 고증도 없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딱지가 붙여져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됐다. 이런 사실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면 대한민국을 얼마나 웃기는 나라로 볼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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