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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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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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는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간신히 참았다.

“엄마, 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오래 사는 것은 너희들에게 짊만 되지. 어서 죽어야 하는데 그게 인력으로 잘 안되는구나.”
“엄마도, 오래 살아야 돼. 시간이 되는대로 자주 올게.”

연지는 엄마의 발을 씻어주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어쩐지 마지막일 것만 같은 예감이어서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전철 속에서 그녀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주말에는 훈이와 멀리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것만으로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단둘이 콘도에 가서 자기 손으로 밥을 해서 환한 얼굴로 같이 밥을 먹고 싶었다. 훈이가 좋아하는 매운탕을 끓이고, 상추쌈과 돼지고기에 김치를 넣고 볶아 쌈장을 듬뿍 발라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 연지는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저예요.”

연지는 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남편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훈이의 대답은 옛날같이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피하려는 듯했다.

“지금 시간 있어요?”
“당분간 우리 만나지 말자고 했잖아. 둘이 감옥가고 싶어?”
“감옥? 그게 무서우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우리 주말에 멀리 떠나요. 갔다 와서는 당신 마음대로 하시든지 말든지.”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지. 죽었으면 죽었지 당신을 버리지는 못해.’ 연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딸에게 멋진 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LA갈비를 사서 재고 딸이 좋아하는 부추부침개도 만들었다. 남편이 놀라면서 물었다.

“오늘 누구 생일인가?”

남편은 즐비하게 차린 음식을 보고 말했다.

“그냥 먹고 싶어서요. 우리 언제 고기 먹었던가요. 매일 아낀다고 고기 한 번 마음대로 먹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긴 해. 정말 없는 살림 사느라고 고생이 많소.”

남편은 미안한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연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 내일 친구들과 어딜 가요."

연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남편으로서는 누구하고 어딜 가느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해도 갈 사람이고, 누구하고 가느냐고 물어보았자 제대로 말해 주지 않을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 갔다 와요.”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난 연지는 잠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얼마만의 잠자리인지 모른다. 언제나 남편이 이불을 펴고 누워야만 잠자리에 들었고, 베개를 나란히 놓은 적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훈이라는 남자 때문에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잊으려 했다.

“정희 오기 전에 우리 한번 해요.”

연지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불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연지가 남편에게 한번 하자고 말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지는 남편에게 몸을 맡겼다. 오랜만에 아내의 몸에 손을 갖다 댄 남편은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정희가 오기 전에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좀처럼 발기가 되지 않아 애를 태웠다.

연지는 남편의 아랫도리에 손을 가져갔다. 좀처럼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주인을 몰라보네.”

연지는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손으로 했더니만…”

남편은 미안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하지 마요.”

연지는 포기하고 잠옷을 입었다. 바로 그때였다. 정희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하마터면 딸에게 들킬 뻔 했다. 연지는 옷을 입기 잘했다고 생각하고 베개를 들고 딸 방으로 건너갔다. 서지도 않을 거시기로 밤새도록 시달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딸은 피곤했는지 저녁도 먹지 않고 누웠다.

“정희야. 엄마 없어도 밥 차려 먹을 수 있지?”
“왜, 엄마 어딜 가?"
“응, 일이 잘되면 빨리 오고 그렇지 못하면 며칠 걸릴지도 몰라.”
“어딜 가는데?”
“돈 벌러.”

정희는 더 이상 묻질 않았다. 남편이나 딸은 돈이라면 그 다음 말에는 약했다. 가만히 생각해도 살면서 돈에 노예가 되어버린 식구들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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