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2%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음료수 광고 카피가 하나의 신조어를 만든 좋은 예이다. 더 심한 경우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들 수 있다. 고급예술의 대명사 오페라를 값싼 이미지로 전환시킨 경우이다. 또한 이것은 서머셋 모음의 소설 '달과 6펜스'의 계보를 잇는 다고 할 수 있다.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조갑제 기자의 '광주사태'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먼저 신화(명성)와 실체(저서)의 간극이었다. 1980년 당시 부터 당국이 발표하고 많은 국민들이 의문을 가진 외부 불순세력의 개입 여부를 근거없는 루머로 치부하면서, 정작 자신은 광주사태의 후반부인 80년 5.23-27일(5일간)의 현장 취재임을 밝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광주사태는 79.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야기된 79.12.12 군내 무력충돌, 80년 3월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 서리 겸임 등 정변 과도기의 위기 국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변이었다.
빛고을 광주ᆞ전남지역은 농민반란 동학의 근거지 이자 고려 이후 천년의 한을 가진 지역이다. 실지로 건국과 6.25 당시 제주 4.3 사태, 여순반란, 그리고 빨치산의 활동은 반체제적 지역정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조국근대화의 위대한 시대를 독재로 지속적으로 비난해온 야권지도자 김대중(DJ)의 정치적 고향이었다. 반체제적 지역정서와 지역지도자가 결합된 위험한 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대령의 '역사로서 5.18(1-3권 )'이 탁월한 점은 '5.18 광주사태' 전후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는 데 있다.(1권 1장과 2장 참조 ) 다시말해 사태의 맥락과 역사성을 연계시켜 상황을 보다 체계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광주사태'는 5.18의 중간기 이후의 짧은 취재경험과 이후의 에피소드를 버무린 것이다. 또한 '광주사태'를 '12.12'를 권력 탈취를 위한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정변에 대한 민주 회복으로 보는 시각도 보여준다.
'5.18 광주사태'에서 아직도 일반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계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의 시민들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당초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부대는 공수부대가 아니라 전투사단인 20사단이었다. 그러나 20사단은 기대와 달리 사단장을 비롯한 지휘부 차량들이 광주 톨게이트에서 낫과 도끼 등으로 무장한 50여명의 시민군(외부인)들에 의해 피습당하는 황당한 패닉에 빠졌다.
조갑제 기자가 계엄군의 가장 큰 잘못으로 지적한 것은, 특수전을 수행하는 공수단의 투입 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주사태는 초기부터 흑색 유언비어와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상식을 벗어나는 공격적이고 전문적 시위대의 존재로 계엄군도 사태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20사단의 실패는 당연히 최후의 군사력인 공수부대의 투입으로 이어졌고, 어이 없게도 특수전의 공수부대 마저 초기에는 난타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당시 20사단을 대체한 초기 투입 공수단은 수세 속에 극적으로 탈출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공수단중 가장 먼저 투입된(5.18일) 전북에 주둔하는 7공수 였다. 하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시민군에게 동료들이 다치자 그들은 시민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초기 강경대응은 예상과 달리 시민군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5.21일 시민군이 공수단이 지키는 도청을 접수한 것은 하나의 이변이었다. 18일 20사단 지휘부를 습격한 시민군은 20사단 지휘부 차량들을 통해 아시아자동차에서 360대의 군용차량을 징발하고, 이 차량들을 가지고 전남 지역에 산재한 40여곳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하고 마침내 최후의 방어선인 전남도청을 점거한 것이다. 심지어 당일 170명 사상범을 포함 2.700명 재소자가 있는 광주교도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정보학에 기초한다면 선전과 테러는 교전에 준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규모 특수공작군의 역할이 지역내 동조자들의 협조 속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점에서 5.18은 병영국가 북한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실지로 북한은 5.18 당시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광주사태를 실항 중계하였다. 또한 200명에 이른 사망자에도 북한군의 신원으로 밝혀진 것은 전무하다. 하지만 북한은 5.18을 자신들의 영웅적 쾌거로 자랑하기도 하였다. 또한 황장엽을 비롯한 수많은 탈북자들의 한결 같은 증언도 5.18 북한 개입에서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수논객이자 대기자를 자처하는 조갑제씨의 '광주사태'는 결론적으로 한국판 모나리자이다. 무엇보다 광주사태 루머와 싸운 33년 이야기라는 부제목과 달리 의혹에의 치열한 검증과 반증이 아니라 핵심적 의혹을 피한 내용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이제 5.18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지속적인 자료로 보완된 김대령 박사의 '역사로서 5.18(1-3권)'과 지만원 박사의 '5.18 분석 최종보고서'의 출간으로 본질적으로 위협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분석서로서 체계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기자로서의 직업의식도 실종되었고 보수로서의 기본가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가 위대한 극작가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졸작이었듯이 앞으로 최악의 오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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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한거시고 33년간 사기꾼 홍어들 편들맹시로 홍어도 얻어묵었겠지라.. 박정희 욕함시로 묵고 살다가
박정희 책팔아 돈버는 재주를 보랑께요.. 글쟁이면 글쟁이지 먼놈의 대기자다요? 큰대자 붙었응께
새끼몽키들보다 계급이 높다는 말이여? 대기자 좋아하요, 참말로.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