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길에서 도문, 용정, 백두산 유적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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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길에서 도문, 용정, 백두산 유적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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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독서사협회 10여년 실시해온 우리글 도서 전달 행사

 
 
 
 
 
 
 
 
 
 
 
 
 
 
 
 
 
 
 
 
 

지난 10월 12일부터 16일까지 대구남구 새마을회(김동원 지회장) 남녀 지도자 14명이 연길 조선문독서사협회(회장 조권옥)에 10여년 실시해온 우리글 도서 전달식 행사 후 도문, 용정, 백두산을 두루 구경하고 돌아왔다.

대구남구 새마을회 회원 일행들은 새벽 6시 대구공항에 집결 인천공항을 경유 중국 연길공항에 기착 연변 조선문독서사협회와 연변 청소년문화진흥회(회장 한석윤)에 우리 글 도서를 전달하고 조선문독서사협회, 청소년문화진흥회 발전을위한 기부금 전달을 겸한 유적 여행이었다.

오전에 연길 공항에 내리니 대구의 기온과는 조금 차이가 났다. 대구와 연길과의 저녁 기온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연길시 길거리 풍경은 고층 건물을 제외 대구의 7-80년대를 연상했다.

중국은 올림픽이후 대부분의 도시가 다 그렇지만 연길도 야간에 건물의 조명을 너무 휘황찬란하게 밝혀 야경이 너무 아릅답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연길시는 조선족 소수민족 자치구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그래서 연길시내의 모든 간판이나 건물표시 등 모든 표시물은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다.

그것도 한글(북한식)을 먼저 쓰고 뒤에 한자를 쓴다 모택동이 잘한 정책 중의 하나가 소수민족 우대정책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 연길 조선족 자치구는 인구가 감소하여 자칫하면 자치구가 취소될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이유로 한국 입국 절차가 간소해져서 중년들은 즉 외화벌이로 한국으로 빠져나가고 젊은이들은 취직을 위해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가 연길 자치구를 유지할 수 있는 절대 인구수가 부족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연변은 1952년 9월 3일 자치구로 지정되어 1955년 12월 자치주로 변경되었는데 연변자치주는 6개 시(투먼 图们, 둔화 敦化, 허룡 和龙, 용징 龙井, 훈춘 珲春)와 2개 현(왕칭 汪清, 안투 安图)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연변 자치주의 총 인구수는 약 227만 명이고 이 중에 조선족은 약 83만 명으로 36.5%를 점유하고 있는데 초기인 1953년의 70.5%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참고로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주는 소수민족의 인구 구성이 전체의 30% 미만이 되면 자치주가 강제로 해제될 수도 있다.

한중수교는 중국 동북 변방지역의 낙후한 농업지대에 불과하던 연변을 중국내 소수민족 자치지역 가운데서 손꼽힐 정도로 부유한 자치주로 탈바꿈시켰는데 한국에서 조선족이 벌어들여 송금하는 외화가 연변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족 인구감소의 첫번째 원인이 청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한국으로 떠난 때문이라고 한다.

 <도문 국경지대와 두만강>

도문강반(圖們江畔) 이란 중국측 표지석이 여기가 두만강 강가임을 알려준다. 두만강은 그렇게 넓지도 않고 위엄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한 여름 비가 온 뒤 물이 꽉 차서 흐르던 어린 시절 우리동네의 개천의 모습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어릴때 멱감고 놀던 그 하천 말이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젊은 시절, 술자리에 가면 누군가가 반드시 부르며 흥을 돋구던 노래 김정구 선생님의 "눈물젖은 두만강"이 여기다. 그러나 그림같이 느꼈던 그 뱃사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누런 강물만이 유유히 흐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 서사시인 김동환의 "국경의 밤" 1장도 이렇게 시작된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놓고/ 밤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무려 37장이나 되는 긴 서사시의 무대도 역시 두만강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는 두만강을 직접 접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민족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흐르는 강물 건너 저쪽은 볼 수는 있으나 우리 일행이 갈 수는 없는 곳 우리의 땅 공산 북한땅이었다.

여기가 상류라서 그런지 강폭은 너무 좁고 물살도 그다지 쎄 보이지 않아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쉽게 헤엄쳐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두만강 다리의 중국측 관문이다. 우리가 평소 티비 뉴스에서 많이 본 건물로 관문 우측에 중국 국기가 꽃혀있는 건물은 세관이다.

변경선(边境线)이라 표시된 바로 뒤 쪽은 북한 영역이라 우린 넘을 수 없다. 안내자가 시키는대로 다리 한쪽은 살짝 북쪽에 두고 한쪽은 중국 땅을 밟고 서서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구자의 혼이 숨쉬는 용정 龍井>

- 일송정과 해란강 -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학창시절에 우라가 즐겨 불렀던 가곡 "선구자"의 일절이다. 이 노래를 부르면 일제시대 저 넓은 만주벌판을 내달리던 독립군의 장엄한 모습이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로 연상되어 그 기개가 온 몸으로 전해온다.

그러나 일송정은 그 이미지 만큼이나 아픈고 슬픈 상처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일송정(一松亭)은 중국 길림성 연변 자치주 용정시에서 서남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비암산 정상에 우뚝 서서 일제시대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용정시를 굽어보고 있는 한그루 소나무와 정자를 말한다.

이곳에는 1938년도까지만 해도 수백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뎌온 아름들이 큰 소나무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송정이 용정 일대 구국 청년들의 항일운동의 요람이며 성지로서 주민의 관심과 칭송이 높아지자 일제는 정자를 없애고 옆의 소나무도 베어버렸다고 한다.

해방 이후 중국 용정시 정부는 1989년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소나무를 심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계속 잘리거나 말라죽고 현재 서 있는 소나무는 2003년에 9번째로 심은 것이라 한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용정중학교>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대성중학교 교사 건물이다. 학교 여교사 선생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는데 중국땅에 와서 비로소 일제시대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본다.

독립투사들이 세운 민족학교, 헤이그 밀사,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안중근 의거, 저항시인 윤동주에 대한 역사가 사진과 설명으로 전시되어 있어 민족의 혼을 일깨워 주고 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도 이렇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잘 정리하여 후대들에게 그 정신을 계속 이어주고 있는데 남한에 있는 우리정부는 독립운동에 대한 교육을 왜 수박 겉할기식으로 그렇게 대충 하는지 모르겠다.

<중국 조선족 시인이 된 윤동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나라 성인이면 누구나 아는 "서시"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작품이다. 그런데 요즘 연변에서는 이 서시를 지은 사람을 '중국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고 일컬고 교육하고 있다.

근래 복원 작업이 일부 완성된 윤동주 시인 생가 정문에 있는 바위에는 "中國朝鮮族愛國詩人尹憧柱故居"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다. 조선족은 한민족이지만 중국인이다. 여태껏 일제시대 한민족의 혼을 일께워 주었던 저항의 표상 민족시인 윤동주가 조선족 소수민족 중국인으로 표기되어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절대 다수일텐데도 시인의 생가 유적에는 한자와 영문 설명만 있을 뿐 한글 설명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도 중국이 추구하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감히 생각된다.

<동북공정이란?>

동북공정은 중국에서 볼 때 동북방향에 있는 3성(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옛날부터 중국의 영토라고 역사서에 총정리를 해둔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측 주장은? 고조선에는 기자조선이 있었는데, 중국의 주장은 “은(殷)· 주(周)왕조 후예들이 한반도에 건립한 지방정권으로서 후에는 모두 주(周)와 진(秦)의 해외속국”이라는 것이다.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는 증거는? 고구려의 주된 후손과 역사 강역이 우리민족에 있고 고구려인의 언어와 생활습관 풍습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한 고구려 대통을 이은 고려에서 조선이 나왔고 대한제국으로 변하여 현재 대한민국이 되었다.

고조선의 대통이 고구려등 3국으로 나뉘었다가 고려로 통합하여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다만 신라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구려 땅과 민족의 일부가 현 중국측인 당나라쪽으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바로 발해라는 나라로 변천되어 역시 우리민족의 얼을 계승하였고 그 지역도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구려인은 우리민족이다.

해결방법은? 이 문제에서는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계획을 세워 우리 후손에게 반드시 간도땅이 우리나라로 반환받아 돌아오게 해야 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순수한 한글로 우리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을 뿐 중국인을 위해 절대로 시를 짓지는 않았다 한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은 용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작품 활동 시기는 주로 평양(숭실중학)과 서울(연희전문)에서 보냈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화 하는 동북공정에 이어 민족 시인까지 중국인으로 변화시키다니 중국의 탐욕은 참으로 무섭다. 그런데 현지 조선족 동포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중국인으로 표기한 안내판 글을 보고 너무도 분하고 애통하고 서글퍼기도 했다.

중국정부의 치밀하고 꾸준한 소수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으로 조선족도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많이 약화된 것이고 민족성보다 국가관이 우선이라 어쩔수 없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는 영원히 민족의 저항시인으로 영원히 살아남아 있고 후세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이 바탕되어야 한다.

<백두산 천지와 장백폭포>

백두산은 이번이 첫번째 길이다. 백두산을 오르는 코스는 북파와 서파로 나눈다. 북파길로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두갈래다. 그 하나는 짚차를 타고 천문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또 하나는 장백폭포를 따라 만들어진 580여 계단을 따라 올라 달문을 거쳐 천지에 이르는 길이다.

몇 년 전 강호동의 출연한 1박 2일 팀이 이길로 천지에 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지금은 절벽이 무너져 토사로 계단이 막혀 이용이 금지되어 있다. 서파길은 완만한 고원으로 차를 이용치 않고 등산길로 넓은 광야 여기저기 피어 있는 야생화 군락지가 일품이란다.

우리 일행은 차량을 이용 북파로 올랐다. 북파길은 너무나 잘 알려진 길이라 사람이 너무 많고 혼잡스럽다. 정문에서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고 셔틀버스 타느라 대기하고 다시 또 짚차 타느라 대기하고 천문봉에 오르기 전에 거센 비바람을 만나 천문봉을 오리지도 못하고 끝내 좌절 하산했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천문봉을 오르지 못한 것은 불운이다. 우리 일행은 못내 섭섭함을 마음으로 삼키며 내년을 기약하며 장백폭포로 이동했다. 장백폭포가 햐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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