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보당국은 최근 한 달여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행태와 동선을 종합분석한 결과, 김일성·김정일 체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김 제1위원장의 의전행사, 군 수뇌부 인사 등 각종 국가 공식행사에서 절대 권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무모할 정도의 보여주기성 이벤트와 쇼, 기행을 이어가는 행태가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제시됐다. 북한·군사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정상적인 정치 작동시스템이 김정은 체제의 조기 붕괴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며 사태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북한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이 관측되는 민감한 시점에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13일 밤 방한한 것도 양국의 분석과 맞물려 예사롭지 않은 대목으로 평가된다.
클래퍼 국장은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사악한 검은 원숭이’ 등 극단적 인종 비하적 발언을 쏟아낸 북한의 비정상적 이상 징후와 관련해 한국 군·정보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제재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 처형과 고모 김경희 퇴진 이후 주변에 합리적인 조언을 해 줄 견제·후원 세력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다”며 “자신의 건재와 권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과대망상증으로 비칠 정도의 무모한 행보와 기행을 이어가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북한은 나라가 아니고 빨리 없어져야 한다”며 ‘김정은 체제’를 겨냥한 이례적인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0일 김정은 부부가 ‘고물 전용기’ IL-62를 이용해 평남 남포시 공군 지휘관 전투비행기술 경기대회를 관람하러 레드 카펫을 밟고 트랙을 내려오는 노동신문 보도 사진은 비정상의 압권으로 당국은 평가했다. 평양에서 남포시 온천비행장까지는 50㎞에 불과하다. 도로 사정도 괜찮은 편으로, 차로 가면 훨씬 빠르고 시간도 적게 걸리는데다, 경호상 부담도 덜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서양 의전 행사를 모방한 것은 김 제1위원장의 건재와 권위를 연출하기 위한 쇼였다는 것이다.
또 4월 15일 대장이었던 군 서열 2위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11일 만에 차수로 초고속 승진시킨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게다가 4월 26일 평양방직공장 근로자 합숙소 방문 당시 김 제1위원장은 황 총정치국장에게 “연회에 참가해 자신의 마음까지 합쳐 근로자들을 축하해주라”며 한복 입은 여성 근로자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게 한 사실도 공개됐다. 김정일 체제의 군 원로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변’의 연속으로 당국이 평가하는 이유다.
정보당국은 4월 15일 김 제1위원장이 전군 비행사대회와 관련해 “영공을 다 개방해놓고도 전군의 비행사들을 모두 평양에 불러 대회를 진행한다는 그 자체가 우리의 배짱과 담력의 승리, 기개의 승리”라며 큰소리친 것도 정상적인 시스템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로 진단했다.
김영수(정치학) 서강대 교수는 “과거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에게서 볼 수 있던 현상으로, 김 제1위원장의 무모한 과시욕을 말릴 측근도, 합리적인 견제 장치도 없는 탓에 북한 정치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 되지 않는 비정상적 징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