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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317호 조선 태조 어진을 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 어진으로 재지정해야
 김민수_
 2013-10-03 08:51:26  |   조회: 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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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317호 조선 태조 어진을 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 어진으로 재지정해야



고려국 국왕 청룡포(靑龍袍) 조선국 국왕 홍룡포(紅龍袍)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 황룡포(黃龍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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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참모습을 뜻하는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은 어용(御容)·수용(晬容)·성용(聖容)·왕상(王像)·어영(御影)·진용(眞容)·진영(眞影)·영자(影子)·영정(影幀)이라고도 하는데 1713년(숙종 39) 이후 어진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는 사신을 보내어 공양왕으로부터 선위받아 1392년 고려국 35대 국왕에 즉위한 사실을 명국(明國)에 알리고 명국 황제에게 고명(誥命)과 인신(印信)을 요청하였으나 여진문제와 조공문제에 불만을 가졌던 명국은 제후국을 승인하였지만 고명과 인신을 보내주지 않았다.대명 강경론자 정도전(鄭道傳)의 요동공략계획 등 명나라에 대한 강경책과 외교문서의 허물을 구실로 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는 1393년 2월 15일 조선국(1393-1897) 건국 이후에도 명국의 고명과 인신을 받지 못하고 고려국 권지국사(高麗國 權知國事) 칭호를 사용하고 고려국 국왕의 용포인 청룡포(靑龍袍)를 착용하였다. 국보 317호로 지정된 조선 태조 어진은 1392년 고려국 35대 국왕에 즉위한 직후 도사(圖寫)한 고려국 35대 국왕 이성계의 어진을 1872년에 모사한 것이므로 고려 국왕 이성계 어진으로 재지정해야 하며 1401년(태종 1)에 명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인신을 받아 조선국 왕호를 쓰고 세종 26년(1444) 부터는 조선국 국왕의 용포인 홍룡포(紅龍袍)를 입기 시작하였고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건국 후 고조 광무제가 황룡포(黃龍袍)를 입었다.





어진(御眞) 제작은 임금이 생존해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는 도사(圖寫), 임금이 돌아가신 후에 그리는 추사(追寫), 어진이 훼손되었거나 새로운 진전(眞殿)에 봉안하게 될 경우에 기존에 그려진 어진을 본 떠 그리는 모사(模寫)의 3종류가 있었다. 어진(御眞)은 곧 임금으로 생각하고 국가를 상징하였으므로 어진(御眞)의 제작을 위해서는 도화서(圖畵署) 화원 중에서 발탁하는 어용화사(御容畵師), 화원(畵員)과 공장(工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원과 세심한 배려가 따랐다. 어용화사(御容畵師)들은 용안(龍顔)을 담당한 주관화사(主管畵師), 어진 제작 시 용체(龍體)의 주요하지 않은 부위를 담당한 동참화원(同參畵員), 화채(和彩) 시 일을 도운 수종화원(隨從畵員)의 3부류로 나누었으며 참여 화원의 수는 대략 6인 정도였으나 13인에 이르기도 하였다. 어진(御眞)의 초본(草本)을 완성하면 비단 위에 먹으로 초본을 옮겨 그리고 비단 뒷부분을 채색하여 종이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을 하여 잘 말린 후 영정(影幀)의 네 가장자리를 두르는 4변회장(四邊回粧)을 한다. 임금의 참모습과 어긋나면 즉시 세본(洗本)하였다.







옥축(玉軸),옥축을 받치는 용두·낙영(絡纓)·홍사유소(紅紗流蘇)·봉안용 고리인 봉안색환(奉安索環)이 부착되고 마지막으로 어느 임금의 것이며 언제 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표제(標題) 작업이 끝나면 어진 제작이 완성되었다. 표제를 마친 어진(御眞)은 좋은 때를 택하여 진전(眞殿),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였으며 진전 봉안이 끝나면 어진 제작을 위하여 수고한 전원에게 논상(論賞)이 베풀어졌다.어진을 이안하거나 봉안할 때에 어진을 담아 두던 궤인 흑장궤(黑長櫃),전란이나 국가에 비상시 어진을 긴급히 대피하기 위하여 만든 원형 통인 흑장통(黑長筒)이 있다.태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하기 위하여 전주에 경기전(慶基殿),경주에 집경전(集慶殿),평양에 영숭전(永崇殿),영흥에 준원전(濬源殿),개성에 목청전(穆淸殿)을 건립하고 태조의 제사를 지냈고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봉안한 영희전(永禧殿)에 정조절, 한식절, 단오절, 중추절, 동지절, 납향절 등 영절에 제사드렸다. 어진(御眞)은 조선 태조,원종,영조,익종,철종 및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순종 융희제의 어진이 남아 있으며 경기전(慶基殿)에 봉안한 어진은 영희전(永禧殿) 봉안 어진을 1872년에 모사한 것이며 채용신(蔡龍臣)이 그린 고조 광무제 어진에 3정이 문란한 시대에 태어나 왕위에 오른 고조 광무제의 임자(1852)년 탄강과 갑자(1864)년 조선국 국왕 즉위를 기록한 고조 광무제의 호패(戶牌)가 그려져 있다.






1699년 윤7월 12일 숙종이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영희전(永禧殿)의 영정(影幀)을 이안(移安)할 적에 흑장궤(黑長櫃)에 넣어 신여(神轝)에 모시니, 이 것이 평시(平時)의 의위(儀衛)이다. 만일 긴급한 일이 있으면 어느 겨를에 의위를 갖출 수가 있겠는가? 옛 날 병화(兵禍)를 당했을 적에 선왕(先王)의 수용(晬容)이 차마 말 못한 변이 있기에 이르렀었으니,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나의 생각에는 별도로 하나의 흑장통(黑長筒)을 만들어서 평시에는 진전(眞殿) 뒤에 있는 별전(別殿)에 봉안(奉安)하고, 급난(急難)을 당했을 때에는 3조(三朝)의 수용(晬容)을 모두 통 안에다 봉안하여, 편의한 대로 배왕(陪往)하는 것이 실로 만전을 기하는 일이니, 품처(稟處)하게 하라.”하였다. 뒤에 예조(禮曹)에서 복계(覆啓)하여 봉행하였다.





1748년 1월 23일 영조가 도감 당상에게 명하여 여러 화사(畵師)를 데리고 입시하게 하였다. 영조가 말하기를, “신본(新本)과 구본(舊本)의 영정이 서로 비슷하게 된 연후에야 가마를 타고 돌아가는 회가(回駕)할 수 있다. 모발(毛髮) 하나라도 같지 않게 된다면 이는 화사(畵師)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나의 불효 탓인 것이다.”하였다. 1781년 8월 26일 정조가 각신(閣臣)을 소견하고 하교하기를, “내가 어진(御眞) 1본(本)을 모사(摹寫)하려 하는데 이는 장대(張大)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삼가 선조(先朝) 때를 상고하여 보건대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였는데 이 것이 곧 우리 조가(朝家)의 성헌(成憲)이 되어 있다. 지금 나의 이 거조는 실로 선조(先朝)께서 이미 행한 규례(規例)를 본받아 오늘날 소술(紹述)하는 뜻을 붙이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선조(先朝)께서는 21세 되던 갑오년에 1본을 모사하여 창의궁(彰義宮)에 봉안(奉安)하고 작은 것 1본은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였으며, 31세 되던 갑진년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이는 초본(草本)이었다. 40세 되던 계축년에 2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毓祥宮)에 봉안하였으며, 51세 되던 갑자년에 2본을 모사하여 1본은 영희전(永禧殿)에 봉안하고 1본을 만녕전(萬寧殿)에 봉안하였으며, 61세 되던 갑술년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정축년에 비로소 장황(粧䌙)하여 육상궁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창의궁에 봉안하였다. 71세 되던 계미년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였고, 계사년에 보령(寶齡)이 80세가 되자 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에 봉안하였다.



이렇게 반드시 10년을 기간으로 하였다는 것을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 나는 나이 22세에 명을 받들어 1본을 그렸었으나, 참모습과 어긋나는 것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즉시 세본(洗本)하여 버렸다. 금년부터 시작하여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여 선조(先朝)께서 어진(御眞)을 모사한 뜻을 본받도록 하겠다.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 것이 본래 그렇게 하여 온 고례(古例)인데, 선조(先朝) 계사년 이전에는 도감을 설치한 일이 없었다. 간혹 대신(大臣)과 척신(戚臣)·상방신(尙方臣)에게 명하여 감동(監蕫)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절약하려 한 성덕(聖德)을 볼 수 있다. 나도 또한 도감을 설치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번에 그림을 그린 뒤에는 규장각(奎章閣)에다 봉안하면 비용이 덜릴 뿐만이 아니라, 실로 고례(古例)를 원용(援用)하는 것이 된다. 나의 의견은 이러한데 제신(諸臣)들의 의견은 어떠한가?”하니, 정민시(鄭民始) 등이 대답하기를, “지금의 이 성교(聖敎)는 또한 겸손을 고집하고 폐단을 덜으시려는 성덕(盛德)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사체에 있어 존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자, 정조가 하교하기를, “나의 뜻은 있는 데가 있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하였다.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신한평(申漢枰)·김홍도(金弘道)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2013-10-03 08: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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