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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에게 물려죽는 호환(虎患)
 김민수_
 2013-06-27 08:38:07  |   조회: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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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에게 물려죽는 호환(虎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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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년 6월 12일 경상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안동 수군(安東 水軍) 정구지(鄭仇之)가 어느날 밤에 범에게 물려 가므로 아내 소사(召史)가 두 딸과 함께 쫓아가 만나서 몽둥이로 범을 때려 구지를 빼앗아 돌아와 치료한 지 10여일에 마침내 죽었다.” 하였다. 1431년 3월 5일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내 들으니, 풍양산(豐壤山)에 세 마리의 호랑이가 있다 하여 가서 이를 잡으려 하니, 병조로 하여금 군사를 뽑아 보내도록 하라.”하니, 지신사 안숭선 등이 아뢰기를, “호랑이란 짐승은 맹수(猛獸)이오니, 혹 강무(講武) 때에 요행히 이를 만나면 잡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오로지 호랑이를 잡기 위해 간다는 것은 실로 온당치 않사오니, 마땅히 진무(鎭撫)를 파견하여 잡도록 하소서.”하니, 세종이 그대로 따랐다.1469년 6월 22일 행 대호군(行大護軍) 정난종(鄭蘭宗)이 아뢰기를, “신이 살고 있는 용궁(龍宮) 등지에서는 맹호(猛虎)가 사람을 해쳐서 전후로 해를 입은 자가 10여 구(口)에 이르고, 또 이달 12일에는 신의 서족(庶族)의 종형제(從兄弟)인 얼종제(孽從弟) 정의(鄭義)가 그 가동(家僮) 수인과 더불어 대낮에 문(門)을 지키다가 해를 입었으니, 다른 고을 다른 마을에서도 해를 당한 자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를 잡는 자가 없으니 백성들이 매우 근심하고 있습니다.”하니, 경상좌도 절도사(慶尙左道 節度使) 임자번(林自蕃)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용궁 등지에 맹호가 사람을 해하여, 한 마을에서 상해를 입은 인구가 많아 10여 인에 이른 것은 매우 작은 사고가 아니니, 급속히 이를 잡도록 하라. 맹수의 피해가 이와 같은데도 이를 즉시 잡지 않은 것은 반드시 소재 수령(所在 守令)이 급급(汲汲)히 치보(馳報)하지 않은 소치이니, 아울러 속히 국문하여 아뢰라.”하였다.





1533년 2월 15일 중종이 전교하였다. “신무문(神武門) 밖 소격서(昭格署) 근처에 악수(惡獸)의 발자귀가 있다고 한다. 이 악수는 정해진 거처가 없어 왕래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 더구나 호표(虎豹)는 매우 재빠르고 신무문 밖은 항상 인적이 없으니, 궁성을 뛰어넘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궁성의 내장(內墻)의 문을 낮에는 닫고 밤에는 열어놓으므로 순시하는 자가 이 곳을 왕래할 때에, 악수가 숲속에 숨어있다가 사람을 해칠 폐해가 없지 않을 것이다. 겸사복(兼司僕)에게 군인을 거느리고 궁성 밖을 돌 때는 악수가 대내(大內)로 들어온 흔적이 있는가 살피게 하고, 궁성 안을 돌 때는 담을 넘어온 흔적이 있는가 살피게 하라.” 2월 16일 병조가 아뢰기를, “신무문 밖에서 악수(惡獸)의 자취를 찾아보았으나 나뭇잎이 많이 쌓여 악수의 자취가 있어도 추적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나무가 위는 울창하고 아래는 성글어서 만일 그 속에 무엇이 있을 경우 환희 볼 수 있으므로 악수가 여기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궐(宮闕) 안 동산에 새와 짐승을 기르는 원유사(苑囿司)의 종사관이 ‘지난밤에 악수가 인왕동(仁王洞) 입구에서 나와 백악산(白岳山) 너머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곧 군사를 동원하여 잡게 해야 하는데 악수의 자취가 분명하지 않고 또 밖으로 향하여 갔으므로 소재를 정확하게 몰라서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하니, 중종이 전교하였다. “악수가 한성을 나간 자취가 있으니 갑자기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여러번 탐색했어도 끝내 잡지 못했는데, 함정을 만드는 것이 소극적인 방법이기는 하나 그래도 짐승을 잡는데는 효과가 있다. 지금이라도 속히 원유사의 종사관에게 여러 곳에 함정을 설치하여 잡게 하라.”





1622년 11월 13일 표범이 창덕궁(昌德宮) 후원에 들어왔는데 왕이 훈련도감에 명하여 군사를 풀어 잡도록 하고, 이어 과일,채소 재배하는 원포사(苑圃司)에 명령하여 궁성 안팎의 산의 맹수들을 잡게 하였다.이후로 범과 표범을 잡은 일로 인하여 2품, 3품의 자리에 오른 자들이 매우 많았다. 1701년 12월 23일 강원도(江原道) 낭천현(狼川縣)에서 12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강원도 한 도에서 6, 7년 이래로 호랑이에게 물린 수효가 3백여 인의 많은 숫자에 이르렀으니, 또한 하나의 변이(變異)이다. 1702년 11월 20일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유(李濡)가 말하기를, “각도(各道)의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호환(虎患)은 실로 백성들의 해가 됩니다. 신이 듣건대, 호인(胡人)이 늘 사냥을 일삼기 때문에 사나운 짐승이 우리나라의 경계를 피해서 온다 하니, 만약 서북 지방의 변장(邊將)과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군병(軍兵)을 통솔하여 때때로 사냥하게 한다면, 포(砲)를 쏘는 것도 익힐 수 있고 호환(虎患)도 제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1703년 11월 26일 한성 근교(近郊)에 호환(虎患)이 극심하였으므로, 삼군문(三軍門)에서 포수(砲手)를 내어 호랑이를 잡도록 하였다. 묘당(廟堂)에서 말하기를, “무사(武士) 이정방(李廷芳)이 가장 용감하여 호랑이를 잘 잡는다고 이름이 났습니다. 청컨대, 서북인(西北人)을 모집하여 일대(一隊)를 만들고, 이정방으로 하여금 영솔하도록 하소서.”하니, 숙종이 그대로 따랐다.





1734년 9월 30일 사나운 호랑이가 횡행(橫行)하여 사람과 가축을 상해하였으므로 팔도(八道)의 정계가 거의 없는 날이 없었으니,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의 총계가 1백 40인이었다. 11월 13일 사헌부 장령(掌令) 윤지원(尹志遠)이 말하기를, “교하(交河)·파주(坡州)에 호환(虎患)이 극성을 부려 사람과 가축을 물어 죽이고 있습니다. 훈련도감(訓鍊都監)의 포수(砲手)를 보내어 특별히 호랑이를 사냥하여 잡도록 하소서.”하였다. 1735년 5월 29일 8도(八道)에 모두 호환(虎患)이 있었는데, 영동 지방이 가장 심하여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은 자가 40여 인에 이르렀다. 11월 27일 호랑이가 북부(北部)의 삼천동(三川洞) 굴 속에 들어가서 살았는데, 떼를 지어 다니면서 개와 돼지를 남김없이 물어갔고, 또 전 현감 박필부(朴弼傅)의 집에 들어와서 마굿간의 말을 물어 죽였다. 1736년 3월 7일 좌의정·우의정이 청대(請對)하였다. 영조가 인견(引見)하니, 김재로(金在魯)가 아뢰기를, “백련봉(白蓮峰)에 호랑이 자취가 있다고 합니다. 청컨대 성첩(城堞)을 수축(修築)하여 넘어 들어오는 것을 막게 하소서.”하였다. 1746년 4월 17일 강원 감사가 장계(狀啓)하여 도내(道內)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과 물에 빠져 죽고 불에 타 죽은 사람이 모두 84인이라고 한 것으로 인하여, 휼전(恤典)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1754년 7월 26일 왕세자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접하였다. 이 때 호환(虎患)이 더욱 심해지므로, 좌의정 김상로(金尙魯)가 각 고을의 진휼용(賑恤用) 미곡(米穀)인 상진미(常賑米)로 호랑이를 잡은 자에게 큰 호랑이는 쌀 4석(石)을, 중간 호랑이는 3석을, 작은 호랑이는 2석을 상주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1757년 10월 16일 공릉(恭陵)·순릉(順陵)에 호환(虎患)이 있었으므로, 포수(砲手)를 보내어 세 마리의 호랑이를 잡았다. 1769년 3월 24일 군문(軍門)의 장교(將校)를 불러서 호랑이를 사냥할 것에 대해 물었다. 이 때 기전(畿甸)에서 호환(虎患)이 있었는데, 호랑이가 여러 능에 많이 숨어 있으므로 여러 군문에서 사냥하도록 명하였다.1773년 12월 1일 돈의문(敦義門) 밖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1779년 3월 24일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의열묘(義烈墓)·의소묘(懿昭墓)의 경계(境界)가 너무 넓고 수목(樹木)이 울창하여 호랑이와 표범이 백성들이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자(垓子)의 안팎에 있는 수목들을 조금 베어낼 것을 청하니, 정조가 그대로 따랐다. 대사헌 서유경(徐有慶)이 상소하기를, “한성 밖의 호환(虎患)을 이유로 대신(大臣)이 두 묘(墓)의 나무를 베어낼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가령 호랑이와 표범의 걱정이 과연 묘역의 나무가 무성하여 숲을 이룬 것에 연유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무를 베는 일이 국내(局內)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니, 해자 둘레의 울창한 나무를 비록 제거한다고 해도 전국(全局)의 숲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장차 호랑이와 표범들이 제거되지 않은 채 부질없이 도끼질만 수고로울 뿐입니다. 이는 걱정을 예방하는 데는 도움이 없고 신중히 하는 데 흠결이 있게 되니, 바라건대 성명(成命)을 정지하소서.”하니, 정조가 비답하기를, “의소묘(懿昭墓)의 해자(垓子)를 획정(劃定)할 적에 능묘(陵墓)의 보수(步數)에 따라 차등을 두어 정한 제도가 아니고 단지 넓게만 한 탓으로 법규를 어겨 거의 절한(節限)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동도(東道)와 서도(西道)의 능침(陵寢)에 견주어 보면 폭과 둘레가 갑절이나 다섯 배 정도일 뿐만이 아니니, 융쇄(隆殺)시키는 의리에 있어서도 진실로 마땅히 분수에 넘친 참람함을 바로잡아야 한다. 더구나 도성에서 가까운 리(里)의 안과 법외(法外)의 봉산(封山)이 호랑이와 표범들의 소굴이 되고 있다는 것인가? 내가 비록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급급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존봉(尊奉)하는 일에 대해 어찌 경(卿)보다 뒤지겠는가?”하였다. 11월 3일 범이 한성 안에 들어왔다. 훈국(訓局) ·어영(御營)에서 범을 잡는 일 때문에 아뢰니, 정조가 하교하기를, “한성 안에 호환(虎患)이 있어서 찾아 잡게 하면 각영(各營)에서 군인을 1백여 리 안팎에 흩여서 오직 잡아바칠 것을 생각하므로 마을에 폐단을 끼치고 폐해가 닭과 개에 미치니, 이 것은 반드시 그러할 형세이다. 그러면 군인의 폐해가 맹호(猛虎)보다 심할 것이니, 이 뒤로는 한성 안에 범이 들어왔는데 놓친 것은 다만 가까운 곳에서 몰고 먼 곳에 보내어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지 말라.”하였다.1796년 11월 13일 응봉(鷹峰) 근처에 호환(虎患)이 있자 여러 군영이 한성 밖으로 나가 호랑이 사냥을 하겠다고 아뢰었는데, 정조가 전교하기를, “한성 밖에 호랑이가 출몰하는 것은 제 살 곳을 얻은 때문이다. 더구나 엄동설한의 사냥은 그 폐단이 맹수보다 심할 것이니 즉시 사냥을 그만두도록 하라.”하였다.





1872년 1월 7일 고조 광무제가 전교하기를, “지난 번 북로(北路)의 호환(虎患)으로 인하여 기제(祈祭)를 거행한 일이 있는데, 그 후의 보고에 의하면 놀랍고 참혹한 일들이 자주 있었다. 저 불쌍한 몇 고을의 백성들로 말하면 거듭 흉년을 겪어 생계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인데, 게다가 사나운 짐승에 의한 피해까지 입고 있으니 무슨 수로 남은 목숨을 보존하겠는가? 특별히 향축(香祝)을 내려주고 아울러 도내의 산과 강 등 여러 곳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게 하여 신령의 응답을 얻음으로써, 북쪽 지방 사람들을 걱정하는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리게 하라. 제문(祭文)은 대제학(大提學)을 시켜서 짓게 하라.”하였다. 1873년 9월 27일 창원부(昌原府)의 호환(虎患)을 당해 죽은 사람에게 휼전(恤典)을 베풀었다. 1879년 8월 24일 총융청(摠戎廳)에서, ‘북한산성(北漢山城)의 대동문(大東門) 안에 범이 들어와 사람을 물어 죽였으므로 장교를 시켜 아병(牙兵)을 데리고 가서 사냥하였습니다.’라고 아뢰었다. 1883년 1월 2일 금위영(禁衛營)과 어영청(御營廳)에서, ‘삼청동(三淸洞) 북창(北倉) 근처에 호환(虎患)이 있다고 하여 포수를 보내 잡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유시(酉時)경에 인왕산(仁王山) 밑에서 작은 표범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삼가 이것을 봉진(奉進)합니다. 범을 잡은 장졸(將卒)들에게 각 해영(該營)에서 전례를 상고하여 시상(施賞)하고 이어 사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2013-06-27 08: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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