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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차(大次) 소차(小次) 악차(幄次) 편차(便次) 막차(幕次)
 김민수_
 2013-05-23 21:54:58  |   조회: 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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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차(大次) 소차(小次) 악차(幄次) 편차(便次) 막차(幕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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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10월 5일 태조가 면복(冕服)을 입고 친히 술을 땅에 부어서 신(神)을 강림(降臨)하게 하고 제물(祭物)을 바쳐 제사지내는 관향(祼享)하고 작헌례(酌獻禮)를 행하니 세자가 아헌(亞獻)하고 우정승 김사형이 종헌(終獻)하였다. 제례를 마치고 대차(大次)에 돌아오자 중외(中外)의 조하(朝賀)를 받았다.1399년 11월 22일 정종이 태상왕의 막차(幕次)에 나가 문안하니, 태상왕이 정종으로 하여금 먼저 가게 하였다. 정종이 드디어 임금이 타던 수레 거가(車駕)를 움직여 초천(椒川)가에 머물러서 기다리니, 태상왕이 조금 뒤에 이르렀다. 정종이 태상왕께 용둔교(龍屯郊)에서 연향(宴享)하려 하니, 태상왕이 밤중에 바로 개경으로 들어갔다. 정종이 새벽에 거가를 움직여 뒤따라 태상전(太上殿)에 나갔으나 뵙지 못하고, 드디어 환궁하였다. 1400년 3월 4일 다야점(多也岾)에서 사냥하였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 막차(幕次)에 나아가 연향(宴享)을 베푸니 지극히 즐거워하다가 밤에야 파하였다.











1418(세종 즉위)년 11월 7일 예조에서 상왕 태종을 봉숭(封崇)하는 의식을 아뢰었다. “하루 전날에 유사(有司)가 책보안(冊寶案)을 근정전(勤政殿) 한가운데 설치하여 남쪽을 향하게 하고 전하의 배례(拜禮)하는 자리를 대궐 뜰 한가운데에 설치하여 북쪽을 향하게 하고 악차(幄次)를 대궐 뜰의 동쪽 가까운 곳에 설치하여 남쪽을 향하게 하고 수강궁(壽康宮) 전하의 대차(大次)를 외문(外門) 안에 설치하되 장소의 적당한 곳을 따르게 하고 소차(小次)를 대궐 동쪽 행랑에 설치하여 서쪽을 향하게 하였습니다.”11월 21일 예조에서 학교의 교육, 경영을 시찰하는 시학(視學)하는 날에 공자(孔子)인 문선왕(文宣王)에게 술잔을 드리는 의식을 아뢰었다. “진설(陳設)은 시학 하루 전날에 유사(攸司)가 문묘(文廟)인 묘전(廟殿)과 학당(學堂)의 안팎을 청소하고 호위사(扈衛司)에서 대차(大次)를 묘전 동문(東門)에 설치하여 남쪽을 향하게 하되 장소의 적당한 곳을 따른다. 11월 28일 예조에서 삭망(朔望) 때에 수강궁에 문안하는 의식을 아뢰었다. “기일(期日)에 앞서 유사(有司)가 대차(大次)를 수강궁 문 안에 설치하되 지세의 적당한 곳을 따라서 설치하고 소차(小次)를 전의 안마당의 동쪽 가까운 곳에 서쪽을 향하여 설치한다.”









12월 17일 예조에서 능(陵)에 참배하는 의식을 아뢰었다. “장차 능에 참배하려 하면 유사(攸司)가 교지(敎旨)를 받들어 안팎을 단속하여 각기 그 직책을 보살피게 하고 능에 참배하기 3일 전에 전하가 별전(別殿)에서 마음을 재계하고 모든 행사하는 집사관(執事官)과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는 여러 관원은 모두 깨끗이 재계하고 일제히 정침(正寢)에서 잠을 자고 행사하기 2일 전에 대신(大臣)을 보내어 태묘(太廟)에 고한다. 1일 전에 충호위(忠扈衛)에서 대차(大次)는 능소(陵所)의 가까운 곳에 설치하고 소차(小次)는 능실(陵室)의 곁에 설치한다.”12월 20일 예조에서 계하였다.“전하께서 수강궁에 조회하는 의식과 상수(上壽)하는 의식을 삼가 상정(詳定)하여 아뢰옵니다. 탄일(誕日)·정조(正朝)·동지(冬至)·조하(朝賀)의 의식은 기일 전에 유사가 수강궁 궁문 안에 대차를 설치하되 지세(地勢)의 적당한 곳을 따라 배설하고 소차를 전 안뜰 동쪽 가까운데에 설치하여 서쪽을 향하게 한다.”1421년 12월 23일 충호위(忠扈衛)에서 왕세자의 편차(便次)를 문묘(文廟) 문 밖에 서향하여 설치하였다.1448년 8월 28일 충호위(忠扈衛)가 왕세손(王世孫)의 편차(便次)를 문묘(文廟) 동쪽 문 밖에 서향하여 설치한다.









1462년 10월 6일 어가(御駕)가 비론석현(非論石峴)에 이르러 행진(行陣)하는 것이 정돈되지 못하였으므로 명하여 부장(部將)·통장(統將) 등의 갓을 벗기도록 하였고 이준생(李俊生)이 영솔하는 위군(衛軍)도 또한 정제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준생의 갓을 벗기도록 명하여 의금부(義禁府)로 보냈다. 어가가 녹양평(綠楊平)에 이르니 백관(百官)이 무신(武臣)이 전시에 임금을 호종할 때에 입는 군복인 융복(戎服) 차림으로 와서 맞이하였고 우이동(牛耳洞) 앞 언덕에 이르니 왕세자(王世子)가 와서 알현(謁見)하였다. 세조가 주정 악차(晝停 幄次)에 들어가자 중궁(中宮)이 풍정(豐呈)을 올리므로 2품 이상에게 시연(侍宴)하도록 명하였다. 파진(罷陣)을 명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물러가서 살곶이 들에 주둔하게 하고, 병조 판서 윤자운(尹子雲)에게 명하여 점검하고 사열하는 점열(點閱) 한 뒤에 파(罷)해 보내되 만약 몸을 피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軍法)으로써 논(論)하게 하였다. 해가 저물어서 환궁(還宮)하였다.







1516년 6월 29일 중종이 정원(政院)에 전교하였다. “내가 신주가 계신 곳을 아직 모르므로 문소전 근처에 막차(幕次)를 설치하고 대신을 나누어 보내어 찾게 하고자 하였으나 후세에서 금세를 보더라도 어찌 지금 하는 일을 옳다고 여기겠는가! 정부(政府)의 대신을 불러서 내 뜻을 물으라.”1669(현종 10)년 9월 28일 신덕왕후의 옥책과 금보를 받들어 경덕궁 읍화당 중문 밖 악차(幄次)에 모셨다. 비로 인해 춘추관(春秋館)으로 옮겨 모셨다가 다음 날 비가 개자 다시 악차에 봉안하였다. 1817년 3월 11일 왕세자가 문묘의 동문 밖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편차(便次)에 들었다. 작헌례를 행할 때가 되자 세자가 학생복으로 갈아입고 편차에서 나왔다. 1827년 9월 10일 왕세자가 익선관(翼善冠)·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편차(便次)에 들어갔다. 1828년 2월 12일 왕세자빈은 예복을 갖추어 입고 편차(便次)에 들어왔고, 왕세자는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소차(小次)에 들어왔다.







1870년 3월 17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순릉(順陵), 태릉(泰陵), 명릉(明陵)의 정자각은 이미 헐어버렸습니다. 순릉의 기신제(忌辰祭)는 4월 15일이고, 태릉의 기신제는 4월 7일이며, 명릉의 기신제는 3월 26일인데 정자각의 수리가 그 전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우려가 있습니다. 정자각 터에서 조금 윗자리에 악차(幄次)를 설치하여 기신제를 설행(設行)하도록 해당 각사(各司)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고조 광무제가 윤허하였다.1872년 9월 20일 모사한 태조(太祖)의 영정(影幀)을 경기전(慶基殿)으로 받들고 나아갈 때 고조 광무제가 영희전(永禧殿)에 나아가서 전알(展謁)하고 이어 숭례문(崇禮門) 안으로 나아가서 영정을 실은 신연(神輦)을 공경히 전송하였다. 막차(幕次)에서 영정을 모셔가는 대신인 홍순목(洪淳穆)과 예조 판서(禮曹 判書) 이승보(李承輔)를 소견(召見)하고 하교하기를,“어진(御眞) 2본을 모사하여 몇 달 동안 받들고 있으면서 다시 뵙고자 하는 정성을 조금 위로받을 수 있었다. 경기전의 어진을 이제 먼 곳으로 모시고 가게 되었으니 서글프고 그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하였다.







1877년 12월 6일 통명전(通明殿)에서 진찬(進饌)을 거행하였다. 고조 광무제가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 차림으로 소차(小次)에 들어갔고 세자는 머리는 쌍동고(雙童䯻)로 하고 그 위에 공정책(空頂幘)을 쓰고 곤룡포 차림으로 소차에 들어갔으며 명성황후는 머리꾸미개를 하고 적의(翟衣) 차림으로 소차에 들어갔고 대왕대비 전하는 머리꾸미개를 하고 적의 차림으로 대차(大次)에 들어갔다. 시간이 되자 여집사(女執事)가 세자에게 소차에서 나와 절하는 자리에 들어가 북쪽을 향하여 설 것을 청하였고, 여관(女官)은 명성황후에게 소차에서 나와 절하는 자리에 들어가 북쪽을 향하여 설 것을 청하였다. 여집사는 고조 광무제에게 소차에서 나와 절하는 자리에 들어가 북쪽을 향하여 설 것을 청하였으며 상의(尙儀)는 대왕대비 전하에게 대차에서 나올 것을 청하였다. 음악이 연주되자 상궁(尙宮)이 앞에서 인도하여 어좌(御座)로 올라갔다. 1882년 1월 10일 왕세자(王世子)가 선인문(宣仁門)을 나와 문묘(文廟)의 연을 내리는 곳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남여를 타고 편차(便次)에 들어갔다. 1894년 2월 7일 고조 광무제가 강녕전(康寧殿)에 나아가 외진연(外進宴)을 행하였다.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막차(幕次)에서 나와 자리에 오르고 왕세자(王世子) 및 종친(宗親),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예(禮)를 행하였다.
2013-05-23 21: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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