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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王世子) 관례(冠禮)
 김민수_
 2013-05-20 08:21:38  |   조회: 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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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王世子) 관례(冠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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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1월 20일 고조 광무제가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관례(冠禮)의 절차를 주관하는 빈(賓)과 빈(賓)을 보좌하는 찬(贊)에게 명하여 왕세자(王世子) 관례(冠禮)를 정조가 문효세자를 위해 건립한 세자궁이며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대리청정을 한 동궁(東宮)인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하게 하였다. 이어 중희당(重熙堂)에 나아가 왕세자의 왕세자로 책봉된 뒤 부왕을 찾아 뵙는 조알례(朝謁禮)를 받았다. 고조 광무제가 조하(朝賀)에 나올 때 쓰던 관(冠)인 원유관(遠遊冠)과 조하(朝賀) 때에 입던 붉은 빛깔의 예복(禮服)인 강사포(絳紗袍)를 갖추어 입고 자리에 올라가 앉았다. 관례(冠禮)의 절차를 주관하는 빈(賓) 이하 관리들은 동문 중양문(重陽門)을 경유하여 뜰로 들어와 예를 행하였다. 임금이 내린 명령인 교서(敎書)를 전하는 전교관(傳敎官)이 교서(敎書)를 선포하기를, “오늘 세자(世子)에게 관(冠)을 씌우니 경들은 이 일을 받들어 시행하라.” 하였다. 빈(賓) 이하 관리들이 예를 행하였다.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에 반포(頒布)하는 교문(敎文)을 읽던 임시(臨時) 벼슬인 선교관(宣敎官)이 교서함(敎書函)을 가져다 빈에게 주니 빈이 꿇어앉아서 받았다. 빈과 찬은 동문 중양문을 경유하여 나갔다가 예가 끝나자 대전(大殿)의 안인 대내(大內)로 돌아갔다.





왕세자(王世子) 관례(冠禮)를 동궁(東宮)인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하였다. 왕세자(王世子)는 관례 전에 착용하던 위가 뚫린 관모(冠帽)인 공정책(空頂幘)을 쓰고 아청(鵝靑) 빛깔의 깃이 곧고 소매가 넓은 웃옷인 아청직령(鴉靑直領)을 입고 가는 띠 양끝에 술이 달려 있는 조대(條帶)를 띠고 올라와 앉았다. 예식(禮式) 절차를 맡은 임시 벼슬인 예모관(禮貌官)이 왕세자에게 일어나서 좌석 앞에 설 것을 청하였다. 종친(宗親)들과 2품 이상의 문무(文武) 관리들이 전당(殿堂) 안에 나아가 재배를 하였다. 왕세자가 올라가 앉았다. 종친들과 3품 이하의 문무 관리들이 자리에 나가서 재배를 하였다. 세자시강원의 정1품 관직인 사(師), 부(傅), 정2품 빈객(賓客)이 들어와 자리에 나아갔다. 왕세자는 동쪽 섬돌로 내려와 뜰 동쪽의 절하는 자리에 가서 재배를 하였다. 사, 부, 빈객이 답례로 재배를 하였다. 왕세자(王世子) 주인(主人)이 뜰 서쪽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재배를 하였다. 왕세자가 답례로 재배를 하였다. 주인은 이극문(貳極門) 안에 중화문(重華門)이 있고 이극문(貳極門) 밖에 나가서 빈을 맞이하였다. 빈과 주인은 읍하고 이극문(貳極門),중화문(重華門)으로 들어왔다. 빈은 교서함을 받들어 안(案) 위에 놓았다. 예모관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교서(敎書)를 받는 자리에 나가 북쪽을 향하여 서서 4배(四拜)를 하였다. 빈이 교서가 있다고 하자 왕세자는 무릎을 꿇었는데 빈이 교서를 선포하기를, “왕세자에게는 좋은 날 선대의 규례를 따를 것을 하교하며, 영의정 서당보(徐堂輔)에게는 궁전에 나가 의식을 거행할 것을 명하노라.” 하였다. 교서 선포가 끝나자 왕세자는 4배를 하였고 빈객은 빈의 앞에 나가서 꿇어앉아 교서를 받아서 물러나와 왕세자에게 주었다.





왕세자는 꿇어앉아 교서를 받아가지고 예모관에게 주었다. 예모관은 꿇어앉아 받아서 함(函)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었다. 왕세자는 동쪽 섬돌로 올라가서 동쪽채의 휘장(揮帳) 안인 유내(帷內)로 들어갔다. 사, 부와 빈객은 전당 윗자리로 각각 들어갔다. 빈은 서쪽 섬돌로 올라가고 주인(主人)은 동쪽 섬돌로 올라갔다. 주인과 찬관(贊冠)은 왕세자를 인도하여 나와서 관석(冠席)에 섰다. 빈과 찬관이 갓끈과 빗인 이즐(纚櫛) 두 상자를 관석(冠席) 남쪽에 놓았다. 빈이 읍하자, 세자가 자리에 올라가 서쪽을 향하여 앉았다. 빈과 찬관이 자리 앞에 들어와 빗을 올리니 왕세자가 쥐었다. 첫번째로 관(冠)을 씌우는 사람은 서쪽 섬돌로 올라오고, 빈은 한 등급 내려가 받아가지고 왕세자 자리 앞에 들어가서 축하하기를, “좋은 달 좋은 날에 비로소 관을 씌우는 의식을 거행하니, 어릴 때의 생각은 버리고 덕을 완성하는데 삼가할 것이며 장수하여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였다.





빈은 꿇어앉아서 익선관(翼蟬冠)을 씌워주었다. 왕세자가 일어나자 빈이 읍하였다. 왕세자 주인과 찬관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쪽 휘장(揮帳) 안인 유내(帷內)에서 곤룡포(袞龍袍) 차림을 하고 나오니, 빈이 읍하였다. 왕세자가 자리에 올라갔다. 두 번째로 관(冠)을 씌우는 관리가 서쪽 섬돌로 올라갔다. 빈이 두 계단을 내려와서 받아가지고 왕세자의 자리 앞에 가져갔다. 축하하기를, “좋은 달 좋은 날에 훌륭한 옷차림을 하였으니, 몸가짐은 공경스럽고 의젓하여 덕을 밝혀 만년을 장수하고 영원히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였다. 빈과 찬관이 자리 앞으로 나아가 첫 번째로 썼던 관을 벗겼다. 빈은 이어 꿇어앉아서 원유관(遠遊冠)을 씌워주었다. 왕세자가 일어나자 빈이 읍하였다. 왕세자 주인과 찬관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쪽 휘장(揮帳) 안인 유내(帷內)에 가서 강사포 차림을 하고 규를 잡고 나왔다. 빈이 읍하였다. 왕세자가 자리에 올라가자 세 번째 관을 든 사람은 서쪽 섬돌로 올라오고 빈은 세 계단을 내려가서 받아가지고 세자의 자리 앞에 올렸다. 축하하기를, “올해의 정월에 관을 씌우는 의식을 모두 하였으니, 덕을 완성시키고 만수무강하여 하늘이 내린 경사를 받기 바랍니다.” 하였다. 빈과 찬관이 자리 앞에 나가 동쪽을 향하여 꿇어앉아서 두 번째 관을 벗겼다.





빈은 꿇어앉아서 면류관(冕旒冠)을 씌웠다. 왕세자가 일어나자 빈이 읍하였다. 왕세자 주인과 찬관은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쪽채의 휘장(揮帳) 안인 유내(帷內)에 가서 면복(冕服)차림을 하고 규를 잡는 집규(執圭)하고 나왔다. 자리에 가서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사옹원(司饔院) 부제조(副提調)가 술을 따르니 빈이 술을 받아서 왕세자 자리 앞에 올렸다. 축하하기를, “단술을 드리니 절을 하고 받아 제사를 지냄으로써 상서(祥瑞)를 정하고 하늘의 뜻을 이어 잊지 말며 장수할 것입니다.” 하였다. 축하가 끝나자 꿇어앉아 술을 드리니, 왕세자가 술을 받았다. 빈과 찬관이 음식을 받들어다가 대자리 앞에 차려 놓았다. 왕세자가 제사술을 맛보았다. 빈과 찬관이 음식상을 내갔다. 왕세자가 자리에서 내려와 남쪽을 향하여 재배를 하였다. 빈이 답례로 재배를 하였다.





예모관이 세자를 인도하여 서쪽 섬돌로 내려와 남쪽을 향하여 섰다. 빈이 ‘자(字)’를 조금 올리면서, “의식절차가 이미 갖추어 졌습니다. 좋은 달과 훌륭한 날에 ‘자’를 고하였으니, 군자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응당 받아서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하교를 받은 자(字)는 00입니다.” 하였다. 왕세자가 재배를 하고, “내가 비록 변변치 못하지만 어찌 받들지 않겠는가.” 하였다. 또 재배를 하였다. 예모관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쪽 섬돌로 내려와 서쪽을 향하여 서서 재배를 하였다. 사, 부와 빈객이 답례로 재배를 하였다. 세자가 동쪽 섬돌로 올라가 절하는 자리로 나갔다. 종친들과 2품 이상의 문무 관리들이 전당(殿堂) 안에 올라가서 재배를 하였다. 왕세자가 올라가 앉자 종친들과 3품 이하의 문무 관리들이 절하는 자리에서 재배를 하였다. 예가 끝나자 왕세자는 자리에서 내려와 대전(大殿)의 안인 대내(大內)로 돌아갔다. 고조 광무제가 익선관(翼蟬冠)에 곤룡포(袞龍袍) 차림으로 자리에 올라갔다.





왕세자가 면복(冕服)차림으로 임시로 설치해놓은 작은 막(幕)인 소차(小次)로 나왔다. 예식(禮式) 절차를 맡은 임시 벼슬인 예모관(禮貌官)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문으로 들어가 전당 앞자리에 나아가 북쪽을 향하여 섰다. 예모관이 허리를 굽히고 4배할 것을 청하자 왕세자가 4배를 하였다. 좌승지(左承旨) 김경균(金敬均)이 경계할 내용에 대한 교문을 선포하기를,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고 사랑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며 사람들을 의롭게 부리며 사랑으로 키울 것이다.” 하였다. 임금이 내리는 교서(敎書)인 교문(敎文) 선포가 끝나자 왕세자가 4배를 하고 조금 앞으로 나서서, “신이 변변치 못하지만 어찌 공경스럽게 받들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어 자리로 돌아와 4배를 하였다. 예모관이 왕세자를 인도하여 나가자 임금은 대전(大殿)의 안인 대내(大內)로 들어갔다.
2013-05-20 08: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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