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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주석이 국무회의를 개최한 경교장(京橋莊)
 김민수_
 2013-03-01 09:09:17  |   조회: 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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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주석이 국무회의를 개최한 경교장(京橋莊)






http://blog.naver.com/msk7613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897년 10월 12일 백악(白岳:북악산)과 목멱(木覓: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 황단(皇壇)에서 천제(天祭)를 봉행하고 대한국(大韓國) 1대 광무제에 등극하며 천하에 고구려·백제·신라의 3한(三韓)을 아우른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므로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천명하여 대한시대(大韓時代:1897- )가 시작되어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국호 및 영토,영해가 1919년 4월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계승되었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919년 1월 21일 아침 조직화,체계화되어가는 대한국(大韓國) 광복운동(光復運動)에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 총독부의 독살에 의해 경운궁 함녕전에서 붕어(崩御)하였는데 2·8 대한광복선언,경운궁 대안문·고조 광무제 어극40년칭경기념비전·보신각·원각사지 앞 3·1 대한광복운동의 배경이 되었다.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일본제국주의 통감부에 의해 강제로 양위당한 고조 광무제는 정미대한독립운동,대한인국민회,대한독립의군부,대한광복군정부 등 대한광복운동의 상징적 구심점이었으며 대동단,신한혁명단이 고조 광무제를 망명시켜 대한국(大韓國) 광복운동(光復運動)을 활성화하려 하였고 고조 광무제는 고액의 내탕금(內帑金)을 지원하는 등 대한국(大韓國) 광복운동(光復運動)을 적극 지원하였다. 최팔용(崔八鏞)이 청년독립단 발족을 기독교청년회관의 재일 대한국 유학생 600여 명 앞에서 선언하고 이광수(李光洙)가 2·8대한광복선언서를 기초하였으며 백관수(白寬洙)가 2·8 대한광복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는 3·1 대한광복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상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규식(金奎植)의 지시에 따라 조소앙(趙素昻)이 동경에 파견되어 재일 대한국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대한(大韓) 병탄(倂呑)이 대한국인의 의사와 반하는 것이므로 대한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대한국인의 정당한 의사를 발표하라며 대한국인의 대한광복운동을 촉구하였다. 1919년 1월 일제 총독부에 의한 대한국(大韓國)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에 의해 촉발된 2·8 대한광복선언은 3·1 대한광복운동,6·10 대한광복운동,11·3 대한광복운동,한성정부,대한국민의회,상해정부,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대한국(大韓國) 광복운동(光復運動)의 기폭제가 되었고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대한국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아 1910년 경술늑약(庚戌勒約)으로 병탄(倂呑)당한 국권을 회복하는 대한(大韓) 광복(光復)을 하였으며 1948년 자주독립적인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3·1 대한광복운동은 천도교인, 기독교인, 불교도인이 모두 함께 대표로 참여하였다. 최남선이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기초하였으며 최남선의 초안에 이광수가 교정을 보고 한용운이 공약 3장을 덧붙였다.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대한국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그들은 태화관(泰和館)에서 대한국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오후 2시에 태화관과 300미터 떨어진 원래 약속 장소였던 원각사 터에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당황하였으나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오후 3시경에 보성법률상업보통학교 학생 강기덕,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그리고 한위건이 민족대표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거사시간에 기약하지 않고 모인 학생이 천여 명이었고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만세소리가 울려퍼지고 자그마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처럼 쏟아졌다. 모인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허공에 던지며 미친 듯이 기뻐하였다. 한성과 지방의 백성들도 합세하여 수십만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시위 군중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을 하였는데 한 갈래는 보신각을 지나 숭례문 쪽으로 향하고 한 갈래는 매일신보사 옆을 지나 대한문을 향하였다. 대한문에 이르른 군중을 이끌던 사람이 경운궁의 혼전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계속 만세를 불렀다. 시위행진은 한성을 8개구로 나누어 길을 가면서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대한 독립 만세(大韓 獨立 萬歲)", "대한 독립정부를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계속 진행하여 돈의문을 돌아 세종대로를 지나 미국 영사관에 이르렀다. 이때 어느 학생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써 '대한 독립(大韓 獨立)' 4자를 써서 앞에 들고 군중을 인도하니 미국 영사는 문을 열어 환영하고 깊은 동의를 표했다. 한 사람이 일어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독립의 주지를 연설하고, 종로에 이르러 다시 연설을 벌이자 일본 헌병과 기마병들은 칼을 휘두르며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군중들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물러가지 않다가 6시가 되어서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 일제 총독부는 독립단을 수색하고 체포하여 투옥하였는데 그 숫자가 1만여 명에 이르렀다.







1919년 3·1대한광복운동 후 4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국인 천여 명과 신한청년당이 주축이 되어 29인의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제헌의원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으며 4월 10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개원 회의에서 국호는 대한(大韓)으로, 정체(政體)는 민주공화제를 의미하는 민국(民國)으로 각각 의결함으로써 1919년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원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1조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으로 함’이라 천명함으로써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2차 의정원 의원 57인이 참석하여 의정원 의원을 선출했으며 의장은 이동녕, 부의장은 손정도를 선출했다.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은 법률안 의결, 임시 대통령 선출 등 국회와 같은 기능을 했다.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은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선거를 통해 국무원(國務員)을 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國務員) 행정수반인 국무총리(國務總理)에 이승만(李承晚)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 외무 김규식, 군무 이동휘, 재무 최재형, 법무 이시영, 교통 문창범 등 6부의 총장을 임명한 뒤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고 한성(漢城)에는 한성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연해주에는 대한국민의회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9월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되었고 이승만(李承晚)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통치권자 국가 원수(國家 元首)인 대통령(大統領)으로 선출하였다.







경교장(京橋莊)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129호로 서울시 종로구 평동 108-1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 슬라브 건물이며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할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金九)가 남북분단을 막고자 1948년 남북협상을 추진한 곳이며 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가 서거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이다.조선국(1393-1897) 도읍 한성(漢城)의 돈의문 터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교장(京橋莊)은 1938년 12월 15일 완공 당시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백범 김구가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한국광복군이 미군특수부대(OSS)와 국내정진을 계획하고 침투훈련 중에 8ㆍ15 대한국 광복이 되었고 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격으로 귀국해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를 재수립하기로 결의했다. 미 군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격으로 입국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임정 요인들의 귀국이 지연되었고 결국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는 조건으로 1945년 11월 23일 1차 귀국했으며 12월 1일 임정 요인들이 2차 귀국해 역사적인 첫 국무회의가 12월 3일 경교장(京橋莊)에서 개최됐다. 이후 경교장에서 수시로 국무회의가 개최됐고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信託統治)가 결정되자 12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경교장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을 주도하며 12월 31일 임시정부 내무부 포고령을 선포하고 미 군정에 행정권의 이양을 요구하기도 했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8년 4월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단일 정부 수립을 위해 평양으로 가서 북한 측 정치 지도자들과 협상하였고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安斗熙)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몰래 살해하는 암살(暗殺)당하였다.
2013-03-01 0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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