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2026년도 신라 동해안 3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국제학술대회’ 개최

- 17일 라한호텔 포항서 한·중·일·베트남 4개국 석학 모여 학술 가치 논의 - 2029년 유네스코 최종 등재 목표…연내 국가유산청에 신청서 제출 예정

2026-09-14     이상수 기자

포항과 울진에 남아 있는 6세기 초 신라 금석문 3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 검증대에 오른다. 세 비석은 왕이나 전쟁의 업적보다 재산분쟁과 지방통치, 사회질서 유지 과정을 기록하고 있어 1천500여 년 전 신라 사회의 실제 운영방식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포항시와 울진군은 오는 17일 라한호텔 포항에서 ‘2026년도 신라 동해안 3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경북문화재단이 행사를 주관하며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4개국 연구자들이 참여한다.

등재를 추진하는 대상은 국보 ‘포항 냉수리 신라비’, ‘포항 중성리 신라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다. 포항시와 울진군은 지난해부터 경북문화재단 문화유산원과 함께 세 비석을 ‘신라 동해안 3비’로 묶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세 비석의 가치는 단순히 오래됐다는 데 있지 않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2009년 발견된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비로, 비문 203자를 통해 신라 관등제와 6부의 내부 구조, 지방통치, 분쟁 해결 절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건립 시기는 501년설과 441년설이 있으나 501년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는 지증왕 4년인 503년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에는 한 인물의 재산과 상속을 둘러싼 다툼에 대해 중앙 귀족들이 합의해 해결한 내용이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이 비석을 재산분배 사실을 확인하는 증명서 성격의 기록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비문은 모두 231자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법흥왕 11년인 524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8년 국보로 지정됐다. 이 역시 신라의 지방지배 방식과 법 집행, 당시 사회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세 비석 모두 현재 국가유산 체계에서 ‘기록유산·금석각류·비’로 분류돼 있다.

특히 중성리비와 냉수리비가 재산을 둘러싼 분쟁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까지 돌에 남겼다는 점은 당시 신라가 국가의 결정을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공표하고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왕실 연대기나 후대 편찬 사서와 달리 실제 사건이 발생한 당시 새긴 동시대 기록이라는 점도 사료적 의미를 높인다.

이번 학술대회는 세 비석의 가치를 한반도 내부에 한정하지 않고 동아시아 금석문 문화와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 연구진은 동해안 3비의 내용과 고구려 금석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중국 연구자들은 고대 비지문화의 기원과 위진남북조 시대 비석의 변화를 다룬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금석문 사례를 중심으로 비교 논의를 진행하고, 베트남 연구진도 고대 묘비 자료를 통해 신라 비석과 동아시아 기록문화의 공통점과 차이를 분석한다.

세계기록유산에서 돌에 새긴 기록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은 2025년 신규 등재 이후 총 570건으로 늘었는데, 유네스코가 현재 ‘Tablets/Stones’ 유형으로 분류한 기록은 ‘베트남 레·막 왕조 과거 급제자 석비’, 몽골의 ‘Khüis Tolgoi 1 비문’, 중국 소림사 비석군 등 8건이다. 세 신라비가 등재될 경우 동아시아 고대 석각 기록의 계보를 넓힌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다.

한국은 세계기록유산 분야에서도 상당한 등재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2025년에는 제주4·3기록물과 산림녹화기록물이 새롭게 국제목록에 포함되면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모두 20건으로 늘었다. 유네스코는 같은 해 전 세계에서 74건을 새로 등재했다.

기록의 성격도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 같은 국가적 기록에서 전쟁과 인권, 산림녹화, 지역 공동체의 기억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2025년 등재된 제주4·3기록물만 해도 1만4천673건의 자료를 통해 지역사회가 진상규명과 화해 과정에서 남긴 기록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포항시와 울진군은 이런 국제적 흐름 속에서 동해안 3비가 한 국가의 고대사가 아니라 인류가 공유할 만한 기록문화의 사례라는 논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종합토론에서는 주보돈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세계사적 가치와 비교 가능성, 등재 논리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두 지자체는 학술대회 이후 시민 서명운동과 홍보사업을 이어가고 2026년 하반기 국가유산청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등의 국내 절차를 거쳐 2029년 유네스코 최종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유명하거나 오래된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정되는 제도가 아니라 기록의 세계적 중요성과 희소성, 진정성, 보존 필요성 등을 국제적 관점에서 입증해야 한다. 포항과 울진이 추진하는 동해안 3비 역시 개별 국보의 역사적 가치를 넘어 동아시아 고대사에서 어떤 보편적인 기록문화의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것이 향후 등재 과정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