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5개 지자체 경주서 한목소리…사용후핵연료·주민지원 제도 개선 촉구
- 경주·기장·울주·영광·울진 5개 지자체장 참석…원전 현안 공동 대응 -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사업 제도 개선 등 논의…주민 권익 향상 공조
국내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발전이 30% 안팎을 담당하는 가운데 원전이 위치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용후핵연료 저장과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제도 개선을 놓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국가 전력 공급에 기여하는 원전 지역의 부담을 지원제도와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주시는 8일 라한셀렉트 경주에서 ‘제36차 원전소재 지방자치단체 행정협의회’를 개최했다. 경주시와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전남 영광군, 경북 울진군 등 국내 원전 소재 5개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석했다.
이들 지역에는 월성·고리·새울·한빛·한울 원전이 위치해 있다. 원전 운영에 따른 지역경제 효과가 있는 동시에 방사선 비상계획과 안전대책, 사용후핵연료 관리,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 등 다른 지역과는 다른 행정·사회적 현안을 안고 있다.
원전은 국내 전력 공급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전력거래소 전력통계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전체 발전량 59만5,523GWh 가운데 원자력 발전량은 18만4,693GWh로 31.01%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력 약 10kWh 가운데 3kWh가 원전에서 생산된 셈이다.
이번 협의회에서 주요 현안으로 다뤄진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직결된다. 원자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는 높은 방사능과 열을 갖고 있어 장기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시설이 아직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에서 관리되고 있어 원전 소재 지역에서는 저장용량과 안전성, 주민 수용성 문제가 지속적인 현안이 되고 있다.
특히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확대는 단순한 시설 건설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과 연결된다.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해당 지역 주민이 체감하는 부담도 커질 수 있어 시설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공개와 주민 의견 수렴, 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관리시설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제정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절차와 주민 의견수렴, 지원체계 등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실제 부지 선정과 시설 건설에는 장기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원전 부지의 저장 문제는 당분간 원전 지역의 주요 현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발전소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제도 역시 이날 협의회의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현행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발전소 주변지역에는 소득증대와 공공·사회복지, 주민복지, 기업유치 등을 위한 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원전 소재 지자체들은 변화한 물가와 지역 여건, 원전 운영에 따른 사회적 부담 등을 현행 지원체계에 보다 현실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사업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지역 의견이 중앙정부의 정책과 제도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원전 정책에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이 중요해진 배경에는 원전의 운영 기간이 길고 발전소 가동 종료 이후에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이어진다는 특성이 있다. 발전 과정에서 생산된 전력의 혜택은 전국적으로 공유하지만 안전관리와 방사성폐기물 보관에 따른 부담은 시설이 위치한 지역에 상대적으로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경주는 이러한 원전 정책의 주요 현장이기도 하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한 데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는 경주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운영되고 있어 원전 가동부터 방사성폐기물 관리까지 에너지정책과 직접 맞닿아 있다.
정부의 전력정책에서도 원전의 역할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과 신규 대형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실증 등이 포함돼 있다. 원전 활용이 지속되는 만큼 발전량 확대 여부뿐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안전관리, 지역주민 지원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5개 지자체는 원전 지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안에 대해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주민 권익과 지역 상생을 위한 제도 개선에 공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개별 지자체 차원의 요구를 넘어 원전 소재 지역의 공통 현안을 정리해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원전 소재 지역이 안고 있는 현안은 개별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공동 대응이 중요하다”며 “5개 지자체가 긴밀히 협력해 지역의 목소리가 정책과 제도에 제대로 반영되고 주민 권익과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원전이 국내 발전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현실에서 원전 소재 지역의 문제는 특정 지역만의 현안으로 보기 어렵다. 앞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확보 과정과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운영, 주변지역 지원제도 개편에서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 비용 부담을 어떻게 조정할지가 정부와 원전 소재 지자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