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령인구 27% 넘어…11개 농촌마을, 주민 손으로 ‘살아남을 마을’ 설계한다
11개 마을 대상 현장포럼·사전컨설팅…주민 주도 발전계획 수립 마을 특성 살린 사업 발굴…주민총회 거쳐 2027년 공모 준비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경주시 11개 마을 주민들이 생활환경과 공동체, 소득 기반을 스스로 설계하는 마을 발전계획 수립에 나섰다. 단순 도로·배수로 정비에서 벗어나 주민이 지역의 자원과 문제를 직접 찾아 지속 가능한 마을 운영방안을 만드는 방식이다.
경주시는 2027년 ‘경주형 마을만들기사업’ 공모를 준비하는 11개 마을을 대상으로 행복농촌현장포럼과 사전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10개 마을 일정을 진행했으며 이날 외동읍 활성리를 끝으로 현장 컨설팅을 마무리했다.
참여 마을은 강동면 호명리, 내남면 안심1리·부지1리, 안강읍 육통2리, 양남면 상계리, 건천읍 금척리·용명2리, 보덕동 암곡동11통, 외동읍 활성리, 산내면 대현1리·의곡2리 등이다.
이번 사업의 배경에는 농촌의 인구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경주시가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는 6만7501명으로 전체 인구 24만4589명의 27.6%를 차지했다. 이미 시민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고령자인 초고령사회 단계다.
전국 농촌지역도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읍·면 지역 인구는 2015년 약 950만명에서 2024년 약 930만명으로 1.4% 감소했다. 전체 인구가 같은 기간 0.6% 줄어든 것보다 감소 폭이 컸다. 2023년 기준 읍·면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5.7%로 전국 평균 18.6%를 크게 웃돌았다.
농업에 종사하는 가구로 범위를 좁히면 고령화 정도는 더욱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잠정 결과에서 농림어가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은 51.0%로 전체 인구의 20.3%보다 30.7%포인트 높았다. 농림어가 인구의 중위연령도 65.3세로 전체 인구 46.7세보다 18.6세 높았다.
정부의 농촌공간 정책에서도 소규모 마을의 인구 감소가 주요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공간 재구조화 기본방침을 보면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인구 2000명 미만 읍·면의 55.6%, 2000~4000명 규모 읍·면의 57.4%에서 인구가 감소했다. 면 지역의 고령화율은 2000년 18.1%에서 2022년 32.4%까지 상승했다.
경주형 마을만들기사업은 이러한 농촌 변화를 시설 확충만으로 대응하기보다 주민 공동체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유·무형 자원을 조사하고 생활상의 문제를 정리한 뒤 향후 마을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구조다.
현장포럼에서는 주민들이 조별 토론을 통해 마을별 문제와 자원을 발굴하고 생활환경 개선, 경관 조성, 공동소득 창출 등 필요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이후 전문가 사전컨설팅을 통해 사업의 공공성과 실현 가능성, 예비계획서 작성 방향 등을 점검했다.
특히 기존 농촌지역 사업에서 반복적으로 요구되던 도로 포장이나 배수로 정비 등 일반적인 숙원사업은 가급적 배제한다. 시설 하나를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을 특성과 주민 수요에 맞는 공동체 사업이나 경관·소득사업 등을 발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토지 소유관계와 인허가 가능성, 주민 자부담 여부도 공모 이전 단계에서 확인한다. 사업 선정 뒤 토지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인허가 문제로 장기간 지연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사업 실행 가능성을 사전에 검증한다는 취지다.
실제 2027년 경주형 마을만들기사업 신청 자격도 주민 참여를 전제로 한다. 경주시 공고에 따르면 마을회나 주민위원회 등 조직과 자체 규약을 갖추고, 시가 운영하는 행복농촌포럼과 행복농촌문화학교를 수료해야 신청할 수 있다. 공모 대상 역시 법률상 농촌지역으로 한정된다.
경주시는 지난해부터 기존 시설 조성 중심 농촌사업을 주민 주도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민이 사업계획 수립부터 공동시설 활용방안과 마을 운영방식까지 직접 결정하도록 해 행정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사업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1개 마을은 이번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주민총회를 열어 최종 핵심사업을 결정한 뒤 2027년 공모에 참여할 예정이다. 향후 사업의 성과도 단순한 시설 설치 규모보다 주민 참여율과 공동체 활동의 지속 여부, 유휴공간 활용, 공동소득 창출 등 실제 마을의 변화로 평가할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농촌 인구 감소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인 만큼 마을만들기사업 역시 외부 인구 유입만을 목표로 하기보다 현재 거주하는 주민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공동체 기능을 유지하는 방향이 중요해지고 있다. 경주시는 이번 현장포럼과 주민총회를 통해 지역별 여건이 반영된 사업을 발굴해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