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칼럼] 미쉐린 식탁에 오른 대왕님표 여주쌀…진짜 승부는 쇼케이스 이후다

전광식 셰프 ‘진상 오미’ 공개…왕실 진상미 역사와 현대 파인다이닝 결합

2026-08-26     김병철 기자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500년 왕실 진상미의 역사를 지닌 대왕님표 여주쌀이 오는 8월 31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81층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비채나의 식탁에 오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10년 연속 1스타를 획득한 비채나의 전광식 셰프가 여주쌀을 주제로 5가지 메뉴를 개발했고, 여주시는 이를 ‘진상 오미’라는 이름의 미식 쇼케이스로 선보인다. 볶고 튀기고 눌리고 밥을 짓는 서로 다른 조리법을 통해 여주쌀의 단맛과 풍미, 찰기와 식감을 한 코스에 담았다. 여주시는 이번 협업을 왕실 진상미의 역사적 자산과 현대 미식문화를 연결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으로 추진하며, 여주쌀의 활용 영역을 레스토랑과 호텔, 카페 등으로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행사를 단순히 유명 셰프가 지역 쌀로 요리 몇 가지를 개발한 것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쌀 소비가 줄고 지역 농산물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제 쌀 브랜드의 경쟁력은 품질과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왜 이 쌀을 선택해야 하는지, 다른 지역 쌀과 무엇이 다른지, 어느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왕님표 여주쌀과 비채나의 만남은 여주쌀의 판매 방식을 넘어 브랜드가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다.

그동안 쌀 홍보는 대체로 밥맛과 품질, 산지와 생산 방식에 집중됐다. 물론 쌀의 기본 경쟁력은 좋은 밥맛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밥맛이 좋다’는 설명만으로 수많은 지역 쌀 사이에서 차별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품질에 역사와 이야기, 조리법과 공간, 소비자의 경험이 더해져야 하나의 브랜드로 기억된다. 조선 왕실 수라상에 올랐던 여주쌀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현대적인 요리로 다시 태어난다는 서사는 여주만이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다.

전광식 셰프가 개발한 ‘진상 오미’는 이런 가능성을 구체적인 음식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메뉴 ‘설미’는 볶은 여주쌀과 두유로 만든 쌀 아이스크림이다. 우메기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생강청과 여주쌀 튀밥을 곁들여 쌀을 현대적인 디저트로 풀어냈다. 쌀이 밥상 마지막에 오르는 디저트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노을’은 여주쌀 누룽지에 송로버섯을 결합했다. 누룽지는 한국인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전통적인 쌀 음식이지만, 송로버섯과 만나면서 파인다이닝 메뉴로 새로운 위치를 얻는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소비자의 취향과 미식 공간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윤슬’은 남한강 수면 위로 반짝이는 빛을 모티브로 전갱이와 여주쌀 김부각을 한 접시에 담았다. 여주쌀이라는 식재료에 남한강과 여주의 풍경을 더한 것이다. ‘자운’은 가지와 새우에 여주쌀 옷을 입혀 튀겨냈으며, 마지막 ‘소담’은 곤드레와 여주쌀로 지은 밥을 통해 여주의 들녘과 쌀 본연의 맛을 표현한다. 다섯 메뉴는 쌀이 주식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디저트와 누룽지, 부각과 튀김옷, 한 그릇의 밥으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여주쌀이 다른 식재료를 받쳐주는 배경이 아니라 코스 전체를 이끄는 주인공이 됐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외식 메뉴에서 쌀의 품종이나 산지를 기억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음식점에서도 쌀은 메뉴판 전면에 드러나기보다 ‘공깃밥’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쇼케이스는 쌀의 생산지와 브랜드, 맛과 조리법을 코스의 중심에 놓았다. 쌀도 와인이나 치즈, 한우처럼 산지와 품종, 풍미와 이야기를 함께 소비하는 미식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이충우 여주시장이 “좋은 쌀은 좋은 밥이 되고, 좋은 밥은 훌륭한 요리가 되며, 그 요리는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미식 경험과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여주쌀을 단순한 농산물로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여주라는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한 차례 쇼케이스를 개최했다고 해서 여주쌀의 브랜드 가치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행사는 관심을 모으는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평가는 쇼케이스가 끝난 뒤 무엇을 남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개발된 메뉴가 실제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제공되는지, 다른 외식업체와 호텔·카페로 확산되는지, 여주쌀을 활용한 가공식품과 관광상품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설화다. 5가지 메뉴 전부를 장기간 운영하기 어렵다면 일부라도 계절 메뉴나 특별 코스로 이어갈 방안을 찾아야 한다. 행사 당일 참석한 관계자와 미디어만 맛보고 끝난다면 일반 소비자에게 여주쌀의 새로운 가치를 경험시키겠다는 당초 목적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예약하고 비용을 지불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미식 브랜드 전략이 힘을 얻는다.

상품화도 뒤따라야 한다. 여주쌀 튀밥과 김부각, 누룽지, 쌀가루, 디저트용 쌀 소재 등은 레스토랑 메뉴를 넘어 가공상품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셰프의 조리법을 가정간편식이나 선물세트, 관광기념품으로 확장한다면 쇼케이스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소비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주를 방문한 관광객이 현장에서 먹고, 대왕님몰 등 온라인 채널에서 다시 구매할 수 있는 흐름도 필요하다.

외식업계와의 협업 역시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번 비채나 협업을 기준점으로 삼아 한식당과 호텔, 베이커리, 카페, 학교·기업 급식 등 서로 다른 소비 현장에 맞는 여주쌀 메뉴를 개발해야 한다. 고급 파인다이닝에서는 여주쌀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고, 대중적인 외식공간에서는 소비량과 접근성을 넓히는 이원화 전략이 가능하다. 프리미엄 이미지와 실제 판매량이 함께 움직여야 브랜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성과가 농업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행사 횟수와 언론 보도량만으로 사업을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협업을 통해 여주쌀 사용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신규 거래처가 몇 곳 확보됐는지, 재구매율과 온라인 매출이 어떻게 변했는지, 농가의 안정적인 판로와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측정해야 한다.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는 행정의 설명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수치로 확인될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여주시 농산업 공동브랜드 활성화센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센터는 생산자와 셰프, 외식기업과 유통업체, 소비자를 연결하는 브랜드 플랫폼이 돼야 한다. 개별 협약과 행사 개최에 머물지 않고 메뉴 개발, 공급 물량 관리, 품질 유지, 홍보와 판매, 소비자 반응 분석까지 일관된 체계를 갖춰야 한다. 협업 상대가 달라져도 대왕님표 여주쌀의 품질과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센터의 책임이다.

왕실 진상미라는 명성은 여주쌀의 출발점이지 완성된 경쟁력은 아니다. 과거의 명성만 반복하면 전통은 박물관 속 이야기에 머문다. 반대로 역사를 지우고 유행만 좇으면 여주쌀만의 차별성도 사라진다. 여주가 해야 할 일은 500년의 역사와 오늘의 미식문화, 농업인의 생산과 소비자의 경험을 하나의 브랜드 안에 연결하는 것이다.

이번 비채나 쇼케이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여주쌀은 이제 밥솥 안에서만 평가받는 쌀이 아니라 디저트가 되고 누룽지가 되며, 김부각과 튀김옷을 거쳐 하나의 코스를 완성하는 식재료로 확장되고 있다. 미쉐린의 식탁에 올랐다는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얼마나 많은 소비자와 나누고 지역경제의 성과로 이어가느냐다.

한 번의 화려한 식탁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반복되는 경험과 지속적인 구매다. 대왕님표 여주쌀이 ‘좋은 쌀’을 넘어 대한민국 미식문화를 대표하는 명품 식재료로 자리 잡으려면 쇼케이스 이후의 상설메뉴, 상품화, 판로 확대와 성과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왕실이 선택했던 여주쌀이 현대 미식의 선택까지 받기 시작했다. 이제 여주시는 그 선택이 농업인의 소득과 지역의 미래로 이어지도록 다음 식탁을 준비해야 한다.

기자메모/ 이번 협업은 여주쌀의 품질을 설명하는 홍보에서 소비자가 직접 맛보고 기억하는 경험 중심의 브랜드 전략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쇼케이스의 성과는 행사 규모나 보도 건수가 아니라 상설메뉴 운영, 후속 협업, 신규 거래처, 여주쌀 사용량과 농가소득 증가로 평가해야 한다. 미쉐린 식탁에서 시작된 변화가 일반 소비자의 식탁까지 이어질 때 대왕님표 여주쌀의 브랜드 확장은 완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