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꽃길에서 폭염·악취 대응까지…경주 가로수 정책, 전국 8강서 국민평가

산림청 1차 심사 통과해 전국 8개 지역 후보 선정 APEC 꽃길부터 은행나무 DNA 선별까지…11~14일 국민투표

2026-08-10     이상수 기자
산림청

경주시가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비한 도시녹지와 은행나무 유전자 검사를 활용한 가로수 관리정책을 앞세워 전국 우수사례 경쟁에 나섰다. 가로수가 도시 미관을 꾸미는 시설을 넘어 폭염을 낮추고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생활 인프라로 주목받는 가운데 국제행사를 위해 조성한 녹지를 시민의 일상적 자산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관리할지가 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경주시는 산림청이 실시하는 ‘가로수 조성·관리 우수사례’ 평가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해 전국 8개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온라인 국민투표 후보에 선정됐다고 지난 9일 밝혔다. 경주시 공식 누리집에서도 11일부터 14일까지 국민투표가 진행되는 일정이 확인된다.

산림청은 전국 10개 시·도가 제출한 19건의 사례를 전문가 심사를 통해 8곳으로 압축했다. 최종 후보에는 경주를 비롯해 포항과 부산, 세종, 서귀포, 청주, 순천, 음성이 포함됐다. 국민투표는 ‘국민생각함’을 통해 진행되며 최종 결과는 오는 19일 발표될 예정이다.

경주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면서 주요 관문과 도심에 사계절 꽃길과 꽃탑, 입체형 녹지를 조성한 사업과 함께 은행나무의 암수를 유전자 검사로 미리 확인해 수나무를 선별 식재하는 관리방식을 주요 사례로 제출했다.

특히 은행나무 관리방식은 시민이 매년 반복적으로 겪는 불편을 식재 단계에서 줄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암나무에서 떨어진 은행 열매는 특유의 냄새뿐 아니라 보도 오염과 미끄럼 등 보행 불편을 일으킬 수 있어 지방정부가 가을철마다 열매 수거와 청소에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경주시는 나무를 심은 뒤 열매가 맺혔을 때 대응하는 대신 식재 전 DNA 검사를 통해 수나무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도 이미 2016년 은행잎의 유전자를 활용해 어린 나무 단계에서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가로수 관리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활용되는 이유도 분명하다. 공해와 병해충에 상대적으로 강하고 가을철 경관 효과가 높은 수종이지만 암나무 열매가 생활불편을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다. 경주의 방식은 가로수가 가진 장점은 유지하면서 민원 가능성을 사전에 낮추려는 관리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가로수는 전국 도시에서 이미 대규모 공공자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산림청의 가로수 조성·관리 추진계획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전국 도로 10만8129㎞ 가운데 가로수가 조성된 구간은 4만4034㎞로 40.7%를 차지했다. 당시 전국에 심어진 가로수는 약 942만3000그루에 달했다.

최근에는 가로수의 역할이 경관 조성보다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올해 5월 가로수의 기온 저감 효과를 다시 확인하면서 기존 연구에서 가로수를 포함한 도시숲이 주변 기온을 약 3~7℃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과거 국립수목원의 현장조사에서도 가로수 그늘은 평균 2.5℃, 교통섬의 나무 그늘은 4.5℃가량 기온을 낮추는 효과가 나타났다. 폭염이 장기화하는 도시에서는 나무 한 그루의 역할이 경관을 넘어 보행자의 열 노출을 줄이는 기후적응 시설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가로수 정책을 평가할 때 단순 식재량이나 꽃길 길이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보행자가 이용할 수 있는 그늘이 얼마나 형성됐는지, 나무가 장기간 건강하게 생육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는지, 뿌리 들뜸이나 열매·낙엽으로 인한 불편은 얼마나 줄었는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경주시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성한 꽃길과 입체형 녹지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식재된 수목과 녹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대규모 행사 준비를 위해 투입된 녹지사업이 장기적인 도시자산으로 남을 수 있다.

이번 우수사례 경쟁에 오른 다른 지방정부들도 단순 식재보다 관리 방식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부산은 인공지능 기반 수목관리시스템, 세종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가로수 돌보미, 순천은 쓰러질 위험이 있는 나무를 사전에 확인하는 위험성 평가, 음성은 전력선 주변 가로수 안전관리 협력체계를 제시했다. 가로수 정책의 무게중심이 ‘얼마나 많이 심었는가’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주의 은행나무 DNA 검사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식재 단계에서 성별을 확인하면 향후 열매 수거와 청소에 들어가는 반복적인 관리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효과를 판단하려면 수나무 선별 식재 규모와 검사 비용, 민원 감소 정도 등을 장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로수는 한번 심으면 수십 년 동안 도시의 보도와 도로 환경에 영향을 주는 시설이다. 지나친 가지치기나 좁은 식재 공간으로 수세가 약해질 경우 쓰러짐이나 가지 낙하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적절히 관리하면 폭염 완화와 그늘 제공, 경관 개선 등의 효과를 오랫동안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경주의 가로수 정책도 국민투표 결과와 별개로 APEC 이후의 관리 성과가 중요하다. 가로수 생존율과 보식률, 은행 열매 관련 민원과 관리비용 변화, 보행로 그늘 면적 등을 데이터로 축적한다면 DNA 선별 식재와 도시녹지 개선이 실제 시민생활에 어느 정도 효과를 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국에 900만 그루가 넘는 가로수가 조성돼 있고 도시숲이 여름철 기온을 낮추는 효과까지 확인되는 상황에서 가로수는 더 이상 도시를 꾸미는 부수적인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경주시가 국제행사를 계기로 개선한 도시경관을 폭염과 보행불편, 가로수 안전까지 관리하는 지속 가능한 생활녹지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이번 전국 우수사례 도전 이후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