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진영’을 벗고 본연의 ‘영성’으로 돌아오라

2026-08-07     김시훈 기자

우리가 역사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종교계는 앞장서 나라를 구했다.

조선시대 승병들은 호국의 깃발을 들고 목숨 바쳐 싸웠고,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수많은 종교인들이 민주주의와 국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종교 단체들은 과연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극심한 진영 갈등 속에서 정치가 길을 잃은 지금, 종교계 역시 그 혼란의 파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행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깊은 실망을 넘어선 개탄이 섞여 있다.

사제단은 과연 순수한 종교 단체인가, 아니면 특정 이념을 대변하는 정치 조직인가.

만약 스스로를 정치 단체로 규정한다면, 차라리 확고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고 당당히 제도권 정치판에 진입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반대로 신을 모시는 종교인이라면 정치적 논쟁은 정치인에게 맡겨두고 본연의 영성(靈性) 활동과 사목에 충실함이 마땅하다.

사제단은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것을 계기로 같은 해 9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출범했다.

당시 유신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화에 기여한 공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작금의 사제단이 보여주는 행보는 종교의 선을 넘어선 '선택적 정치 행위'에 가깝다.

실제로 사제단은 특정 정권 시기에는 대형 시국미사를 통해 정권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남북관계나 안보 이슈에서도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왔다.

반면, 다른 진영이 제기하는 국가적 의혹이나 실정(失政)에 대해서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종교인의 사회 참여가 진정한 ‘정의 구현’이 되려면 여야라는 진영 논리를 떠나 오직 국가와 국민의 편에서 공평무사(公平無私)해야 한다. 한쪽 눈을 감은 채 다른 한쪽의 잘못만을 꾸짖는 '외눈박이 정의'에는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보라. 지난 선거를 둘러싸고 언론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 의혹을 제기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선거의 신뢰가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조차 "과거 유신정권에는 서슬 푸르게 맞섰던 사제단이 왜 이번 선관위 사태와 선거 공정성 논란에는 단 한마디 말도 없는가"라며 개탄하고 있다.

만약 향후 사법 절차를 통해 선거 과정의 중대한 부실이나 부정의 소지가 드러난다면, 그때도 사제단은 지금처럼 침묵할 것인가.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입법 독주 앞에서도 사제단의 잣대는 기울어져 있다.

최근 거대 야당 주도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검사의 직접 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이 대폭 축소·폐지되는 등 78년간 유지되어 온 형사사법체계가 미증유의 대변혁을 맞이했다.

수사권 완전 분리라는 명분 뒤에서 국민의 피해 구제 차질과 권력층 수사 무력화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부르짖던 사제단은 입법부의 권력 남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종교가 가진 진정성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오직 바른길을 제시하는 데서 나온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정의구현사제단은 특정 정치 세력의 방패막이가 되에 특정세력을 위한 목소리만 내고 있기에, 국민들은 말한다.

모든 국민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종교 본연의 단체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또한 그들이 외치는 ‘정의’가 모든 국민을 위한 정의인지, 아니면 편향된 신념에 불과한 독선인지 국민들은 차디찬 시선으로 지켜볼 것이기에 사제단은 이제 진영의 옷을 벗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깊은 영성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