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전력생산 전국 2위인데 요금은 동일…포항, ‘지역별 전기요금’ 산업 경쟁력 카드로
지역별 전기요금 실현 토론회, 합리적 전력 가격 신호 및 산업계 대응 전략 논의 현행 단일 요금제 구조적 모순 지적, 공정한 가격 신호 도입 당위성 강조 박용선 시장,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집중…지역별 산업 여건 반영돼야”
경북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지만 지역 기업은 수도권과 같은 전기요금 체계를 적용받고 있는 가운데 포항시와 경상북도가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에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최근 수년간 크게 오른 상황에서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철강산업의 경쟁력과 전력 생산지역의 사회적 부담을 요금체계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항시와 경상북도는 4일 경상북도 동부청사에서 도와 시·군 관계자, 기업, 공공기관, 전문가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별 전기요금 실현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발전소가 집중된 비수도권이 전력 생산 과정에서 부담하는 비용과 송전망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을 점검하고, 전국에 사실상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는 현행 전기요금 체계를 지역별 전력 수급 상황에 맞게 개편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역 간 발전량 차이는 통계에서도 뚜렷하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경북의 발전량은 9976만3117MWh로 충남 1억361만8187MWh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두 번째로 많았다. 같은 기간 서울의 발전량은 581만6417MWh로, 경북이 서울보다 약 17배 많은 전력을 생산했다.
대규모 발전시설이 지방에 집중된 반면 발전된 전기를 소비지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송전선로와 변전시설이 필요하다. 현행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도 이런 비용 차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 제45조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해 전기판매사업자가 송·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북과 포항이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지역 주력산업인 철강의 높은 전력 의존도도 있다. 제철과 압연, 전기로 등 철강 생산공정은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산업으로, 전기요금 변화가 제조원가와 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여러 차례 조정을 거치면서 kWh당 누적 72.6원 인상됐다. 같은 기간 주택용 누적 인상액 40.4원, 일반용 42.7원보다 큰 폭이다. 한전 역시 최근 산업계가 느끼는 요금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주요 전력정책 과제로 다루고 있다.
정부도 올해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일부 손질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4월부터 산업용(을) 전력의 계절·시간대별 요금제를 개편해 낮 시간 요금을 kWh당 최대 16.9원 낮추고 일부 밤 시간에는 5.1원을 높이는 제도를 시행했다. 기업이 전력 수급 상황에 맞춰 조업시간을 조정하도록 가격 신호를 주면서 산업계 부담을 일부 완화하려는 조치다.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정군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을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 사이의 실제 비용 차이를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며 송전비용 등을 고려한 합리적인 요금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윤택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시행될 경우 제조업과 지역 주력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기업이 준비해야 할 단계별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윤정현 영남대 교수와 윤아윤 한국공학대 교수, 선종대 포스코 포항제철소 리더, 성준규 에코프로 지속가능경영사무국 팀장 등이 참여해 지역별 요금 산정기준과 제조업 파급효과, 기업 지원방안 등을 논의했다.
다만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포항이나 경북의 전기요금 인하 수준이 이미 확정된 것은 아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2월 지역별 전기요금을 지방 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발전시설과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송전비용과 국가균형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지난 6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와 관련해 발전소 입지와 송전비용, 국가균형발전 등을 반영한 방안을 마련해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실제 지역 구분 방식과 산업용·주택용 적용 범위, 지역별 요금 차이 등 세부 제도는 추가적인 정부 결정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요금 차등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쟁점도 적지 않다. 단순히 발전량이 많은 지역의 요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할 경우 지역별 산업구조와 실제 전력 소비량, 송·배전망 이용 비용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발전시설과 송전선로를 부담해 온 지역에 대한 보상이라는 측면과 함께 전력시장 전체의 안정성, 다른 지역 소비자의 요금 부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제도가 적절하게 설계되면 전력 다소비 기업이 발전시설과 가까운 지역에 투자하도록 유도해 수도권 전력 집중을 낮추고 추가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분산에너지법 역시 대규모 발전시설과 송전망 설치 감소에 따른 비용 절감과 사회적 갈등 완화를 분산에너지 확대의 사회·경제적 편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용선 포항시장은 “전력의 생산과 소비, 송전비용, 지역별 산업 여건이 합리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며 전력 생산지역의 기여가 지역기업 경쟁력과 시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경북도와 시·도의회, 지역 산업계, 관련 기관과 협력해 향후 정부의 세부 요금제 설계 과정에 지역 의견을 전달하고 철강산업의 전력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건의할 계획이다.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성패는 단순히 수도권 요금을 올리고 발전지역 요금을 낮추는 데 있지 않다. 2024년 한 해에만 약 1억MWh의 전력을 생산한 경북의 발전 기여도와 송전망 비용을 합리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철강을 비롯한 전력 다소비 산업의 경쟁력과 국민 부담을 함께 조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의 구체적인 요금안이 공개되면 지역별 발전량과 소비량, 송전비용을 토대로 실제 기업과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는 과정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