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칼럼] 용인 반도체 산단 성공, 이제 중앙정부의 실행력에 달렸다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은 시간 싸움…중앙정부, 선언 넘어 예산·행정·인프라로 실행력 보여야

2026-07-18     김병철 기자
김병철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계획과 선언의 단계를 넘어 실제 공사 속도와 기반시설 구축 능력을 평가받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양대 축으로 추진되는 용인의 반도체 산업단지는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대형 사업이지만, 기업의 투자계획이 발표됐다는 사실만으로 반도체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장 부지를 제때 조성하고 전력과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늘어날 인구와 물류 수요를 감당할 도로·철도망을 갖춰야 비로소 투자계획이 생산과 수출,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지난 16일 밤 KBS ‘인사이드 경인’에 출연해 민선 9기 시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의 신속한 추진을 제시했다. 이 시장이 정부에 요구한 핵심은 명확하다. 정부가 용인 반도체 산단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판단했다면 구호에 머물지 말고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구축과 행정 지원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공장 가동 시점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의 산업 주도권을 결정하는 변수라는 점에서 그의 요구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용인 원삼면에서 추진되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는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된 사업이다. 이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월 1기 팹의 절반을 건설하는 공사에 들어갔으며, 내년 2월에는 3복층 구조의 팹 일부에 클린룸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후 장비 반입과 시험 가동 등을 거쳐 내년 10월께 고대역폭메모리인 HBM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일정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투자 규모가 크게 확대된 배경에는 산업단지의 제도적 지위와 용적률 변화가 있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단은 2023년 7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팹 용적률이 기존 350%에서 490%로 높아졌고, 당초 2복층으로 계획됐던 팹은 3복층으로 변경됐다. 공장 규모가 커지면서 SK하이닉스의 투자계획도 당초 122조원에서 600조원 규모로 늘어났다는 것이 이 시장의 설명이다.

투자 확대는 용인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는 그만큼 안정적인 전력과 공업용수, 원활한 물류망과 정주 여건을 요구한다. 생산시설 규모만 키우고 기반시설을 뒤늦게 따라가도록 한다면 공장 건설과 가동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경기도, 용인시, 사업시행자, 기업이 각각의 역할과 일정을 명확히 나누고 진행 상황을 지속해서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이동·남사읍 일원에 들어설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도 속도가 중요하다. 이곳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시설 6기가 건설될 예정이다. 이 시장은 삼성전자가 광주에 반도체 팹 2기를 건설하기 위해 4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점을 들며, 용인 국가산단에 조성되는 팹 역시 광주 팹과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는 삼성 측 설명을 전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용인 국가산단 투자 규모는 기존에 알려진 360조원을 넘어 100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투자 규모와 일정은 기업의 경영 판단과 세계 반도체 경기, 기술 변화, 정부 지원정책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방정부가 장밋빛 전망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자 집행액, 공정률, 기반시설 확보 상황과 고용 효과를 단계별로 공개해야 한다.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수백조원 투자’라는 거대한 숫자만이 아니다. 언제 공장이 가동되는지, 지역기업과 시민에게 어떤 기회가 돌아오는지, 교통과 주거 부담은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더 직접적인 문제다.

삼성전자는 국가산단 1기 팹 일부 가동 시기를 당초 2030년 하반기에서 2029년 10월로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정을 달성하려면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2공구 부지 조성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 1·2기 팹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LNG 발전소 부지도 적기에 조성돼야 한다. 전력망과 용수 공급시설, 진입도로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늦어지면 전체 사업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정별 관리가 필요하다.

정부가 말하는 ‘반도체 산단 속도전’의 실체는 인허가 기간 단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계획 승인 이후 실제 부지 조성 공사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전력·용수 공급사업의 재원과 책임 주체가 확정됐는지, 산단 주변 광역교통망이 생산시설 가동 이전에 확보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중앙정부가 국가산단을 지정하고 기업 투자계획을 성과로 내세웠다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기반시설 문제까지 책임 있게 조정해야 한다.

이 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지만 6개월 이상 시민과 함께 대응해 사업을 지켜냈다고 평가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논란의 반복이 아니라 실행계획의 구체화다. 국가산단 추진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정리됐다면 정부와 관계기관은 공정표와 기반시설 공급계획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목표 가동 시기를 먼저 발표한 뒤 공사가 늦어질 때마다 일정을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시장과 시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가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소재·부품·장비·설계기업이 함께 들어서는 산업 생태계에 있다. 삼성전자 국가산단 235만평에는 약 60∼80개 협력기업이, SK하이닉스 일반산단 126만평에는 약 55개 기업이 입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ASML과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기업들도 용인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시설에 협력기업과 연구개발 기능까지 집적된다면 용인은 단일 도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 수준의 반도체 생태계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 생산시설만 존재하는 산업도시가 아니라 연구개발과 장비, 소재, 인재 양성, 창업이 연결되는 혁신도시로 성장할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숫자만 늘리는 것으로 집적 효과가 자동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지역 대학과 교육기관의 인재 양성,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지원, 대기업과 협력기업 사이의 상생 구조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이 가져올 교통 수요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 시장은 삼성전자 국가산단에서 약 10만5000명, SK하이닉스 일반산단에서 약 4만명이 근무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흥구 플랫폼시티 역시 83만평 규모로 개발되며 약 5만5000명의 고용 수요가 예상된다. 이 전망대로라면 3개 사업지역에서 일하게 될 인원만 약 20만명에 이른다. 출퇴근 인구와 물류 이동량까지 고려하면 기존 도로와 대중교통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다.

용인시가 동서남북 격자형 도로망과 철도망 구축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선 8기 공약으로 추진된 반도체 고속도로는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해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에 들어간 상태라고 이 시장은 설명했다. 동백신봉선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돼 사업 추진의 기반을 확보했다. 신봉동에서는 경기남부광역철도와 연결하고, 동백역에서는 용인경전철을 통해 처인구로 이동한 뒤 용인중앙시장역에서 잠실∼청주공항 노선의 중부권광역급행철도와 연계하는 구상도 제시됐다.

이들 교통사업은 각각 별도의 사업처럼 보이지만 반도체 산단과 플랫폼시티의 기능을 연결하는 하나의 교통체계로 접근해야 한다. 도로와 철도 사업은 계획 수립부터 준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산업단지가 가동된 뒤 교통대책을 마련하면 시민들은 수년 동안 교통 혼잡과 생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산업단지 공사 일정과 교통망 개통 일정을 맞추는 통합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선 9기 용인시정이 반도체 프로젝트의 속도만 강조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분명하다.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주와 보상 문제, 환경 훼손 우려, 주택가격과 임대료 변화, 지역 간 개발 격차를 함께 살펴야 한다. 대규모 개발의 이익이 일부 지역과 기업에 집중되고 교통 혼잡과 생활 부담이 시민에게 돌아간다면 반도체 산업도시라는 명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용인특례시의 권한 문제도 산단 추진과 맞물려 있다. 특례시지원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일부 자율권이 확대됐지만, 광역행정 수요를 감당할 재정 권한과 법적 지위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 시장의 주장이다. 그는 지방자치법에 광역시·도 다음 단계로 특례시의 지위를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와 산업 규모가 빠르게 커지는 특례시에 사무만 넘기고 재원을 충분히 배분하지 않는다면 행정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특히 경기도가 시·군 법인지방소득세의 절반을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이 시장은 지방분권 강화에 역행하는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용인시가 반도체 산단과 교통·주거·환경 등 대규모 행정 수요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입이 줄어들 경우 도시 기반시설 투자와 시민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봉기 수준의 저항’과 같은 강경한 표현만으로 재정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는 없다. 경기도가 실제로 어떤 제도를 검토하고 있는지, 예상되는 세수 변화가 얼마인지, 조정 재원이 다른 시·군과 경기도 전체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객관적인 자료부터 확인해야 한다. 용인시 역시 법인지방소득세 감소가 예상된다면 구체적인 추계와 사업별 영향을 공개하고, 특례시 재정 특례가 왜 필요한지 수치로 설득해야 한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를 향한 권한 요구에 그치지 않고 기초자치단체 내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과정이어야 한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성공 여부는 이제 거대한 투자계획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정밀도에 달려 있다. 정부는 전력·용수와 광역교통망 구축에 필요한 책임과 재원을 분명히 해야 하고, LH는 목표 가동 시기에 맞춰 부지 조성 공정을 관리해야 한다. 용인시는 인허가 지원과 기업 유치뿐 아니라 주거, 교통, 환경, 교육, 의료 등 도시 전체의 수용 능력을 높여야 한다. 기업도 투자 일정과 고용계획을 구체화하고 지역사회와의 상생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상일 시장이 요구한 대로 정부의 ‘속도전’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동시에 용인시의 시정도 선언보다 결과로 검증받아야 한다. 2029년 10월이라는 삼성전자 국가산단 1기 팹 일부 가동 목표가 현실이 되려면 남은 시간 동안 공정 하나하나가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용인이 세계 최대 반도체 도시라는 이름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에 걸맞은 산업 경쟁력과 시민 삶의 질을 함께 완성하는 일이다. 반도체 산단의 속도는 빨라야 하지만, 그 방향과 책임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