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 편일까?

2026-06-13     이동훈 칼럼니스트
6·3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 이 질문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결코 아니다.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

승자가 역사를 독식해 온 것은 기록을 독점하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고대 유럽에서 그랬고, 중국에서는 고대나 현재에도 그렇다. 기록은 정치에 의해 통제되어 왔고, 간혹 그 손아귀를 벗어나려던 역사가들의 목숨이나 신체가 온전히 남아나지 못했다.

한국 역사에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아마도 고려 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신라에 대해 다소 미화한 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저 개인적 주관으로 역사를 윤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왜곡하는 수준의 기록을 남긴 예는 우리 역사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우리는 현실과 역사에 대해 엄격하고 철두철미했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 그랬다. 거기엔 왕의 치부나 실정, 심지어 질병이나 실언 한 마디조차 지나치는 법이 없이 낱낱이 기록됐다. 최고 권력조차 그 살벌한 역사의 눈을 피해 나갈 방도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과연 성삼문이나 박팽년 같은 사육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들은 서슬 퍼런 세조의 겁박과 회유 앞에서도 권력 찬탈을 비판하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믿었던 한 가지 버팀목은 바로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기록에 남을 것이라는 신념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다. 죽음을 앞둔 박팽년은 세조를 지칭하며 부른 ‘나으리’라는 그 한 마디가 후세에 영원히 남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비교적 단일 혈통으로서 독립 국가를 지키면서 수천 년을 이어 온 세계적으로 거의 희귀한 민족이란 특수성 때문에 공동체라는 민족 개념을 목숨처럼 무겁게 여겨 왔다.

그 속에 흐르는 두 가지 유구한 맥락이 바로 유전적 피(血)와 문화적 피였다고 생각한다. 그 문화의 피가 바로 기록이며, 그 기록에 담긴 신념이 곧 민족정신이다. 그런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을 쓴 사관(史官)들은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자신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편년체로 기록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지금 우리는 역사가 역동(力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모든 걸음걸이가 공룡 발자국처럼 영원히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모든 국민은 유튜브와 메신저라는 역사 기록매체를 손에 들고 있다. 우리는 이 기록의 촘촘한 그물망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역사 현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거짓말과 배신, 그리고 분탕질에 가담한 군상들을 생각해 보라. 잠실벌에서 ‘재선거’를 외치는 청년들을 외면하거나 왜곡한다고 그 가치가 폄하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SNS를 압박하는 게 진실을 덮는 데 도움이 될까?

한국인은 역사를 내 조상의 이야기, 내 핏줄의 이야기로 여긴다. 역적의 자손들은 영원히 그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은 세 사람 건너면 닿지 않을 사람이 없는 끈끈한 동질체의 나라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뻔한 거짓말을 해대고, 지렁이 메모를 남기고, 파렴치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재판관들과 기자들은 권력과 여론 향배를 살펴 판결문과 뉴스를 쓰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갈 텐가?

아무리 지금 눈앞의 권력이 승자처럼 보이더라도 민감한 역사의 현장에서는 SNS에 남기는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써야 한다. 그럴 생각은 없는가? 없다면 차라리 그대 자손들이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 낫다!

역사는 가끔 굽이치지만, 곧 제 길로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